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정치인’ 이미지 털어낼 수 있을까

정몽준 의원이 지난 1월 20일 용산 참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한나라당 정몽준 최고위원의 최근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사재를 털어 세운 ‘아산정책연구원’을 대폭 확충키로 결정한 데 이어 ‘해밀을 찾는 소망’이라는 별도의 정책연구소를 열었다. 주류 측 의원들과 식사 및 골프 회동을 부쩍 늘린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과 2시간가량 독대한 것도 심상치 않다.
원래 ‘독대’는 조선조 500년을 통틀어 불과 수십 차례밖에 이뤄지지 않은 데서 알 수 있듯이 나라의 흥망과 직결된 사안이 있을 때 예외적으로 이뤄졌다. 군왕의 모든 언행을 빠짐없이 기록하는 사관(史官)을 배제한 채 군신이 밀담을 나누는 것은 <예기> 예운편에서 강조하는 ‘천하위공(天下爲公)’의 공의(公議) 정신과 맞지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통상 당사자가 함구로 일관하게 마련인 청와대 독대가 이뤄질 때마다 여러 해석이 난무하는 것도 이런 역사적 맥락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의 독대를 두고 대권행보의 조기 가동으로 해석하는 게 중론이다. 정책연구소 개소식에 참석한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의 축사가 이를 뒷받침한다.
“어찌 저 같은 연작(燕雀)이 대붕(大鵬)의 꿈을 알겠습니까. 아마도 나라를 살리는 꿈, 겨레를 구하는 꿈일 것입니다. 그의 꿈이 반드시 이뤄지기를 소망합니다.”
제비와 참새를 뜻하는 ‘연작’은 소인, 상상의 길조인 ‘대붕’은 대인을 상징한다. ‘연작’ 운운은 과거 2인자 리더십의 전범을 보여준 김종필 전 총리가 수시로 써 먹은 바 있는 천고의 절구(絶句)이기도 하다.
<장자> 소요유편에 따르면, 대붕은 북해에 사는 전설상의 물고기인 곤(鯤)이 변한 것으로 때가 되면 구만리 창공 위로 올라가 남명(南冥·남쪽바다, 대업을 상징)으로 날아간다. 하루는 조선(매미)이 학구(메까치)와 함께 남명으로 날아가는 대붕을 비웃으며 이같이 말했다.
“내가 결심하고 한 번 날면 이 나무에서 저 나무까지 갈 수 있다. 어쩌다 가끔 땅에 곤두박질할 때가 있기는 하나 대붕은 왜 굳이 구만리 창공을 날아 남쪽으로 가려는 것일까.”
이를 두고 장자는 “조학이 어찌 대붕의 뜻을 알겠는가”라고 물었다. 여기서 천하를 거머쥐려는 대장부의 웅대한 포부를 뜻하는 ‘붕정만리(鵬程萬里)’, ‘대붕도남(大鵬圖南)’, ‘붕도(鵬圖)’ 등의 성어가 나왔다. 대업(大業)의 웅지를 비유한 것이다.
<사기> 진섭세가에 그 실례가 나온다. 진시황 사후 최초로 반기를 들어 보위에 오른 진섭(陳涉)은 젊었을 때 남의 집 머슴이 되어 농사를 지은 적이 있다. 하루는 그가 일손을 멈추고 휴식을 취하던 중 주위 사람들에게 이같이 말했다.
“만일 부귀하게 되면 서로 잊지 말도록 합시다.”
사람들이 비웃었다.
“그대는 머슴으로 있는 주제에 어찌 부귀를 이룬다는 것인가.”
진섭이 크게 탄식했다.
“차호(嗟乎·아), 연작안지홍혹지지(燕雀安知鴻鵠之志·연작이 어찌 홍혹의 뜻을 알겠는가).”
