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넷에 돌고 있는 럭셔리 총기 이미지. 미국 예술가 그론퀴스트의 작품이다. 사진출처=루리웹
그냥 전기톱이 아니다. 손잡이부터 모터까지 모두 18k로 도금돼 있다. 체인 부분에는 톱날 대신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다. 그 옆에 선명한 구찌 로고. 럭셔리 전기톱이다. 황금으로 된 기관총의 상표는 베르사체다. 역시 황금 탄창이 끼워져 있는 AK소총에는 에르메스, 프라다, 샤넬, 돌체 등의 로고가 박혀 있다.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 얼굴을 몸통으로 한 수류탄도 있다.
지난해 5월께부터 유명 커뮤니티 게시판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이미지다. 누리꾼의 반응은 비슷하다. “흔히 핸드백이라든가 스카프, 양복만 알려져 있지만 필통, 컴퍼스, 슬리퍼 등 도 명품 로고가 찍힌 것이 있으니 저런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의견도 일부 있다(큐티하니 등 일본 만화영화나 007의 악당도 저런 황금총을 갖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는 믿지 않은 눈치다.
일부는 디테일 등을 문제삼으며 “사진합성이다” “누군가 장난으로 만든 모조품”이라고 말한다. 정말 명품 로고를 단 럭셔리 총기류가 있는 것일까.
일부의 예상대로 이 ‘럭셔리 총기 시리즈’는 한 예술가가 만든 것이다. 시리즈를 만든 피터 그론퀴스트씨는 “예술이라기보단 일종의 패러디로 봐달라”고 주문한다. 개인 홈페이지에 게재돼 있는 이력에 따르면, 그론퀴스트는 1979년 미국 오리건 주에서 태어나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 대학원을 2001년에 졸업했다. 아직까지는 신인예술가인 셈인데, 그는 자신을대중예술가로 규정하고 있다.
이 시리즈는 누리꾼식 용어로 말하면 “혁명이란 아스트랄할 것”이라는 주제로 2008년 5월, 미 LA 1988갤러리에서 연 개인전에서 발표한 것이다. 현재 국내 웹사이트에 도는 이미지는 주로 총기류지만 전시회에 다녀온 미국 블로거들이 남긴 글을 보면 샤넬의 마크를 단 단두대나 프라다 로고를 붙인 변기도 있는 모양이다.
그론퀴스트가 ‘재미삼아’ 명품 로고를 붙인 총기를 만든 것은 벌써 10여 년 전. 그는 ‘와이어드’와 인터뷰에서 “어떤 상품이라도 디자이너 로고를 붙이면 팔린다”라고 말했다. 명품 선호에 대한 일종의 비아냥인 셈이다. 그리고 실제로 팔렸다! 최소 2500달러 이상을 호가하던 그의 총 몇 자루가 전시회 기간 동안 ‘성황리에’ 팔렸다고 한다. 그론퀴스트는 “덕분에 원래 관심 있던 회화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한 평론가는 “(그론퀴스트의 작품은) 전쟁과 자본주의의 상관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했다. 아무래도 업체로선 불편한 일일 텐데, 로고 도용-저작권 위반으로 고소하진 않을까? 실제 나디아 플리스너라는 덴마크의 여성 예술가(1981년생으로 그론퀴스트보다 세 살 아래다)는 다르푸르 학살로 고아가 된 아이들을 돕자는 취지의 그림을 그렸는데, 루이뷔통은 자기 로고를 무단으로 사용했다며 그녀를 고소했다. 현재 나디아의 소송을 돕기 위한 온라인 재단도 만들어진 상태다. 아직까진 그론퀴스트가 고소당했다는 소식은 없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