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부터 웰빙바람 불면서 채식 관련 책·카페 회원 급증

솎음배추, 토마토 볶음, 늙은호박, 양파찜, 오이채, 버섯볶음 등으로 차려낸 채식 밥상.
아침 - 쌀과 채소(상추, 샐러리, 비타민 등 8~9가지), 사과 갈아서 마시기, 고구마나 옥수수, 검은콩, 견과류.
점심 - 보통 채식 식당을 이용. 검은콩과 과일, 고구마.
저녁 - 버섯 샤브샤브, 두부 요리 등.
보험설계사로 일하고 있는 김선아씨의 하루 식단이다. 김씨는 4년 전부터 고기 대신 우유와 계란을 먹으면서 채식을 시작했다. 그리고 3개월 전부터는 우유와 계란까지 먹지 않으면서 순수 채식주의자가 됐다. 일의 특성상 하루 종일 사람을 만나고, 여러 곳을 다녀야 한다. 하지만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힘들거나 피곤한 것은 없다. 그 대신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는 것과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김선아씨는 이 모든 것을 ‘채식’ 덕분이라고 말한다.
우유·달걀은 각자의 선택으로
채식을 시작한 이후 몸이 가벼워졌고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힘들지 않다. 사람을 만나는 직업이다 보니 외모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데, 남들보다 화장을 덜해도 좋을 만큼 “피부가 좋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김씨는 “건강과 다이어트 때문에 채식을 시작했다”면서 “고기를 먹는 것이 얼마나 비윤리적인지 알려주는 책을 본 이후에는 고기를 완전히 끊었다”고 말한다. 김선아씨는 매주 채식 모임에 나가서 정보도 공유하고, 운동도 함께 하면서 즐거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김씨는 “동물이 얼마나 학대당하는지 알게 되면 고기에 젓가락이 가지 않을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요즘 김선아씨처럼 육식을 피하고 채식을 하는 채식주의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 광우병 파동과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는 조류독감의 영향으로 “이번 기회에 채식을 해볼까”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과거에는 채식주의자에 대해 좋지 않은 시선이 많았지만, 요즘은 채식 관련 카페 회원이 급증하고 있고 관련 책도 쏟아질 정도다. 얼마 전 나온 ‘스키니 비치’(밀리언하우스)는 채식에 관심 있는 여성에게 사랑받고 있는 책으로 손꼽힌다.
채식을 한다는 것은 동물성 음식은 일체 먹지 않고 식물성 위주로 먹는 것이다. 국제채식연맹(IVU, International Vegetarian Union)은 채식을 ‘육지에 있는 두 발과 네 발 달린 동물을 먹지 않은 것은 물론 바다·강에 사는 어류도 먹지 않는 것이며, 우유·달걀은 개인적인 이유로 먹을 수도 있고, 먹지 않을 수도 있다’고 정의한다.
채식주의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세미 채식(Semi, 조류 채식)은 채식을 하면서 닭이나 칠면조 등 조류를 먹는 것이고, 페스코 채식(Pesco, 생선 채식)은 조류나 가금류는 먹지 않고 생선이나 해물 등을 먹는 것이다. 락토오보 채식(LactoOvo, 유란 채식)은 채식을 하면서 달걀(Ovo)과 우유류(Lacto)를 먹고, 락토 채식(Lacto, 우유 채식)은 채식을 하면서 우유와 유제품을 먹는다. 비건 채식(Vegan, 순수 채식)은 유제품을 포함해 일체의 동물성을 배제하고 순식물성 위주로 식사하는 것이다.
2000년부터 웰빙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채식에 대해서 사람들의 시선이 우호적으로 변해갔다. 한국채식연합 이원복 대표는 “채식을 시작한 지 22년이 넘었는데, 처음에는 너무나 힘들고 외로웠다”면서 “함께 채식에 관해 이야기할 사람도 없었고, 관련 책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특히 집을 나오면 변변하게 채식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점이 가장 힘들었다.
