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정치적 욕망’ 참고 기다리며

정두언 의원이 의원총회에 참석, 동료 의원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김정근 기자>
‘골프 외유’ 파문이 가시기도 전에 제2차 입법전쟁이 100일 뒤로 미뤄지자 마치 목을 빼고 기다리기라도 한 듯 여야 의원들이 줄지어 해외로 나갔다. 첫 테이프는 한나라당의 정두언 의원이 끊었다. 그러나 그의 미국행은 국가 대사를 논의하기 위한 밀사의 성격이 짙다. 당사자는 기후변화 관련 심포지엄 참석을 구실로 내세웠으나 관측통들은 이 구실을 이재오 전 의원과 회동을 호도하기 위한 위장술로 보고 있다.
사실 그는 지난달 초 청와대 독대 후 서둘러 베이징으로 가 아침 일찍 베이징의 한 호텔 식당에서 이 전 의원과 2시간가량 밀담을 나눈 바 있다. 당사자는 극구 부인하고 있으나 당시 청와대의 밀지(密旨)가 전해졌을 공산이 크다. 이번 베이징 회동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최종 비답(批答)이 전달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영일대군’과 묵은 감정 해소
여권은 벌써부터 이 전 의원의 향후 역할을 두고 설왕설래하는 모습이나 일각에서는 정반대의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의 귀국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이상득 의원의 입김이 작용한 까닭에 오히려 귀국 후의 정숙보행(靜肅步行)을 논의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정 의원이 최근 ‘형의 남자’로 비유되고 있는 점에 비춰 전혀 근거 없는 추론만도 아닌 듯하다. 실제로 그는 최근 명실상부한 ‘형의 남자’인 박영준 국무차장과 만나 ‘영일대군’과 관련한 묵은 감정을 해소한 바 있다. 그가 최근 한 방송의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해 ‘무혐(無嫌)’을 공언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듯싶다.
“그분은 훌륭한 분으로 개인적 앙금이란 있을 수 없다. 그분도 당시 내가 한 비판의 취지와 충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총선 과정에서 ‘영일대군’을 겨냥해 ‘권력의 사권화(私權化)’ 운운하며 격렬한 비판을 가해 청와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바 있다. 그 결과는 2선 후퇴였다. 당시 이 전 의원도 ‘영일대군’ 탄핵상소 대열에 합류했다가 이내 낙선한 뒤 해외연수를 구실로 반봇짐을 싼 바 있다. 당시 두 사람의 어설픈 역린(逆鱗) 행보를 두고 일각에서는 향후 정권 말기까지 이들이 정치 전면에 복귀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며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최근의 흐름은 시류에 따라 동탕(動蕩)하는 권력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관측통들은 그의 이번 미국행을 두고 그가 ‘형의 남자’로 불리고 있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청와대의 비답에 ‘영일대군’의 추백(追白)을 덧붙인 밀지가 전달될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원래 ‘밀지’는 공개적인 윤지(綸旨)와 달리 은밀히 내려지는 까닭에 그 내용은 말할 것도 없고 밀지가 내려진 사실조차 부인되게 마련이다. 궤계(詭計)가 난무하는 난세에 밀지의 전달 책임을 맡은 ‘밀사’가 종횡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춘추전국시대의 밀사는 크게 ‘사(使)’와 ‘행인(行人)’ 2종류로 나뉘었다. 공식사절의 성격을 띤 ‘사’도 밀사의 역할을 수행하기는 했으나 그 임무와 수행 과정은 밀사의 성격을 띤 ‘행인’보다 훨씬 공개적이었다. 일반 관원에서 선발한 ‘사’와 달리 ‘행인’은 주로 군왕의 총신 중에서 발탁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가 안위와 관련한 중대한 사안의 경우는 태자가 직접 ‘행인’으로 나서기도 했다.
밀지는 대부분 겉으로 드러내놓고 추진하기 어려운 현안을 다루는 까닭에 전적으로 밀사에 대한 인간적 신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밀지의 내용이 밀사의 신념과 다를 경우 오히려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 경우 이를 공개적으로 추궁하기도 어렵다. 추궁 과정에서 밀지의 내용이 새어나갈 경우 차라리 불문에 붙이는 것보다 못하기 때문이다.
춘추전국시대 ‘분양’의 행보
대표적인 사례로 춘추시대 말기에 활약한 초평왕(楚平王)의 사마(司馬) 분양(奮揚)을 들 수 있다. 일찍이 초평왕은 며느리로 오는 진애공(秦哀公)의 여동생인 맹영이 천하절색인 것을 알고 그녀의 잉첩을 신부로 분장시켜 태자 건(建)에게 넘겨준 뒤 그녀를 취해 자식까지 낳은 바 있다. 초평왕은 이 사실이 탄로날까 두려운 나머지 이내 태자를 죽일 생각으로 분양에게 밀지를 내렸다.
“태자가 역심을 품고 있으니 은밀히 제거토록 하라.”
그러나 분양은 밀지를 받자마자 사람을 태자에게 보내 속히 달아날 것을 재촉했다. 뒤늦게 이 소식을 접한 초평왕이 급히 분양을 불렀다. 분양은 관원들을 시켜 자신을 결박해 데려가도록 했다. 초평왕이 물었다.
“말이 내 입에서 나와 너의 귀로 들어갔다. 네가 아니면 과연 누가 이를 태자에게 알렸겠는가.”
분양이 대답했다.
“대왕이 전에 신에게 명하기를 ‘태자를 섬기면서 나를 섬기듯하라’고 했습니다. 신은 재주가 없어 두 마음을 품지 못합니다. 처음의 명을 받들어 섬겨온 터에 차마 뒤의 명을 좇을 수가 없어 그리 한 것입니다.”