대개 ‘홍혹(鴻鵠)’을 ‘홍곡’으로 읽고 있으나 이는 잘못이다. ‘혹’을 ‘곡’으로 읽으면 ‘적(的·과녁)’의 뜻이 된다. ‘정곡(正鵠·과녁의 한가운데)을 찌른다’는 구절이 실례다. ‘홍혹’을 단순히 홍안(鴻雁·기러기)과 황혹(黃鵠·고니) 등의 큰 새로 새기는 것도 잘못이다. 이는 봉황(鳳凰) 및 대붕과 마찬가지로 상상의 길조를 뜻한다. <시자(尸子)>에 다음 구절이 그 증거다.
“홍혹은 날개가 합쳐지지 않는다. 사해지심(四海之心·사해를 품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버스 요금도 모른다” 구설수
박 대표가 ‘연작’을 ‘홍혹’이 아닌 ‘대붕’에 대비한 것은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과연 그의 주장대로 정 의원의 행보를 대붕의 행보로 간주할 수 있는 것일까. 원래 대붕의 ‘도남’에는 전제가 있다. <장자>의 해당 구절이다.
“수적(水積·물의 층)이 두텁지 않으면 큰 배를 띄울 수 없다. 웅덩이에 배를 띄우면 이내 바닥에 닿고 말듯이 대붕도 풍적(風積·바람의 층)이 두텁지 않으면 큰 날개를 띄울 수 없다. 구만리 창공으로 올라가야만 능히 남쪽으로 날아갈 수 있다.”
여기의 ‘풍적’은 바로 공자가 <논어> 안연편에서 역설한 득민심(得民心)에 해당한다. 박 대표는 비록 축사에서 “이름에 ‘몽(夢)’자가 들어간 그는 ‘꿈의 사나이’에 해당한다”고 칭송했으나 국민들의 신망을 받지 못하면 ‘도남’이 한낱 비현실적인 꿈만 꾸는 ‘도몽(圖夢)’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그는 30년 전의 버스 요금을 현재의 요금으로 대답했다가 구설에 오른 바 있다.
현재 그의 ‘도남’에 대한 당내의 전망은 크게 엇갈리고 있다. 대중적인 흡인력과 광범위한 인맥, 합리적인 성품 등을 근거로 박근혜 전 대표를 누를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는 소위 ‘무이(無二) 대항마설’이 있는가 하면 정반대의 평가도 있다. 소위 ‘일회용 대타설’이 그것이다.
“그를 인간적으로 추종하는 세력은 별로 없다. 주류 측에서 박 전 대표 측을 견제키 위해 잠시 활용하는 카드에 불과할 뿐이다.”
그가 개인적 친분이 있는 소수의 소장파 정치인과 2002년 대선 때 ‘국민통합21’ 캠프에 참여했던 일부 인사만 우익(羽翼)으로 두고 있는 현실을 신랄하게 꼬집은 것이다. 그의 이미지가 이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CEO 출신 정치인’으로 깊이 각인돼 있는 것도 부담이다. 이 대통령이 경제 회생에 실패할 경우 이는 독이 될 수밖에 없다. ‘고용CEO’와 격이 다른 ‘오너CEO’를 내걸고 차별화를 시도할 경우 오히려 ‘재벌 대통령’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만 강화시킬 공산이 크다. 그의 ‘도남’ 행보에 유보적인 전망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가장 큰 문제는 그의 ‘도남’ 행보가 과연 정확히 남쪽을 지향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케 만드는 어정쩡한 모습에 있다. 최근 한 방송의 토크쇼에 출연해 대권과 FIFA 회장 자리를 저울질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게 그 증거다.
“2011년의 FIFA 선거와 2012년의 대선을 둘 다 치를 수는 없는 상황에서 FIFA 회장에 당선한다면 국내 정치인으로 활동하는 것은 어렵지 않겠습니까.”
