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농산물의 재발견

싱그럽게 피어 있는 들깻잎이 마치 웃고 있는 듯하다.
까만 밤, 경부선 열차를 타고 밀양을 지나다 보면 차창 밖으로 희한한 장면이 펼쳐진다. 불 밝힌 비닐하우스들이 들판 가득 끝없이 이어져 이게 도대체 무엇인가 싶다. 신문 사진기자들이 단골로 찾는 장관이기도 하다. 바로 깻잎을 재배하는 하우스다. 경남 밀양은 우리나라 깻잎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집산지다.
밤에 깻잎 하우스에 불을 켜는 것은 어찌 보면 잔인한 행동이지만, 잠을 재우지 않기 위해서다. 깻잎은 대표적인 단일식물이다. 따라서 해가 짧아지면 꽃이 피고 씨앗을 맺는다. 이 씨앗이 들깨로, 기름을 짠다. 하지만 우리가 먹는 깻잎(정식 작물명은 '잎들깨'다. 잎을 수확할 목적으로 재배하기 때문에 씨앗에서 기름을 짜기 위해 기르는 일반 들깨와 구별한다. 깻잎에는 참깨의 잎도 포함되지만 일반적으로 잎들깨의 잎을 지칭한다)은 꽃이 피어버리면 잎을 수확할 수 없어 낭패를 본다.
그냥 내버려두면 깻잎은 8월이면 꽃눈이 분화해 9월이면 꽃이 핀다. 이후로는 깻잎을 맛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인공적으로 불을 밝혀 잠을 재우지 않으면 꽃 피는 것이 지연되고 영양생장을 계속해 끊임없이 깻잎을 수확할 수 있다. 일장(해가 떠있는 시간+불 밝힌 시간)이 16시간 이상 되면 온도에 관계없이 꽃이 나오지 않는다.
30g만 먹어도 하루 철분섭취량 충분
깻잎은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만 재배하는 작물이다. 삼한 시대 이전부터 재배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정확한 원산지와 전파 경로는 밝혀져 있지 않다. <본초강목>에는 깻잎이 위장을 튼튼하게 해준다고 적혀 있고, <동의보감>에는 속을 고르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쓰여 있다. 깻잎은 채소류 중에 철분이 많기로 유명하다. 100g당 2.5㎎의 철분이 들어 있어 깻잎 30g만 섭취하면 하루에 필요한 철분의 양을 채운다. 칼슘·칼륨 등 무기질과 비타민 A·비타민 C도 풍부하게 함유돼 있다. 따라서 흡연자가 소진된 비타민 성분을 보충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암과 각종 성인병 예방에도 좋다. 깻잎 안에 있는 식물화합물 파이톨(phytol)이 암세포를 골라내 파괴하기 때문이다. 이 물질은 또 병원성 대장균이나 다른 병원성 균도 제거하고, 인체의 면역 기능을 강화시킨다. 깻잎은 파이톨 말고도 ETA나 엽록소 등 암을 예방하는 물질을 가지고 있다. 피부에 주름이 생기는 것을 억제하는 효능도 있어 피부 미용에 좋다.
깻잎의 독특한 향은 페릴라알데히드와 리모넨·페릴케톤 등의 방향성 성분들인데 특히 고기의 누린내와 생선 비린내를 없애는 데 효과가 좋다. 이 성분들은 부패를 방지하는 역할도 한다. 어른들은 이 향을 매우 좋아하지만 아이들은 싫어하는 경우도 있다. 깻잎을 찌개에 넣어 끓이거나 볶아 익히면 향을 조금 죽일 수 있다. 하지만 비타민 C나 엽록소가 손실될 수 있으니 감안해야 한다. 영양 성분을 생각한다면 깻잎을 간장이나 된장에 절여 장아찌로 먹는 것보다 생으로 먹는 것이 좋지만 맛과 음식문화도 무시해선 안 될 것이다.
깻잎은 상추와 함께 쌈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한다. 쇠고기는 단백질이 풍부하게 들어 있는 반면 칼슘과 비타민 A·비타민 C가 거의 들어 있지 않고 콜레스테롤이 높은 것이 단점인데 이것을 깻잎에 싸먹으면 보완이 된다.
함경도에는 깻잎떡이라는 별미음식이 있는데 멥쌀가루를 반죽한 다음 빚어 양쪽에 깻잎을 붙여서 쪄낸 떡이다. 깻잎은 싱싱하고 윤기가 흐르고, 줄기가 옅은 초록색으로 솜털같이 잔가시가 선명한 것이 좋다. 까실까실하고 가장자리의 윤곽이 뚜렷한 것을 골라야 한다. 깻잎은 또 환경오염 감지기 역할도 한다. 공기가 오염되면 깻잎에 반점이 생기기 때문이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