식습관을 바꾸자
잔치음식에서 벗어나 외국인이 좋아하는 3대 한국 요리로

한 주방기구 회사직원들과 홍보 도우미가 부침개를 부치고 있다. <남호진 기자>
"별미가 따로 있나/ 때맞게 내린 여우비 맞으며/ 담장 아래 애호박 하나/ 뚝/ 따서/ 밀가루 반죽에다/ 미나리를 집어넣고/ 한 국자 올려 지지면/ 우리내 사랑보다 노릇하다, 익다/ 타지 않으려 속 뒤집어 보이는/ 그 맛에/ 손가락 데이는 줄 모르고/ 입에 넣기 바빠서/ 밖의 어둠조차 깨닫지 못한다/ 미나리전 구수한 내음/ 빗속을 유유히 지나/ 산등성이 하나를/ 꼴딱 넘다.”
지철승 시인의 ‘미나리전 부치는 날’(전문)이다. 시인은 미나리를 부쳐 먹는 소박한 모습을 통해 보통 사람의 큰 행복을 노래하고 있다. 행복은 미나리전 내음만큼 전염성도 강하다. 동네 잔치 소식은 부침개 부치는 고소한 냄새가 먼저 전해준다.
‘가난한 사람이 먹는 떡’에서 유래
과거 밀가루와 기름이 귀하던 시절 부침개는 잔치음식이었다. <고려도경>은 “고려에는 밀이 적기 때문에 화북에서 수입하고 있다. 밀가루 값이 매우 비싸서 성례 때가 아니면 먹지 못한다”고 기록했다. 그래서 녹두나 메밀로 만든 빈대떡이 부침개의 대명사였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빈대떡은 성례의 중요 음식이 아니라 보조 음식이었다. 제사상이나 교자상에 기름에 지진 고기를 고배(음식을 그릇에 높이 괴어 담음)할 때 받치기 위해 썼던 음식이다. 그것은 당연히 허드렛일을 돕는 일꾼의 몫이 됐다.
어떻든 ‘빈대떡’이라는 요상한 이름도 가난한 사람이 먹는 떡(‘빈자(貧子)떡’)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옛날 정동에는 빈대가 많아 빈대골로 불렸는데 그곳에 유난히 빈자떡(부침개) 장수가 많아서 빈대떡이 되었다. 18세기의 서명응이 지은 <방언집석>에서는 녹두로 만든 ‘빙저’라는 부침개가 빙자로, 다시 빈자로 바뀌어 내려왔다고도 기록돼 있다. 어원적인 측면에서 빈대떡은 중국에 그 어원을 두고 있다는 설이 유력한데 중국 콩가루 떡인 알병의 알자가 빈대를 가리키는 갈(蝎)자로 와전되어 빈대떡으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빈대떡이 문헌상 최초로 나타난 것은 <음식 미다방>(1670)에서다. 여기에는 ‘빈쟈법’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하고 “녹두를 되직하게 갈아서 번철에 기름을 부어 끓으면 조금씩 떠 놓으며 거피한 팥을 꿀로 발라서 소로 넣고 또 그 위에 녹두 간 것을 덮어 빛이 유자빛같이 되게 지져야 한다”고 해설을 붙였다.
지금은 빈대떡과 부침개를 엄연히 구분하고 있다. 빈대떡이 녹두를 주재료로 그 안에 고사리, 쇠고기, 돼지고기, 나물 등을 넣고 부쳐 낸 것이라면 부침개는 기름에 지져낸 음식을 통칭한다. 부침개의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바다향이 물씬 풍기는 해물파전, 노릇노릇한 동태전, 신내음이 상쾌한 김치전, 산뜻한 호박전, 담백한 감자전, 매콤한 고추전과 상큼한 부추전, 향이 짙은 파전, 달콤한 배추전, 향긋한 미나리전…. 얇고 둥그런 모양이 그저 그렇고 재료와 맛도 간단해 보이지만 속맛은 천차만별이다. 어느 하나 별미가 아닌 것이 없다. 그럼에도 최고의 부침개가 빈대떡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빈대떡은 북한에서 명절의 필수 음식이다. 빈대떡에는 돼지기름, 그것도 암퇘지 기름을 쓴다고 한다. 녹두에다 쌀을 조금 넣고, 새콤한 신김치를 다지고 양파와 파를 썰어 넣고 양념으로 후춧가루를 넣어서 맛을 돋운다. 또 고사리나 도라지를 넣어 쌉쌀한 맛을 더한다. 빈대떡은 녹두를 물에 불렸다가 맷돌에 갈아 솥뚜껑에 부친 것으로 황해도에서는 막붙이, 평안도에서는 녹두지짐이라고 한다.