“채식한 후 몸이 가벼워졌어요”
채식하는 언니를 둔 직장인 김미란씨는 “언니는 어렸을 때부터 고기를 먹지 않았다”면서 “언니의 모습을 어려서부터 봐서 그런지 채식에 대한 거부감은 없다”고 밝힌다. 또 “채식을 하건 육식을 하건 개인의 기호이니까 인정해줘야 한다”고 덧붙인다. 김선아씨도 채식주의자에 대한 우호적인 시선을 많이 느끼고 있다. 김씨는 “회사 사람들에게 당당히 채식주의자라고 이야기했는데, 다들 이해해줬다”면서 “나 때문에 회식할 때 채식 식당을 갈 때도 많다”면서 웃는다.

조류독감과 광우병이 퍼지면서 채식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서울의 한 채식 뷔페에 사람들이 몰려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
채식인들은 채식해서 가장 좋은 점으로 ‘건강’과 ‘긍정성’을 꼽는다. 채식인들은 “몸이 가볍다고 느낀다”는 말을 자주 한다. 고기를 먹을 때와는 다르게 채식하면서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개운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몸이 가벼워지니까,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더 많이 움직이고 싶어진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채식인을 위한 사회적 인프라 부족
그리고 채식주의자들은 자주 “세상이 너무 행복하다”고 말한다. 채식을 하면 환경보호와 동물사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경우가 많다. 자연스럽게 세상을 넓게 볼 수 있는 시선이 생기는 것이다. 이원복 대표는 “채식하면 심성과 성격이 바뀐다”면서 “육식할 때는 호러나 공포영화를 좋아했는데, 채식을 시작한 이후에는 그런 것을 보지 못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채식주의자는 ‘로하스족’과 비슷한 생활을 한다. 로하스(Lohas: Lifestyle of Health and Sustainability)는 ‘건강과 환경이 결합된 소비자들의 생활 패턴’을 의미한다. 로하스족은 자신의 건강뿐 아니라 환경 파괴를 최소화하는 제품을 선호하는 소비 경향을 보이는데, 채식주의자 역시 로하스족의 생활 패턴과 비슷하다.
하지만 채식주의자로 살아가는 데 몇 가지 어려운 점이 있다. 직장인의 경우 오해가 생길까 봐 ‘채식주의자다’라고 알리는 것을 꺼려하는 상황이 생긴다. 어쩔 수 없이 회식 때마다 동료들을 따라 고깃집을 가는 경우가 많다. 또 채식주의자를 위한 식당도 많이 부족하다. 서울에는 뉴스타트, SM채식뷔페 등 채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15곳 정도밖에 없고, 전국적으로 50여 곳이 채 안 되는 실정이다. 특히 일반 식당에서는 아직도 채식인을 위한 메뉴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일반 식당을 이용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채식주의자들은 채식주의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이 사라지고, 채식인을 위한 사회적인 인프라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원복 대표는 “채식을 시작하려면 먼저 용기를 내야 한다”면서 “은둔형 채식주의자보다 개방형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다른 사람들의 오해를 사지 않고 배려받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채식주의에 대한 관심이 일회성으로 그치게 될지, 자연과 환경보호를 몸으로 실천하는 채식주의자의 확대로 나타날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커버스토리]이번 기회에 채식에 도전해볼까?](https://img.khan.co.kr/newsmaker/776/28_b.jpg)
채식주의자는 비타민 B12가 부족하다? 채식에 대한 가장 큰 선입견이 “채식으로는 충분한 영양소를 공급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채식으로도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소 대부분을 섭취할 수 있다. 단 비타민 B12는 채식만으로는 공급받을 수 없기 때문에, 동물성 식품이나 약으로 보충해야 한다고 알려져 있다. 가톨릭대 김혜경 교수(식품영양학)는 “비타민 B12는 동물성 식품에만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면서 “달걀이나 우유를 먹는 채식주의자는 괜찮지만, 순수채식주의자는 동물성 식품을 오랫동안 먹지 않으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비타민 B12는 악성빈혈을 치료하는 데 사용된다. 