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도덕적 우월감 걷어내야

<박민규 기자>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가 자진 사퇴했음에도 ‘용산 참사’의 여진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일하는 국회’의 명분을 내세운 여당이 압박하는데도 야당이 ‘꼬리 자르기’로 폄훼하며 특검과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있는 게 그 증거다. 범국민대책위마저 관련자 전원 사법처리를 요구하며 일련의 규탄집회를 예고해 임시국회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용산 참사’는 이명박 대통령의 불도저 리더십의 폐해가 어떤 것인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무리한 강경진압으로 참사를 부른 경찰, 서둘러 사건을 매듭지어 의혹만 부풀린 검찰, ‘불순세력’ 운운하며 대립정국을 자초한 한나라당의 우행(愚行)은 청와대의 심기를 헤아린 충행(忠行)의 후과로 볼 수 있다. 통치리더십의 부재를 먼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의 질타는 시의에 부합한다.
“개발독재 시절의 밀어붙이기식 리더십과 소통부재의 리더십으로는 결코 21세기의 대한민국을 이끌 수 없다.”
그러나 사실 민주당도 ‘용산 참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과거 유사사건이 빈발하는데도 미봉책으로 일관하며 소모적인 정쟁을 일삼은 전죄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장치 마련이 우선이라는 응답이 특검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보다 20%나 많은 것은 여야를 싸잡아 비판하고 있는 민심의 현주소를 반영한 것이다. 그 또한 임시국회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산업화세력의 공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개발독재의 후유증을 신랄하게 지적한 점에 비춰 민심의 흐름을 익히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제 위기의 심각성을 언급하며 통치리더십의 부재를 언급한 게 그 증거다.
“지금 600만 자영업자와 300만에 달하는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이 부도위기로 길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편 가르기식 인사정책과 무능하고 무책임한 국정 운영에 따른 인재(人災)가 아닐 수 없다.”
대기업과 금융기관의 불공정 행위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제도장치 마련을 촉구한 것은 외화내빈(外華內貧)으로 흐르고 있는 경제정책의 맹점을 짚은 탁견(卓見)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대북지원을 위해 예산의 5%를 투입하라고 촉구한 것은 적잖은 문제가 있다. 예산의 5%는 무려 14조3000억 원에 달한다. 이는 최근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김대중 전 대통령의 소위 ‘북한 노다지론’을 맹목적으로 추수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경제 현실 무시한 대북 지원론
“평화는 곧 우리의 밥이다. 남북평화가 경제이고 국가신용이니만큼 대북경협은 우리의 앞날을 결정하는 가장 적극적인 투자에 해당한다.”
과연 세계적인 경제 위기 상황에서 대대적인 대북경협이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투자’에 해당하는 것일까. 그가 김 전 대통령의 지은(知恩)에 힘입어 오늘에 이르게 된 점을 십분 감안할지라도 엄중한 현실을 간과 또는 무시하고 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원래 경기 부천에서 생장해 경복고를 거쳐 서울대에 입학한 후 교양학부 학생회장을 지낸 그는 민주화운동으로 수차례 제적당했다가 2002년에 역사교육과를 무려 25년 만에 졸업해 화제를 낳은 바 있다. 1981년에 부친과 함께 ‘풀무원식품’을 창업해 성공한 기업인으로 살던 그가 문득 정치인으로 변신한 것은 1992년의 14대 총선에서 김 전 대통령의 전격 발탁으로 고향에서 당선한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그는 김 전 대통령이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할 당시 민주당에 잔류한 채 제15대 총선에 나섰다가 390표차로 석패함으로써 김 전 대통령의 대업(大業) 행로에 동행하지 않은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이후 노무현, 김원기 등과 국민통합 운동을 추진하다가 제15대 대선 직전에 국민회의에 입당한 후 고향에서 재선 시장이 되었다. 당시 함께 입당한 동지가 김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바탕으로 지존의 자리까지 오른 것에 비하면 비록 약소하기는 하나 나름대로 궁조입회(窮鳥入懷·궁지에 몰린 새가 품 안으로 뛰어듦)에 따른 일정한 보상을 받은 셈이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창당할 때 재빨리 편승한 뒤 두 번의 총선에서 내리 당선해 마침내 제1야당의 원내대표 자리까지 오른 데는 역린(逆鱗)에 따른 뼈아픈 실패의 학습 효과가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내심 자신과 비슷한 경력의 노 전 대통령이 걸었던 대업의 꿈을 키우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북한 노다지론’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소위 ‘평화 밥론’을 전개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원혜영 민주당 원내대표와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지난해 12월 29일 밤 원내대표회담을 마치고 연말 법안처리 합의에 실패한 뒤 회의장에서 걸어나오고 있다. <서성일 기자>
그러나 최근 북한이 보여주고 있는 위협적인 행보에 비춰볼 때 그의 ‘평화 밥론’은 분명 시류와 동떨어진 것이다. 장기 포석의 일환이라는 전제를 액면 그대로 인정할지라도 그 돈으로 남침용 최신예 전투기를 무려 130대나 구입할 수도 있다는 지적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이런 식의 우원(迂遠·현실과 동떨어짐)한 접근은 자칫 유수 식품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탓에 서민의 고통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을 들을 소지가 크다. <논어-선진편>에 원 의원이 감계로 삼을 만한 얘기가 나온다.
