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의 사명취실과 낭중취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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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 버리고 ‘손쉬운 실리’ 좇다

<서성일 기자>

<서성일 기자>

4·29 재·보선 승리를 위한 여야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MB심판’의 장으로 지목되고 있는 인천 부평 을구는 조기 과열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그러나 텃밭이라고 마냥 안심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한나라당의 박희태 대표가 울산 북구 출마를 저울질하다 이내 포기한 것은 범야 단일후보의 가능성이 클 것을 예상한 결과라는 게 중론이다. 사실 이명박 대통령의 대리인 격인 그가 텃밭에서마저 낙마할 경우 그 파장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텃밭 출전 선언으로 민주당 ‘벌집’
민주당은 정반대로 텃밭의 ‘반기(叛起)’ 가능성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수뇌부와 상의도 하지 않은 채 전주 덕진구에 출사표를 던진 탓이다. 이는 수뇌부의 ‘MB심판’ 캠페인 구상과 배치되는 것이다. 자칫 그의 공천을 둘러싸고 내홍이 빚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찬반양론이 극명하게 엇갈리면서 당은 온통 벌집을 쑤셔놓은 듯 어수선하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선당후사(先黨後私)’를 언급하며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으나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정동영 전 장관은 출사표를 던지기 전날까지도 장고를 거듭했다고 한다. 참모들 사이에서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물실호기론(勿失好機論)과 ‘출마 명분이 없다’는 명분부재론(名分不在論)이 팽팽히 맞섰다. 그는 결국 전자를 택했다.
“정치인은 정치 현장에서 늘 국민과 함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칫 잊힌 인물이 될 수 있다’는 위협적인 조언이 그의 결단을 촉구했다는 후문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텃밭 출전을 선언해 수뇌부를 고심하게 만든 것일까. 그의 변이다.

“그곳은 내가 처음으로 정치를 시작한 정치적 모태다. 초심으로 돌아가 새롭게 출발하겠다.”
명분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취지를 밝힌 셈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적 결단을 할 때는 늘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다. 공자는 <논어> 옹야편에서 문(文·문채, 명분을 상징)과 질(質·바탕, 실리를 상징)로 풀이했다.

“통상 ‘질’이 ‘문’을 이기면 야(野·교양을 닦지 않은 거친 성정)하고, ‘문’이 ‘질’을 이기면 사(史·사관이 붓을 놀려 수식하듯 겉만 화려함)하다. ‘문’과 ‘질’이 빈빈(彬彬·조화를 이룸)해야 가히 군자라 할 수 있다.”

그가 말한 문질빈빈(文質彬彬)은 명실상부(名實相符)를 달리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게 그리 쉽지 않다. 상황에 따라서는 명분을 버리고 실리를 취하는 사명취실(捨名取實) 내지 정반대의 사실취명(捨實取名)으로 나아가는 것이 타당할 때가 많다. 물론 이 경우도 선택을 잘 해야 한다.

일찍이 항우는 유방에게 패해 오강까지 달아났다가 고향인 강동(江東·강소성 태호 일대)으로 들어가 권토중래(捲土重來)할 것을 권하는 부하들의 권유를 뿌리치고 이내 자진하는 길을 택했다. 그는 ‘사명취실’로 나아가야 할 상황에서 작은 수치를 참지 못하고 ‘사실취명’을 취한 것이다. 유방의 군사(君師) 한신이 그의 인용(仁勇)을 두고 ‘부인지인(婦人之仁)’과 ‘필부지용(匹夫之勇)’에 불과하다고 평한 것은 적절했다. ‘부인지인’은 불인(不仁)을 참지 못하는 여인의 인덕, ‘필부지용’은 수욕(羞辱)을 참지 못하는 필부의 용기를 말한다.

항우와는 정반대로 ‘사실취명’을 택해야 할 상황에서 절의와 명분을 굽히고 ‘사명취실’을 택해 후세의 지탄 대상이 된 경우도 있다. 춘추시대 말기의 초나라 출신 백비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초평왕을 오도해 죽음에 이르게 한 뒤 오나라로 망명해 오자서를 죽음으로 몰아가 결국 오왕 부차까지 죽게 만들었다. 이후 다시 월왕 구천의 휘하로 들어가 총신이 되었다. 최초의 역사소설에 해당하는 후한 초기의 <오월춘추>에서는 그의 간신 행보에 노한 월왕 구천이 참수하는 것으로 그려 놓았으나 이는 <춘추좌전>의 기록과 다르다. 그는 죽을 때까지 권신으로 살았을지는 몰라도 사관의 주필(誅筆)로 인해 수천 년 동안 ‘만고간신’의 표상이 되었다.

그러나 외양상의 변절 행보만 두고 매도하기가 쉽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고려가 패망했을 때 소위 ‘두문동 72현’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의 명분하에 출사를 거부한 바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고향인 경북 선산에 은거한 길재다. 당시 이들 중에는 ‘변절자’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조선조에 출사해 큰 업적을 쌓은 인물도 있었다. 권근과 하륜, 황희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제대로 된 ‘사명취실’로 나아간 경우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정 전 장관은 어느 경우에 속할까. 원래 그는 민주당에 일정 지분을 갖고 있는 ‘공동 오너’에 해당한다. 적잖은 의원이 그의 출마를 적극 지지하고 있는 게 그 증거다. 사실 그는 지난 대선에서 비록 역대 선거사상 최다 득표차로 패하기는 했으나 이는 ‘노무현 심판론’이 팽배했던 당시 상황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심기일전의 각오로 다시 경성대전(京城大戰)에 출전했다가 정몽준 의원에게 패한 것도 청와대에 갓 입성한 ‘경제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몽환(夢幻)적인 기대와 무관치 않았다. 인물에서 패했다기보다는 천하대세에 무너졌다고 보는 게 옳다.

