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총재의 석고대죄와 중용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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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소리’ 행보 ‘소수야당 극복’ 주목

지난해 6월 이명박 대통령과 이회창 총재가 담소를 나누며 회담 장소인 상춘재로 향하고 있다. <경향신문>

지난해 6월 이명박 대통령과 이회창 총재가 담소를 나누며 회담 장소인 상춘재로 향하고 있다. <경향신문>

국민을 경악케 만든 ‘용산 참사’는 기본적으로 경찰 수뇌부가 이명박 대통령의 ‘불도저 리더십’에 공명한 나머지 무리한 강경 진압을 시도한 데서 비롯한 것이다. 한나라당 신지호 의원의 ‘고의적 방화 가능성’ 언급은 여권 내 만연해 있는 ‘불도저 리더십’의 폐해 수준을 짐작케 한다. 이 대통령이 경찰청장의 내정 철회 불가 방침을 밝힌 직후 책임 사퇴를 강력 주장했던 일부 의원이 이에 뇌동(雷同)해 ‘체제 전복’ 운운하고 나선 것은 ‘깽판국회’의 전개 과정과 사뭇 닮아 있다.

‘깽판국회’의 공범인 민주당이 태연히 ‘골프 외유’를 떠났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은 후 이를 만회하기 위해 문득 거리로 나선 것도 목불인견(目不忍見)이기는 마찬가지다. 조문에 나선 수뇌부가 유족들로부터 “민주당이 언제 서민에게 관심을 가진 적이 있느냐”며 문전박대를 당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정쟁을 일삼으며 정작 서민들에게 필요한 민생대책의 수립을 소홀히 한 후과가 아닐 수 없다. 여야 모두 관련 법안을 대대적으로 손질해 재발 방지를 제도화하는 게 급선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대통령에 ‘설득·통합의 리더십’ 주문
정부의 대응 역시 초점을 벗어나기는 마찬가지다. TV원탁토론에 나간 이 대통령이 예의 불도저 리더십에 입각한 근거 없는 낙관론을 전개한 것은 그의 위기관리 리더십을 의심케 만들고 있다. 이런 일이 반복될 경우 그의 호언(豪言)은 이내 희언(戱言)으로 치부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가 원내에서 근원적인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며 이 대통령에게 ‘설득과 통합의 리더십’을 주문한 것은 이목을 끌 만하다.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해 자신감을 보이는 것은 좋으나 자신감이 지나쳐 밀어붙이기식 국정 운영으로 연결되는 것은 큰 문제다.”

사실 이번 참사는 공권력이 강자독식(强者獨食)의 개발 방식에 동원된 데서 알 수 있듯이 신자유주의의 정책기조와 무관할 수 없다. 최근의 세계적인 경제 위기는 월가의 무절제한 탐욕과 궤를 같이 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에서 비롯되었다는 게 학계의 중론이다. 일본의 고이즈미 정권에 관여했던 나카타니 이와오(中谷嚴) 미쓰비시 중역도 최근 <참회록>에서 하버드대 유학 시절에 미국의 풍요에 압도된 나머지 신자유주의를 맹신하며 중산층의 몰락을 방관했던 과오를 참회한 바 있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빈부 격차가 극단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국망(國亡)에 이르지 않은 경우는 없다. 공자가 <논어> 계씨편에서 “불환과(不患寡·적은 것을 걱정하지 않음), 환불균(患不均·고르지 못한 것을 걱정함)”을 언급하며 균배(均配)의 중요성을 역설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오바마가 10만 달러 이상의 연봉을 받는 백악관 고위직의 임금을 동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총재가 정치권 전체의 맹성(猛省)을 촉구한 것은 시의적절했다.