“그러고도 감히 나에게 온 까닭은 무엇인가.”
분양이 대답했다.
“명을 받고 이를 제대로 봉행치 못한 처지에 부름을 받고도 오지 않으면 이는 두 번 죄를 짓는 것입니다.”
초평왕은 그의 거침없는 대답에 이내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훗날 태자 건의 아들을 이끌고 오나라로 도주한 오자서(伍子胥)는 오왕 합려(闔閭)의 도움으로 초나라를 점령한 뒤 자신의 부친을 죽인 초평왕의 관을 꺼내 시체에 매질을 가한 바 있다. 이 일화는 밀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섣부른 ‘역린’으로 거센 역풍을 맞은 바 있는 정 의원의 이번 사행(使行)은 여러모로 분양과 닮아 있다. 실제로 그가 강도 높게 비판했던 ‘영일대군’은 현재 야당들로부터 ‘만사형통(萬事兄通)’의 근원으로 지목받고 있다. 조선조 말에 안동김씨의 위세를 두고 세도(世道·바람직한 치도)를 비꼰 세도(勢道)의 풍자어가 나온 것과 유사한 상황이다. 분양의 행보를 택할 수 있는 객관적인 여건이 마련된 셈이다.
‘형의 남자’로 조용히 실력 키워

2004년 학생회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밴드공연을 하고 있는 정두언(앞)·심재철 의원(오른쪽)과 김희정 전 의원. <우철훈 기자>
정 의원이 그간 보여준 대붕도남(大鵬圖南)의 행보를 보면 결코 ‘만사형통’에 종용(從容)해 ‘형의 남자’로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근거 없는 것만도 아니다. 사실 세도(勢道)의 21세기 버전인 ‘만사형통’의 덧칠이 가해질 경우 후일을 도모하는 것 자체가 무망할 수밖에 없다. 안국포럼을 이끌며 대선승리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그는 대선 직후 언론과 인터뷰 때마다 “4월 총선에서 정동영과 겨루고 싶다”는 말을 구두선처럼 한 바 있다. 많은 사람이 ‘빈사의 사자’를 희생양으로 삼아 장차 경성(京城)의 성주로 입성하려는 의도로 풀이했다.
그러나 이후 정몽준 의원이 ‘빈사의 사자’를 나포하는 횡재를 하자 그는 문득 방향을 틀어 도승지(都承旨)와 ‘영일대군’을 싸잡아 비판하고 나섰다. 당시 ‘정주영에게 이명박이 있다면, 이명박에게 정두언이 있다’는 칭송까지 들은 그의 돌연한 행보에 ‘고소영 내각’으로 들끓는 민심이 환호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의 대붕도남 의도가 명백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는 20여 년간의 공직생활 끝에 정계에 입문한 뒤 이 대통령과의 만남을 통해 문득 ‘왕의 남자’로 비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도남에 성공하려면 먼저 ‘득롱망촉(得롱望蜀)’의 고사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자치통감>에 따르면, 조조가 농(농·감숙성) 땅을 취할 당시 참모로 있던 사마의(司馬懿)가 여세를 몰아 촉(蜀·사천성) 땅까지 취할 것을 건의했다. 조조가 탄식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하더니 이미 농을 얻자 또다시 촉까지 넘본단 말인가.”
대부분 사람이 ‘등롱망촉’을 이런 뜻으로 새기고 있으나 이는 원래의 뜻과 상반되는 것이다. <후한서> ‘잠팽전’에 따르면, 후한제국을 세운 광무제 유수(劉秀)는 일찍이 농 땅의 외효를 포위했다가 이내 동쪽으로 돌아가면서 대장군 잠팽(岑彭)에게 이같이 명한 바 있다.
“농 땅이 함몰되면 곧 병사들을 이끌고 서쪽의 촉을 칠 만하다. 사람의 욕심은 만족할 줄 모르는 법이다. 농을 얻으면 촉을 넘보는 것도 가할 것이다.”
이는 농을 얻은 뒤 촉에 할거하고 있는 공손술(公孫述)을 격멸할 것을 주문한 것이다. 조조가 말한 취지와는 정반대되는 것이다. 유수의 ‘득롱망촉’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적극 수용하는 현실론에 입각해 있는 반면 조조의 그것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절제해야 한다는 당위론에 입각해 있다.
천하통일을 이루기 위한 현실론의 차원에서 볼 때 유수의 ‘득롱망촉’이 옳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유수가 천하통일을 이뤄 후한제국을 세운 데 반해 조조의 위나라가 천하통일을 이루지도 못한 채 이내 사마씨에게 빼앗긴 것도 이와 무관할 수 없다.
정 의원의 ‘득롱망촉’은 과연 어느 쪽일까. 그간의 행보에 비춰볼 때 결코 경성의 입성에 만족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정황에 비춰 유수의 ‘득롱망촉’에 가까운 게 거의 확실하다. 그렇다면 사마의가 구사한 사병계(詐病計)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찍이 사마의는 정적인 조상(曹爽)이 감시망을 강화하자 이내 병자를 가장해 침을 흘리며 시종의 부축을 받는 사병계를 구사해 조상을 안심시킨 뒤 은밀히 힘을 축적하다가 때가 오자 일거에 무너뜨린 바 있다. ‘만사형통’의 풍자어가 난무하는 현실은 조상이 천자를 끼고 천하를 호령하던 때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대붕을 꿈꾸는 그로서는 이 전 의원과 밀의해 ‘정숙보행’을 선언하는 식의 사항계(詐降計)를 구사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형의 남자’ 행보를 때가 오기를 기다리며 실력을 키우는 ‘도광양회(韜光養晦)’로 풀이하는 견해는 ‘만사형통’의 허실을 통찰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신동준<21세기정경연구소장> xhindj@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