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 길거리 간식서 웰빙푸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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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페인 식습관을 바꾸자

한국 대표 고유음식으로 세계시장 공략 채비

한국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인 떡볶이. <박재찬 기자>

한국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인 떡볶이. <박재찬 기자>

분위기는 ‘여유’와 ‘관계’를 때론 색다르게 만든다. 포장마차도 함께 하고 싶은 사람과 편안한 마음을 나누는 곳으로 적격지로 여겨진 때가 있었다. 특히 문패도 없고 번지도 없는 포장마차에서 먹는 음식이 지나간 세월과 추억을 담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주황색 텐트 아래 늘어진 백열전구, 편안한 자리를 찾아 이리저리 움직이던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 거기에 부족함이 없이 진열해놓은 안줏거리…. 여유와 관계를 중시하는 사람들의 구미를 당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나눠먹는 음식에는 많은 것이 넘쳐난다. 오뎅국물 한 국자에도 체온을 느낀다. 순대 한 조각에도 정분이 싹튼다. 또 서로 권하는 소줏잔에서 세상의 시름은 사라지게 마련이다. 거리 음식의 신비로움이 아니라면 느낄 수 없는 맛이다.

정부 주관 떡볶이 페스티벌 개최
젊어서는 추억을 만들고 늙어서는 추억을 되새긴다고 했던가. 떡볶이도 그런 추억거리 음식 중 하나다. 늘 허기를 느끼던 학창시절, 출출한 하굣길마다 포장마차의 빨그레한 철판에서 끓고 있는 떡볶이의 유혹은 빈 호주머니를 더욱 가볍게 하곤 했다. 이쑤시개로 아슬아슬하게 들어올린 떡 한 가닥을 냉큼 입 안으로 집어넣고 느끼던 쫄깃쫄깃한 그 맛은 소녀의 웃음 같다. 방울 굴러가는 듯한 소녀들의 웃음소리와 길거리의 매캐한 매연이 어우러질 때 매콤한 떡볶이의 맛은 더 진하게 느껴지곤 했다.

하지만 음식의 맛도 분위기를 탄다. 세월이 흐르면서 음식의 취향도 바뀐다. 특히 젊은이의 먹을거리로 취급받는 간식 음식은 더 분위기에 민감하다. 소셜무드는 변화의 동기다. 떡볶이는 거리의 추억을 만드는 음식이 아니라 웰빙음식으로, 한국 고유 음식에서 글로벌 푸드로 변신하고 있다. 특히 떡볶이를 세계화하기 위한 채비를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게 커다란 힘이 되고 있다. 정부는 떡볶이를 한식 세계화의 첨병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3월 28일, 29일 이틀 동안 ‘떡볶이 페스티벌’을 연다. 정부 주관으로는 첫 떡볶이 행사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이 행사에 “떡볶이의 가치를 재발견하기 위한 중요한 행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 정부가 지원하는 ‘떡볶이연구소’도 생겼다. 떡볶이연구소는 영문의 떡볶이 이름(Topokki·토포키)도 지었다. 떡볶이의 세계화를 위해선 좀 더 친숙한 영문 표기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난해 한식 세계화 원년을 선포한 뒤 떡볶이만큼 한식의 세계화 작업을 구체화한 개별 식품은 없다. 왜 떡볶이인가. 쌀 소비를 권장하기 위한 게 일차적인 목적이다. 매년 남아도는 쌀이 90만t(2002년 기준)을 넘는다. 경남의 1년 쌀 총생산량과 맞먹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거기다가 의무 수입 쌀 쿼터가 있다. 잉여 쌀을 보관·관리하는 데 연간 6000억 원이 든다.