“국민 앞에 패자(敗者)일 뿐인 정치권은 지금 누가 이기고 졌는지 따질 게 아니라 모두 석고대죄(席藁待罪席)해야 한다.”
원래 석고대죄는 설령 죄를 짓지 않았을지라도 거적을 깔고 엎드려 스스로 죄인을 자처하는 것을 말한다. 과거 위정자들은 죄책(罪責)의 혐의를 받는 순간 이런 방법으로 ‘법적 책임’에 앞서 ‘정치적 책임’을 자임하고 나섰다. 용산 참사와 관련한 경찰청장 내정자의 진퇴 문제도 이런 맥락에서 해결점을 찾는 게 민심에 부합한다.

사서에는 석고대죄의 사례가 무수히 기록돼 있다. 이역 땅에서 석고대죄한 경우도 있다.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장수 이여송은 평양 탈환전에서 무고한 조선인을 베어 수급(首級)을 허위 보고했다는 비난을 받자 이내 만력제에게 상서를 올리며 석고대죄했다.

“옛날 악양(樂羊·전국시대 위나라 장수)이 중산국(中山國·하북성 일대)을 칠 때 비방의 글이 상자에 가득했고, 마원(馬援·후한제국 초기 장군)이 교지(交趾·베트남)를 평정할 때에도 참소하는 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예전의 명장도 그러할진대 하물며 어리석은 신이야 오직 석고대죄할 뿐 어찌 감히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이 총재의 석고대죄 행보는 현 정부의 출범 때부터 시작된 것이기도 하다. 쇠고기 파동 당시 한·미 FTA 협상을 진두지휘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협상’ 운운하며 용훼(容喙)하고 나서자 “가만히 있는 게 나라에 도움이 된다”며 정문일침(頂門一鍼)을 가한 게 그 실례다. 소위 ‘북한 노다지론’을 전개하며 대북특사 파견 등을 주문한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일침은 더욱 통렬하다.

“과거의 선언이나 합의에 문제가 있으면 후임 정권이 이를 수정하는 것은 당연한 책무다. 전직 대통령이 어떻게 반정부투쟁을 선동하는 듯한 발언을 할 수 있는가.”

사실 북한의 저간 행보에 비춰볼 때 무턱대고 ‘6·15선언’과 ‘10·4합의’를 이행하라고 주문한 것은 전직 대통령으로서 금도(襟度)를 넘은 것이다. 이 총재의 석고대죄 행보는 결과적으로 현 정부의 가려운 곳을 대신 긁어준 격이 되었으나 나름대로 유효적절하게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가장 그럴듯한 것은 최근 창당 1주년 기념 내외신합동기자회견에서 국회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고 통일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국회의원 수를 30% 줄이자고 제안하고 나선 점이다. 이는 ‘깽판국회’에 넌더리를 내고 있는 민심의 정곡을 찌른 것이기도 하다.

세 번의 ‘실패’는 서민정서 소홀 때문
이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그가 진즉 이런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세 번에 걸쳐 분루(憤淚)를 삼키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사실 그는 지난 15·16대 대선 당시 가장 유력한 후보기도 했다. 2007년의 17대 대선에서도 비록 3위에 그치기는 했으나 막판에 박근혜 의원이 합류했다면 능히 반전을 꾀할 수도 있었다. 최근 ‘차기 대통령감’을 묻는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의원과 반기문 유엔총장에 이어 3위를 차지한 것은 반사이익의 측면을 감안할지라도 그의 석고대죄 행보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가 높게 나오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 수 없다. 대권에 대한 회한이 남다를 수밖에 없는 그로서는 내심 오는 2012년의 18대 대선을 겨냥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에 대해 향후 그의 나이가 77세가 되는 점 등을 이유로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는 견해도 있으나 설득력이 약하다. 청대의 건륭제도 태상황으로 있던 3년간을 포함해 89세에 사망할 때까지 총 63년 동안 재위하면서 소위 ‘강건성세(康建盛世·조부인 강희제 때부터 지속된 100년간의 성세)’의 대미를 장식한 바 있다.

그러나 그는 먼저 자신의 모든 언행을 서민의 정서와 일치시킬 필요가 있다. 지난 대선에서 필승지세를 장담하다가 끝내 낙루(落淚)한 것은 바로 이를 소홀히 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초한전 때 모든 면에서 유리했던 항우도 그와 유사한 전철을 밟은 바 있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그 원인을 이같이 분석해 놓았다.