대권과 FIFA 회장 자리 저울질
‘도남’의 관점에서 볼 때 국가의 흥망을 좌우하는 최고통치권자 자리는 정확히 남쪽에 해당한다. 그러나 세계인의 축제를 주관하는 FIFA의 회장 자리는 일신의 영예와 관련한 까닭에 정반대의 북쪽에 위치해 있다. 만일 그가 오랜 기간의 축구협회장 경력 등을 토대로 ‘도남’ 대신 ‘도북(圖北)’을 선택할 경우 성패와 상관없이 그것 자체로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도북’과 ‘도남’을 저울질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은 큰 실책이다. 필사즉생(必死則生)의 자세로 시종 우국(憂國)의 행보를 보이고 있는 박 전 대표와 대비되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눈에는 지리멸렬(支離滅裂)한 행보로 보일 수밖에 없다.
원래 용봉(龍鳳)의 인물은 세심하게 주의하지 않으면 뛰어난 자질과 강한 자부심이 지리멸렬의 덫으로 작용할 소지가 크다. <열자> 설부편에 이를 경계하는 우화가 나온다.
하루는 양주(楊朱·장자와 쌍벽을 이루는 도가)의 이웃 사람이 양을 잃었다. 그가 무리를 이끌고 양을 찾아 나서자 양주가 물었다.
“겨우 양 한 마리를 잃고서 어찌하여 찾아나서는 자가 이토록 많은 것인가.”
“기로(갈림길)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웃 사람이 빈 손으로 돌아오자 양주가 물었다.
“양을 찾았소.”
“끝내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어찌 그리 된 것이오.”
“기로 속에 또 기로가 있어 어느 길로 가야 할 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양주가 근심어린 표정을 지으며 며칠 동안 침묵으로 일관하자 제자인 심도자(心都子)가 안으로 들어가 물었다.
“같은 스승 밑에서 인의(仁義)를 터득한 3형제가 있었습니다. 부친이 그 요체를 묻자 큰아들은 애신이명(愛身而名·몸을 아낀 뒤 명성을 추구함), 둘째아들은 살신성명(殺身成名·몸을 내던져 명성을 이룸), 막내아들은 신명병전(身名竝全·몸과 명성을 두루 보전함)을 들었습니다. 외견상 상반되나 모두 같은 뿌리에서 나온 듯한데 과연 누가 옳고, 누가 그른 것입니까.”
양주가 되물었다.
“옛날 해변에 사는 어떤 사람이 물과 수영에 익숙해지자 배를 젓는 일로 100명의 식구를 먹여 살렸다. 그러자 양식을 싸가지고 이를 배우러 오는 자가 무리를 이뤘다. 그러나 이들 중 익사하는 자가 거의 절반에 달했다. 본래 이들은 배 젓는 일을 배우러 온 것이지 물에 빠져 죽는 것을 배우러 온 게 아니다. 그럼에도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과연 누가 옳고, 누가 그른 것인가.”
심도자가 밖으로 나와 동학(同學)들에게 말했다.
“대도(大道·큰 길, 대붕의 행로를 지칭)는 ‘다기망양(多岐亡羊)’에 빠지기 쉽다. 귀동반일(歸同反一·근본으로 돌아감)해야 ‘다기망양’의 잘못을 범하지 않게 된다.”
양주와 심도자 모두 대붕이 ‘붕정만리(鵬程萬里)’의 여정에서 ‘다기망양’의 덫에 걸리는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좌고우면하지 말고 구만리 창공 위로 치고 올라가야 한다. 이는 적성(赤誠)을 다하여 득민심(得民心)에 성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최근 일본의 독도영유권 명기 방침과 관련해 한일어업협정의 종료를 일본 정부에 통보해야 한다고 촉구한 것은 독도 문제에 대한 불만이 증폭되고 있는 민심의 흐름에 부합한다. 그러나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최근 전남대에서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것을 두고 학생들이 지난 총선 때 그가 내세운 뉴타운 공약을 ‘용산 참사’와 연계시키며 결사반대하고 나선 바 있다. ‘도남’의 급선무가 ‘재벌 정치인’ 이미지의 불식에 있음을 웅변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신동준<21세기정경연구소장> xhindj@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