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습관을 바꾸자
예쁘게 장식한‘아름다운 음식’이 오감 사로잡아
한·중·일 3국의 밥상에는 각각 뚜렷한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3국은 밥을 주식으로 하고 젓가락을 사용하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3국의 문화 차이만큼 밥상 차림의 모양도 각양각색이다.
눈과 입으로 먹는 일본음식

경북 경주의 한식에서 차린 경상도식 한식 밥상. <박재찬 기자>
한국인의 밥상은 푸짐하다. 밥을 보약으로 여겼던 식생활을 증명하는 셈이다. 내용(식단)과 형식(그릇)의 어울림이 한국 밥상의 특징 중 하나다. 찌개나 국과 같은 뜨거운 국물에는 그 온기를 살릴 수 있는 용기를 이용한다. 한국인 밥상엔 흰색 그릇이 유난히 많다. 특히 같은 문양의 그릇에 음식을 풍성하게 담는 게 미덕이다.
일본의 밥상은 한국에 비해 간소하지만 음식의 조화를 중시한다. 마치 음식에도 여백의 미를 추구하는 듯하다. 음식을 많이 담지 않으면서도 마치 여인의 젖무덤처럼 봉긋하게 쌓아올리는 게 보통이다. 일본의 밥상에는 똑같은 색깔과 모양의 그릇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생선회가 주를 이루는 식단에서 이런 특징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생선회의 신선함을 잘 살려주기 위해 화려한 그릇을 선호한다. 최대한 조화의 미를 살리기 위해 배색과 보색까지 고려하기도 한다. 음식의 색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 경우에는 그에 맞는 기물을 사용하기도 한다.
중국 식단에는 몇 인분이라는 개념이 없다. 한 그릇에 한 음식을 전부 담아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이 늘어나면 음식량을 늘리는 게 아니라 음식의 가짓 수를 늘린다. 그릇에 담긴 요리 속에서도 대륙적 기질을 엿볼 수 있다. 화려한 멋을 내기 위해 장식을 곁들이는 것은 일본과 비슷하다. 음식에 따라 그릇을 결정하기 때문에 문양과 모양에 대해서는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 다만 군데군데 깨진 그릇이 적지 않다는 게 색다르다. 깨진 그릇이 많이 나오는 식당은 그만큼 깊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는 게 중국인의 생각이라고 한다. 하지만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고급 요리 집에서는 깨진 그릇을 찾아보기가 점점 어렵다고 한다.
일본 조지대학 출신인 김태영 강릉대 교수(사회학)는 “한·중·일 모두 음식의 맛과 멋을 추구하는 것은 마찬가지”라면서도 “특히 일본은 음식을 눈과 입으로 먹는다고 표현할 정도로 시각적인 면을 중요시한다”고 말했다. 음식의 종류나 계절에 따라 도자기, 칠기, 죽제품, 유리 등 그릇의 재질을 선택한다. 음식의 공간적 아름다움을 살리기 위해서다. 여성의 미를 돋보이게 하는 게 화장이라면, 음식의 미를 살리는 건 음식 코디네이션이라는 게 일본인의 생각이다. 일본인이 “그릇이 요리의 기모노”라고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런 일본의 전통은 시간이 흐르면서 그저 녹아든 것이 아니다. 일본은 1960년대부터 정부 주도로 음식 세계화를 추진했다. 그중 하나가 ‘음식의 스타일링’이다. 일본은 각 나라의 문화와 취향에 맞게 음식 자체만이 아니라 식단을 구성하는 그릇까지 현지화하는 발 빠른 모습을 보여왔다. 이것이 일본 음식의 격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일본 음식은 건강에 좋고 상류층이 찾는 음식이라고 일반화한 전략이 먹혀든 것이다.

식용 금가루와 성게알을 이용해 학 모양의 멋을 낸 일본 교토풍 생선회.
우리나라 속담에도 음식의 멋을 강조하고 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게 그것이다. 과거 궁중에서는 맛있는 음식뿐 아니라 맛있어 보이는 음식도 중시해왔다. 이것을 현대식으로 표현하면, ‘음식의 인테리어’ ‘푸드 스타일링’인 셈이다. 푸드 스타일링이란 요리의 맛을 미각뿐 아니라 시각, 오감 전체를 만족시키기 위한 작업을 통칭한다. 음식의 종류와 색깔은 물론 음식의 양과 형태 등을 고려하여 음식 스타일링을 달리 하는 것이다. 음식의 주원료가 무엇이냐에 따라 음식의 스타일링 방법이 차이가 난다. 세계 5대 요리사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에인즐리 해리엇은 “예쁘게 썰어 장식한 오이 한 조각이 음식 전체를 다르게 보이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모든 것이 디자인 시대에 걸맞게 변화하면서 우리 한식당 그리고 식탁의 문화도 세계의 흐름에 부응하고 있다. 물론 음식에 모양을 내는 것이나 음식과 그릇의 조화까지 고려한 밥상에 대한 관심은 오래되지 않았지만 ‘아름다운 음식’이 새로운 음식 문화 트렌드로 잡아가고 있다. 즐기는 ‘음식예술’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개성 있는 접시에 자연재료로 장식
강남의 한 식당에서는 접시에 화선지를 깔아 단아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꽃과 나뭇가지 등 자연 재료와 함께 음식을 꾸며 맛과 함께 멋도 느낄 수 있게 한다. 접시도 반원형 기왓장, 칠흑같이 까만 숯돌, 유백색의 도자기판 등 개성을 가미했다. 청보리와 매화 가지로 접시를 장식하기도 한다. 음식 식단이 곧 문화상품이 되고 있는 셈이다. 이 식당을 다녀간 패션 하우스 에르메스의 한 프랑스인 중역은 “한국 음식의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이군요”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이런 ‘아름다운 음식’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식단의 변형’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동시에 모든 음식을 제공하는 ‘터키식 식단’이 아니라 서양요리처럼 코스식 식단으로 바꿔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임상빈 중앙대 국제경영대학원 교수는 “인간의 입맛은 매우 변덕스럽다”고 전제하면서 “구미를 잃지 않는 시간 안에 주문한 음식이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과 같은 한식 식단으로는 식욕을 완벽히 충족시키기에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고, 음식에 예술의 옷을 입히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일본 음식업계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주문한 뒤 가장 왕성한 식욕을 느끼는 시간은 3분 정도였다고 한다. 임상빈 교수는 “일본의 패스트푸드점에서 이 연구 결과를 비즈니스에 적용했다”면서 “‘3분 이내 서비스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한식도 이런 연구 결과를 적절히 활용할 수 있도록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식단의 변신을 뒷받침하는 것은 결국 창의력이다. ‘요리계의 피카소’라고 불리는 프랑스 요리사 피에르 가니에르가 가장 강조하는 대목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한국 음식에 대해 “세계 어디에서도 맛보지 못한 요리”라고 극찬하면서 “한식이 세계 무대에 등장하려면 문화 개방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무엇보다 서양인 구미에 맞는 음식의 디테일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제시한 예는 ‘밥으로 만든 디저트’‘김치로 만든 잼’과 같은 것이다. 전통성과 예술성이 일식이나 프랑스 요리를 세계적으로 전파하는 데 도움이 됐듯 한식 세계화의 길도 거기에 있다는 조언인 셈이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