원래 공자의 제자는 초기에 입문한 안회와 자로, 자공 등 ‘전기 제자’와 공자가 명성을 떨친 후에 입문한 자장과 자하 등 ‘후기 제자’로 대별할 수 있다. 공자사상을 후대에 전파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은 ‘후기 제자’들이다.
시류와 동떨어진 ‘평화 밥론’
후기 제자의 대표 주자는 자장과 자하였다. 자장은 공자보다 48년 연하로 제자 중 가장 나이가 어렸다. 성격이 활달했던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기는 했으나 그다지 좋은 평을 받지 못했다. 성격이 너무 활달해 정연(整然)한 면이 부족한 탓이었다. 그러나 <한비자-현학편>이 지적한 바와 같이 자장학파는 한비자가 활약한 전국시대 말기까지 학맥을 면면히 이어나갔다. 그의 학문이 간단치 않았음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자하는 공자보다 44년 연하로 문학과 예론에 밝았다. 너그럽지는 못했으나 정미한 논의에는 아무도 그를 따르지 못했다. 전국시대 초기의 명군으로 손꼽히는 위문후(魏文侯)가 자하의 문도들을 대거 등용해 천하를 호령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선진편’의 일화는 두 사람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하루는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자장과 자하 중 누가 낫습니까.”
“자장은 과(過·지나침), 자하는 불급(不及·모자람)이다.”
자공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자장이 낫다는 것입니까.”
공자가 고개를 저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과유불급’을 두고 훗날 주희는 “현자(賢者)와 지자(知者)의 지나침이 비록 우자(愚者)와 불초자(不肖者)의 모자람보다 나은 듯이 보이지만 중도를 잃은 점에서는 똑같다는 뜻이다”라고 풀이했다. 타당한 해석이기는 하나 공자가 말한 기본 취지를 제대로 간취하지 못했다. 공자가 여기서 말하고자 한 것은 ‘모자람’이 아닌 ‘지나침’이다. 지나친 부분을 덜어내야 하는 ‘과’는 덜한 부분을 채워야 하는 ‘모자람’보다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취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선진편’의 이 구절을 두고 “지나침은 오히려 모자람만 못하다”라고 풀이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사실 이같이 해석하는 것이 공자가 말한 본래 취지에 부합한다. ‘과유불급’의 사례는 현실 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부시 행정부가 9·11 테러에 놀란 나머지 ‘테러와 전쟁’을 선포하며 이라크를 무력으로 점령한 것이 그 예다. 교각살우(矯角殺牛)와 할계우도(割鷄牛刀) 등의 성어도 ‘지나침’이 ‘모자람’만 못한 것을 경계키 위해 나온 것이다.
여당의 ‘모자람’보다 더 위험할 수도
지금은 이명박 정부마저 ‘7·4·7공약’을 내던지고 올해 경제성장 목표를 마이너스로 잡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예산의 5%를 대북지원 사업에 투여하라고 주장한 것은 ‘지나침’의 전형에 해당한다. 대략 민주화투쟁 경력에 대한 도덕적 우월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짐작된다.
일찍이 도덕적 우월감에 충일했던 맹자도 인정(仁政)으로 천하를 통일할 수 있다고 설파하며 천하를 주유한 바 있다. 그러나 이것이 난세 상황과 동떨어진 주장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조선조의 패망도 이와 무관할 수 없다. 격변하는 21세기의 동북아시대에 ‘모자람’에 머물고 있는 여당과 더불어 ‘지나침’으로 기울고 있는 야당에 적잖은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위기상황에서 정책의 선후완급(先後緩急)을 무시한 그의 이런 ‘지나침’은 청와대의 심기를 좇아 오락가락하며 유예부단(猶豫不斷)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여당의 ‘모자람’보다 일면 더 위험할 수 있다. 실제로 구한말의 위정척사파는 서양의 선진 과학기술조차 양이(洋夷)의 잡예(雜藝)로 폄훼하며 개화를 거부하다가 국가패망을 재촉하는 우를 범한 바 있다.
원래 그는 부천시장에 재선한 2002년 <아름다운 도시를 만드는 55가지 지혜>를 펴내면서 ‘녹화수광(綠花水光·나무, 꽃, 물, 빛)’을 그 해답으로 제시한 바 있다. “울창한 나무와 어우러진 꽃, 깔끔한 조명, 시원한 물줄기가 시민의 가슴을 어루만지는 도시”가 그것이다.
그의 정치역정은 동헌(東軒·수령)에서 선화당(宣化堂·도지사)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묘당(廟堂·중앙조정의 당수)에 승당(昇堂)한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위정자의 성패는 위민거사(爲民去私)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 동헌과 선화당, 묘당에 차이가 있을 수 없다. 묘당까지 승당한 마당에 대업 달성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렇다면 “국민의 가슴을 어루만지는 여의도”를 만드는 게 첩경에 해당한다. 그 요체는 바로 ‘지나침’을 자극하는 도덕적 우월감을 걷어내는 ‘거사’에 있다.
신동준<21세기정경연구소장> xhindj@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