서울 출마 당시 “이곳에 뼈를 묻겠다”

정동영 전 의원이 통일부 장관 시절인 2006년 1월 민주당 당사를 방문, 정세균 민주당 대표 등 간부를 만나 인사하고 있다. <이상훈 기자>

정동영 전 의원이 통일부 장관 시절인 2006년 1월 민주당 당사를 방문, 정세균 민주당 대표 등 간부를 만나 인사하고 있다. <이상훈 기자>

현재 386의원과 수뇌부는 호남의 개혁 공천을 통해 승부처인 수도권에서 바람을 일으켜야 하는 상황에서 수도권 유권자들에게 표를 달라고 할 명분이 없게 되었다며 격앙된 표정을 짓고 있다. 사실 정 전 장관은 경성대전 당시 “제2의 정치인생을 시작하는 이곳에 뼈를 묻겠다”고 말한 바 있다. ‘노인 폄훼 발언’ 등으로 누차 구설에 오른 바 있는 그는 공연히 뒷감당이 안 되는 발언으로 재차 구설의 화단(禍端)을 만든 셈이다. 한나라당이 그의 식언을 집중 부각시켜 ‘MB심판’ 캠페인을 희석시킬 공산이 크다는 수뇌부의 우려가 전혀 근거 없는 것만도 아니다.

그러나 이는 논리의 비약이 심한데다 자칫 해당 구민을 무시하는 것으로 곡해될 소지마저 있다. 부평 구민이 전주로 내려간 그의 경성대전 때의 식언을 문제삼아 ‘MB심판’의 선봉장감을 민주당 후보라는 이유만으로 낙선시킬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극단적인 ‘MB심판’ 캠페인은 오히려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노태우 전 대통령이 양김과 합의해 ‘중간평가’를 무산시켰을 당시 대노한 김영삼 민주당 총재는 동해지역의 보궐선거를 홀로 ‘중간평가’로 규정하며 총력을 기울였다가 후보 매수 사건으로 큰 곤욕을 치른 바 있다. 5년의 대선 주기를 감안할 때 그의 이번 선택은 항우가 자진을 택하지 않고 부형들을 설득해 권토중래할 요량으로 강동으로 들어가는 것에 해당한다. 현 정부의 3년여의 잔여 기간은 그가 권토중래를 준비하기에 그리 많은 시간도 아니다. 일찍이 일본제왕학의 비조라 불리는 17세기 말의 오규 소라이는 <태평책>에서 군왕이 되는 길을 이같이 설명한 바 있다.

“군주는 설령 도리에서 벗어나 사람들의 비웃음을 살지라도 백성들을 편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 어떤 것이라도 기꺼이 하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그런 마음을 가진 자만이 진정한 백성의 부모가 될 수 있다.”

천하를 흉중에 품고 있는 사람은 결코 작은 명절(名節)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역설한 군도(君道)를 방불하는 천고의 명구가 아닐 수 없다. 이름만 화려한 ‘범여권 후보’라는 명실불부(名實不符)의 경력에 얽매여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박차는 것은 강동으로 들어가는 것을 포기한 항우의 ‘부인지인(婦人之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당 지도부와 상의도 없이 임의로 출사표를 던진 것은 비난받을 만하다. ‘지역민을 우습게 보고 지역구를 멋대로 취사(取捨)하는 구태정치는 없어져야 한다’는 지적은 통렬하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은 호남인을 마치 ‘낭중취물(囊中取物·주머니 속의 물건을 임의로 취함)’하듯 다루며 지역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난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영호남 대립 구도가 고착된 상황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던 점을 감안할 때 이는 부분적으로만 타당한 지적이었다.

국민에 희망 주는 비전 제시해야
사실 자신의 지역구를 ‘낭중취물’하듯 다룰 수 있다는 것은 정치 능력의 반증이기도 하다. 현재 여야 의원 중 자신의 지역구를 ‘낭중취물’하듯 다룰 수 있는 사람은 명실상부한 ‘오너’에 해당하는 박근혜 의원 등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현재 서울지역의 위원장이라는 이유로 ‘극약처방’ 운운하는 것은 공천의 취지와 동떨어진 것이다. 실제로 그가 휘하 장졸과 함께 단기필마(單騎匹馬)로 강동으로 들어가 권토중래의 기반을 쌓고 북상할 경우 당 자체의 존립 기반이 흔들릴지도 모를 일이다.

‘한 지붕 두 집안’의 어색한 동거를 계속하고 있는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가 이에 공명할 경우 정국 전체를 뒤흔드는 대지진이 올 수도 있다.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는 무당파가 날로 늘어나는 현황은 그 개연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그의 이번 결단은 일단 ‘사명취실’의 행보로 평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그가 과연 어떤 복안을 갖고 강동행을 택했는가 하는 점이다. 지지 의원들은 “거대 여당의 독주를 막기 위해서는 거물이 원내로 들어와 당의 역량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출사표의 명분을 퇴색시킬 우려가 크다. 권토중래를 염두에 둔 강동행이라면 필히 경제 난국에 의기소침해하고 있는 국민들에게 자신감과 희망을 줄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도 이를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야당이 튼튼해야 여당도 건전해진다. 지금 국민들은 튼튼한 야당을 원한다. 여야 모두 힘을 모아야 할 때다.”
현재 국민들은 늑장 개원의 기록을 갈아치우고 민생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해머를 동원하며 극한 대결을 일삼는 여야의 ‘깽판행보’에 절망하고 있다. 반사이익은커녕 10%대의 붙박이 지지율에 헤매고 있는 민주당을 일신하는 것도 그의 향후 과제다.

신동준<21세기정경연구소장> xhind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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