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층, 안전한 유기농 제품 선호… 서민들은 선택의 여지 없어
경기 부천에 사는 주부 김진영(가명)씨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동네 시장 마트에 들렀다. 김씨는 생닭 한 마리(3500원)와 두부 한 모(1500원), 그리고 무우 1개와 배추 한 포기를 1000원씩 주고 샀다. 조류인플루엔자(AI)가 서울까지 확산됐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지만 김씨에게는 남의 일만 같다. 이미 얇아질 대로 얇아진 지갑 사정에 맞춰 가족의 건강을 생각하면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조류인플루엔자에 대해 ‘끊여 먹으면 안전하다’는 말이 그나마 위안거리다.

주부들이 백화점 친환경 농산물 코너에서 채소를 고르고 있다. <강윤중 기자>
서울 강남에 사는 주부 이영임(가명)씨도 반찬거리를 구입하기 위해 가까운 백화점 식품부에 자주 들른다. 이씨는 일반 식품 매장을 지나쳐 친환경·유기농 제품 매장으로 곧장 갔다. 광우병, 유전자변형(GMO) 식품 등 먹을거리에 대한 불안감을 계속 들어온 터라 이씨는 가족의 건강을 위해 식품 구입 비용만큼은 전보다 더 들이기로 했다. 그는 유기농 매장에서일반 매장보다 50% 이상 비싼 무우·배추 등 채소를 샀으며, 육우 매장으로 가 한우를 살까 호주산 쇠고기를 살까 망설이다 호주산보다 한우가 더 안전할 것 같아 가격이 훨씬 비싼 한우 쇠고기를 구입했다. 호주산도 광우병과는 무관하다고 하지만 왠지 그에게는 외국에서 들여오는 쇠고기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요즘 곡물 등 국제 원자재 가격과 유가 급등으로 물가가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다. 특히 정부가 물가관리대책으로 지정한 52개 생활필수품 가격을 지수화한 ‘MB(이명박)지수’는 전년보다 5.88% 올랐다. 여기에 먹을거리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따른 광우병 노출 가능성, 방역 당국을 비웃기라도 하듯 번지는 조류인플루엔자, 5월부터 수입된 유전자변형 옥수수 등 식품에 대한 불안감이 한꺼번에 터지고 있다.
현정부 들어 양극화 갈수록 심화
이러한 이중고를 서민들은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저소득층으로서는 교육·정보통신비 등 고정 비용을 줄일 수 없는 대신 먹을거리인 식료품 비용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먹을거리에 대한 불안감은 온 국민이 갖고 있지만 사회 계층마다 느끼는 정도와 대처 방법이 다르다. 즉 부유층은 먹을거리 불안감에 유기농 제품 등 더 안전하고 비싼 제품을 구입해서 먹으면 되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민들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다.

서울의 한 재래시장. <서성일 기자>
‘먹을거리 양극화’는 가족들의 외식 문화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연봉이 2000여만 원인 황모씨는 일요일 오후 가족들과 외식을 하기로 했다. 외식 장소는 동네에 있는 중국집, 적은 돈으로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곳이 중국집밖에 없기 때문이다. 황씨 가족은 자장면 두 그릇(6000원), 짬봉 두 그룻(7000원)과 탕수육(1만5000원)을 시켰다. 황씨는 2만8000원으로 외식하자고 떼를 쓰던 아이들의 입을 막을 수 있었다.
반면 억대 연봉을 받는 펀드매니저인 최모씨는 휴일에 가족과 함께 근처의 패밀리 레스토랑에 갔다. 가족은 호주산 스테이크(2만9000원)와 샐러드(1만5000원), 와인(3만5000원), 음료수를 시켰다. 이날 가족 4명이 외식에 쓴 돈은 20여만 원으로 평소 한우 고깃집 등 다른 음식점에 다닐 때와 비슷하게 나왔다. 먹을거리 불안과 웰빙 바람으로 패밀리 레스토랑과 고급 한식당을 찾는 고객이 부쩍 늘었다.