이 부담을 덜기 위해 만든 쌀가공품은 수없이 많다. 그렇다면 정부가 왜 떡볶이에 주력하는 것일까. 정부는 길거리 음식으로서 떡볶이의 생명력과 시장성에 주목하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의 한 인사는 “싼 길거리 음식의 대명사였던 떡볶이가 건강식품으로 변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떡볶이는 본래 대중음식이 아니다. 사전적 의미의 패스트푸드는 더욱더 아니다. 조선시대엔 임금의 수라상에 오르던 맵지 않은 궁중음식이다. ‘초기 떡볶이’는 고추장이 아니라 간장으로 쇠고기와 각종 생·마른나물과 함께 볶은 임금님의 건강을 고려한 완전식품이다. 고추장으로 만든 것은 18세기 이후로 추정된다. 조선 중기 무렵에 나온 <증보 산림경제>에 ‘만초장’이라는 이름으로 고추장 기록이 처음 나온다. 하지만 이 무렵부터 고추장으로 볶은 떡볶이를 만들었을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 궁중음식이 대중화된 시기가 1950년대 무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추장 떡볶이는 20세기 중반부터일 것으로 짐작된다.

불과 50년의 짧은 역사지만 떡볶이는 성장을 거듭했다. 재래시장과 급식, 대형 유통업체, 프랜차이즈 등에서 판매한 가래떡은 2008년 한 해 동안 2100억 원어치나 된다. 물론 모든 가래떡을 떡볶이 원료로 사용한 것은 아니다. 어떻든 쌀로 만든 떡이 약 1532억 원, 밀가루 떡이 552억 원 정도였던 것과 비교한다면 그 떡볶이 시장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여기에 가공·유통 효과를 포함한 떡볶이 시장 전체를 따진다면 약 9000억 원 시장에 이른다는 게 업계의 추산이다. 정부는 떡볶이 붐을 조성하여 오는 2013년까지 1조6000억 원의 시장으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브랜드 떡볶이 잇달아 등장

경희대 한국어학당 학생들이 떡볶이 시식회에서 떡볶이를 먹고 있다. <김정근 기자>

경희대 한국어학당 학생들이 떡볶이 시식회에서 떡볶이를 먹고 있다. <김정근 기자>

이것은 국내 시장에 국한된 얘기다. 외국인도 즐겨찾는 떡볶이를 만드는 게 정부와 업계의 공통된 과제다. 이를 위해서 길거리 간식음식으로서 고유의 맛은 그것대로 살리면서 규격화하고 표준화한 떡볶이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음식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런 흐름이 떡볶이 시장에서 반영되기 시작했다. 입소문으로 만들어낸 ‘떡볶이 골목시장’만이 아니라 브랜드화한 떡볶이 상품이 시장에서 호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서울의 ‘즉석떡볶이(서울 신당동 동화극장 앞 골목)’, ‘기름 떡볶이(서울 효자동 통인시장)’ ‘조폭 떡볶이(서울 서교동 홍대 앞)’ ‘마약 떡볶이(대구 신천시장)’ 등은 입소문과 전통이 만들어낸 유명상표다. 이들 점포의 성공은 ‘독특한 손맛’과 ‘특별한 상술’이 영업력의 핵심이었다. 이를 뛰어넘는 즉 ‘브랜드화 떡볶이’가 출현하고 있다. 명실상부하게 떡볶이 산업화로 도움 닫기를 시작한 것이다.

2007년에 프랜차이즈를 시작한 ‘BBQ 올리브떡볶이’는 현재 100여 개의 가맹점을 갖고 있다. 서울 홍대 앞에서 ‘아버지 튀김 딸떡볶이’로 시작한 ‘아딸 떡볶이’와 ‘해핑궁’도 떡볶이를 전문으로 판매하는 프랜차이즈로 가맹점을 늘리고 있다.

대중 패스트푸드와 전혀 다른 슬로푸드 떡볶이 전문점도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떡볶이 레스토랑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카페 ‘느리게 걷기’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들 떡볶이 레스토랑은 궁중 요리, 즉 고급 요리로 떡볶이 메뉴가 당당히 한 차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궁중음식 떡볶이’를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 떡볶이는 외국 시장에선 생소하다. 그러나 그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가 높은 간식, 샌드위치의 탄생과 발전을 보면 떡볶이의 가치는 우리가 먼저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샌드위치는 강제노역에 동원된 노예의 식사였다. 거기에는 식욕도, 영양도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가장 대중적인 우리의 간식은 궁중음식이다. 탄생부터 의미가 다르다. 이제야 진정한 한국식 간식의 의미를 찾는 작업이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떡볶이의 세계화의 출발이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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