“항우는 패왕(覇王)의 대업을 이룬다는 명목하에 오직 힘만으로 천하를 정복하려고 했다.”
안이한 ‘대세몰이’를 질타한 것이다. 삼국시대 때 천하의 효장(驍將)으로 소문난 관우가 오나라의 어린 장수 육손(陸遜)에게 패퇴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 역시 대선 4수생인 김대중 및 무명의 노무현 후보를 가벼이 여기고 고식적인 대세몰이에 안주했다가 낙마했다.

서민을 위한 ‘위정재인’ 구현 기대
그가 2007년 대선에서 파격적인 서민 행보를 선보인 것은 이전의 실패를 감계(鑑戒)로 삼은 결과로 보인다. 그의 최근 석고대죄 행보는 그 연장선에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현재로서는 우파적인 입장에서 충청도를 대표하는 소수 지역야당의 사령탑에 머물고 있는 까닭에 그의 행보가 소기의 결실을 맺을지는 불투명하다. 보수 세력의 본거지이자 거대여당의 텃밭인 영남지역과 인연이 끊어진 게 가장 큰 이유다.

그러나 큰 틀에서 보면 이는 오히려 전화위복으로 작용할 수 있다. 고려조의 창업주인 왕건이 천하를 태평하게 만드는 요충지라는 취지에서 천안(天安)이라는 지명을 붙인 데서 알 수 있듯이 충청도는 3남 지역을 통어하는 요추(要樞)에 해당한다. 이는 영호남 대립의 지역할거 구도에서 중용지도(中庸之道)를 발휘할 여지가 그만큼 크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만일 그의 석고대죄 행보가 지역할거 구도를 뛰어넘어 장차 남북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중용지도’로까지 승화될 경우 대업 달성의 가능성은 훨씬 크다.

원래 중용의 ‘중’은 불편불의(不偏不倚·한쪽에 치우치지 않음)와 무과불급(無過不及·과하거나 덜한 게 없음), ‘용’은 흔들리지 않는 평상(平常)을 뜻한다. 이는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방안을 찾아내는 통치의 요체를 거론한 것이다. 이를 두고 공자는 <예기> 중용편에서 ‘예의염치(禮義廉恥)’에 입각한 ‘군자정(君子政)’으로 풀이했다.

“군자정은 위정재인(爲政在人)이다. 수신(修身)은 도(道), ‘도’는 ‘인(仁)’으로 한다. ‘인’은 곧 사람을 뜻한다.”
통치의 성패는 학덕(學德)을 연마한 군자가 위정자가 되는지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이는 인(仁)에 입각한 ‘인치(人治)’를 의미한다. 원래 인치와 법치(法治)는 대립개념이 아니다. 서민에 초점을 맞춘 법치는 ‘위정재인’의 진수에 해당한다. 유독 법치를 강조했던 그가 지난 대선에서 소위 병풍(兵風) 및 세풍(稅風)에 맥없이 무너진 것은 그의 ‘대쪽’이미지가 서민과 동떨어진 ‘귀족을 위한 편의적인 법치’로 인식된 결과였다. 그러나 용산 참사에 대해 그의 최근 언급은 이와 사뭇 다르다.

“도심재개발 사업은 인간다운 삶의 조건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인데 고귀한 생명이 희생된다면 과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재개발이란 말인가.”

일단 ‘군자정’의 요체를 파악한 결과로 보인다. 이는 그에게서 ‘위정재인’의 구현을 바라는 많은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기도 하다. 향후의 성패는 그가 얼마나 성공적으로 ‘서민을 위한 법치주의자’로 변신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동준<21세기정경연구소장> xhindj@hanmail.net

신동준 | 21세기정경연구소장. <조선일보> <한겨레> 기자. 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서울대·외국어대·국민대 강사. <자치통감-삼국지> <국어> <공자와 천하를 논하다> <연산군을 위한 변명> 등의 저·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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