최근 들어 먹을거리에 대한 불안감과 물가 급등으로 인해 밥상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도 심화하고 있다. 사회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으며, 이 같은 현상이 국민들의 장바구니에 직접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양극화’ 현상은 이른바 ‘강부자 내각’이라는 이명박 정부와 오버랩되면서 이전 정부보다 더 계층 간의 위화감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명박 정부 들어 대기업·중소기업, 소득·소비, 교육정책의 양극화를 넘어 식생활(문화생활)의 양극화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먹을거리 양극화는 기본적으로 사회 계층의 소득의 양극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회적으로 볼 때 저소득층에는 생존을 위한 최소 가격의 먹을거리가 제공된다. 즉 우리 사회의 저소득층은 우리 농산물보다 가격경쟁력에서 우월한 중국산 등 수입 식품을 소비할 수밖에 없다. 중산층도 마찬가지다. 일정한 소득을 기반으로 하는 이들은 최근 같은 고물가 시대에 생존 전략으로 교육비 같은 경직성 비용보다 식료품 비용을 줄임으로써 먹을거리의 수준을 한 단계 낮추고 있다.
교육·통신비 대신 식료품비 줄여
하지만 부유층들은 연일 ‘위험하다’고 보도되는 식품을 찾을 이유가 없다. 전체 가계 비용에서 식료품 비용이 늘어나더라도 타격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먹을거리 안전 문제로 건강을 해칠 확률이 상위 계층보다 하위 계층이 훨씬 많다. 이는 우리 사회의 또 하나의 갈등 요소가 될 가능성이 크다. 박진도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 국민의 엥겔지수(소비 지출 중 식료품 비중)가 25% 정도 되는데, 부자들은 별로 영향이 없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환경정의 신권화정 식품팀 부장도 “부자들은 품질이 좋은 식품을 먹고 가난한 사람들은 문제점을 알면서도 질 낮은 식품을 먹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부유층이라고 무조건 안전하다는 시각은 잘못된 것이다. 소비자시민모임 우혜경 대외협력팀장은 “기본적으로 서민층에서 피해를 보는 것은 맞지만 군대·학교 등 단체급식에 질 낮은 쇠고기 등 식자재를 공급한다면 우리 사회 전체가 피해를 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먹을거리 양극화는 비단 우리나라의 현상만은 아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광우병이 창궐했던 영국에서 부유층들은 앵거스 쇠고기만 찾았다. 영국 스코틀랜드 원산인 앵거스는 보통 흑소라고 알려져 있으며 곡물로 사육하기 때문에 호주나 남미의 소에 비해 더욱 골고루 발달된 지방무늬(마블링)가 일품이다. 미국에서 부유층은 20개월 이하의 쇠고기만 찾는 반면 하류층은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먹는 것도 경제적인 이유에서다.
더 나아가 식량 공급의 불안은 사회 문제화할 수 있다. 최근 지구촌 곳곳에서 쌀 등 식량 문제로 폭동이 일어나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식량 가격이 치솟아 구입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폭동밖에 없다.
먹을거리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정부가 복지 부문에 더 많은 예산을 배정해 서민층을 더 배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국민들도 생협(생활협동조합)을 통해 직거래로 친환경 상품을 구입하고 공정무역으로 들여온 수입 식품을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태석 전북대 사회교육학부 교수는 “먹을거리에 대한 안전성 확보에 투자하는 것을 아끼지 말아야 하고, 복지 비용을 확대시켜 국민들이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비자시민모임 손보경 대표는 “생협이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생협을 통한 친환경 제품 가격은 따지고 보면 비싸지만은 않다”고 강조했다. 손 대표는 “가격이 비싼 이유는 복잡한 유통 구조 때문”이라며 “정부가 농가 보조금을 늘리는 것보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잇는 유통망을 설립해주는 것이 국민들에게 이익”이라고 밝혔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