또한 적혈구를 포함한 여러 가지 세포의 분열 및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이의 신경계를 발달시키고, 아이의 성장을 돕는다. 비타민 B12가 부족하면 빈혈이 생기는데, 적혈구가 성숙되지 않기 때문이다(흔히 이런 적혈구를 적아구라고 부른다). 비타민 B12는 수용성 비타민으로 체내에 저장되기 때문에 많은 양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청 영양평가과 성현이씨는 “비타민 B12의 섭취량은 성인 기준으로 하루에 5㎍(마이크로그램) 정도로 아주 적은 양이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말 채식으로는 비타민 B12를 섭취할 수 없는 것일까. 이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자료를 참조해야 한다. 미국농무부(USDA)에서 발표하고 있는 ‘National Nutrient Database for Standard Reference’(영양소 자료 DB)에는 비타민 B12를 섭취할 수 있는 재료와 요리가 잘 정리되어 있다. 이 자료에는 500여 식품을 통해서 비타민 B12를 섭취할 수 있는데, 해산물에 비타민 B12가 가장 많다고 밝힌다. 원칙적인 채식주의자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리스트에 거의 없는데, ‘하얀색 날것의 버섯’이 유일하게 올라와 있다. 그런데 비타민 B12의 섭취량은 버섯 70g에서 0.03㎍뿐이다. 식약청의 성현이씨는 “0.03㎍이면 굉장히 적은 양이다”면서 “이 정도를 가지고 버섯에서 비타민 B12를 얻은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라고 설명한다. 시금치, 으깬 감자, 콩 등에서도 비타민 B12를 섭취할 수 있지만, 우유나 프랑크소시지 등의 재료가 첨가된 음식일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단서가 붙는다. 즉 시금치나 으깬 감자, 콩 등만으로는 비타민 B12를 섭취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또 하나 참조할 수 있는 자료는 농촌진흥청 농촌자원개발연구소에서 발표한 ‘식품성분표 7차 개정판’이다. 이 자료에도 비타민 B12를 섭취할 수 있는 식품이 정리되어 있다. 식물성 식품으로는 밤 100g에서 0.1㎍을 섭취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 외에는 식물성 식품에 우유나 치즈 등을 섞어야 비타민 B12를 섭취할 수 있다. 학계나 기타 기관의 발표 자료에 따르면 ‘비타민 B12는 식물성 식품에서 섭취하기 어렵다’고 말할 수 있다. 다만 우유나 계란을 먹는 채식주의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
채식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을 위한 채식 실천 요령 채식하기 위해서는 먼저 채식에 대한 신념이 필요하다. 어디서나 채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신념이 없으면 금방 채식을 포기하기 쉽다. 채식이 무엇인지, 왜 채식해야 하는지, 채식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충분히 알고 나면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꿋꿋이 채식을 해나갈 수 있다. 고기를 먹어온 사람들이 갑자기 고기를 끊으면 어지럼증이나 기력이 떨어지는 현상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식습관을 바꿀 때 일어나는 현상으로 몸이 바뀌면 증상은 자연히 사라진다. 이런 증상을 빨리 없애려면 콩이나 참깨, 검정깨, 잣, 땅콩, 캐슈넛 등이 견과류 등의 식단을 다양하게 꾸며서 섭취하는 것이 좋다. 식사가 부실하면 천연비타민, 천연영양제 등을 필요한 만큼 복용하면 도움이 된다. 채식 요리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 고기나 멸치, 가다랭이로 만든 육수 대신 마른다시마나 무, 표고버섯, 고추씨 등을 우려낸 채수를 사용해야 한다. 육류나 닭고기, 생선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두부나 콩을 활용한 요리로 바꿔야 한다. 쇠고기나 닭고기, 멸치 분말 혹은 화학조미료 대신 표고버섯가루, 다시마가루, 깨가루 등을 써야 한다. 김치는 젓갈이나 액젓, 화학조미료를 넣지 않고 담가 먹는 것이 좋다. 빵은 대부분 계란이 들어가고, 과자는 동물성 기름이 들어가는 것이 많다. 채식 빵과 과자로 바꾸는 것이 좋고 되도록 직접 만들어 먹는 것을 권장한다. 각종 과일류를 고루 섭취하고 제철과일을 제때 먹는 것이 좋다. 또 좋은 소금과 된장 그리고 간장을 쓰면 채식 본래의 깊은 맛을 더 느낄 수 있다. |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