내 몸이 부침개를 원한다

서울 반포동 프랑스 마을에 거주하는 프랑스 어린이들이 빈대떡 등 추석음식을 만드며 즐거워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영양적인 측면에서 빈대떡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이 휼륭한 음식이다. 빈대떡은 녹두로 만든 음식이어서 단백질이 풍부하다. 게다가 고기를 자주 먹지 못하는 민초들에게 영양가를 보충해주는 음식이기도 했다. 특히 녹두는 한방에서 피부병 치료와 해독, 피로 해소에 효과가 있으며 식욕을 돋우기도 한다고 나와 있다. 민초들의 허기를 달래고 건강까지 알뜰하게 챙겨주는 데 빈대떡만한 음식이 없었던 것이다. 빈대떡은 특별한 날에 풍성함을 더하기 위한 음식에 그치지 않았다. 장안의 큰 부자들은 곤궁기에 빈대떡을 부쳐 나와서는 “OOO집의 적선이요”라며 배곯은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눠줬다고 한다. 구황식품이기도 했던 것이다. 가난한 이를 위해 음식을 나누는 조상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부침개를 당기게 만드는 것은 입이 아니라 몸이다. 사람의 몸은 습기가 많고 기온이 떨어지면 체온을 조절하기 위해 기름기 있는 음식을 원하다. 또 우리 몸은 하루라도 햇볕을 보지 못하면 스트레스를 받아 피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혈당도 떨어진다. 마음도 특별한 이유 없이 울적해진다. 이런 데이터는 뇌를 자극하고 우리 몸은 따뜻한 밀가루 음식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비오는 날이면 부침개가 당긴다. 비오는 날의 단골메뉴로 부침개가 자리 잡은 게 우연이 아닌 것이다. 거기다가 부침개는 손쉽게 만들어낼 수 있는 최고의 간식이다. 또 대다수 국민이 농사를 짓고 살던 시절에 비라도 오면 논일·밭일을 할 수 없었다. 이런 날이면 부침개를 안주삼아 막걸리 한잔 했을 법하다. 최근 막걸리가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으면서 빈대떡과 부침개의 이미지도 자연스럽게 변화하고 있다. 장마철 계절음식, 잔치음식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세계가 주목하는 음식이 되고 있다. 중앙푸드 박유신 대표는 “한국 사람보다 외국인이 더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면서 “외국인들은 피자보다 우리 부침개가 입에 더 잘 맞는다고 한다”고 말했다. 부침개는 김치, 불고기와 더불어 외국인이 좋아하는 3대 기호요리가 되었다. 외국 부인들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는 빈대떡이 선호도 1위였다. 빈대떡의 맛이 우리 전통음식의 국제화에 선도적 역할을 한 셈이다.
사실 부침요리는 나라마다 고유한 것을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부침개 문화는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다. 중국의 전핑(煎甁), 일본의 오코노미야키, 베트남의 반카이(강황을 넣은 쌀가루 부침개), 인도의 도사, 이탈리아의 피자 등은 세계에 잘 알려진 부침요리다. 아직까지 이런 반열에 우리 부침개는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외국산 부침개’ 피자에 밀려 우리 부침개가 우리에게조차 외면당하고 있지만 적어도 부침개가 국제식품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은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부침개의 세계화의 시작은 결국 우리 것에 대한 애정이다. 친한 벗들과 어울려 우리 고유의 전통음식 부침개에 막걸리 한잔 하면 어떨까.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