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공예 명장을 넘어 인간문화재로 일가 이뤄
투박하고 거친 돌이 그의 손을 거치면 예술작품이 되고 종교적 상징물이 된다. 40여 년을 석공예 외길을 걸어온 김옥수 일심석재 대표(54). 그는 ‘대한민국 석공예 명장’으로 독보적 경지에 오른 인물이다. 2001년 대한민국 석공예 명장(노동부)으로 선정되고, 2006년 11월 석공예 분야 인간문화재(36호)로 지정된 우리 시대 최고의 장인이다. 전국적으로 석공예 명장은 14명에 불과하다. 그중에서 인간문화재의 경지에 오른 사람은 김 명장을 포함해 3명뿐이다. 김 명장은 1954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14세에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가난과 배고픔 때문이었다. 석재공장이 몰려 있던 서울 망우리에 자리 잡은 김 명장은 그곳에서 석재기술을 배웠다. 자신과 같은 또래가 입은 교복차림이 너무 부러워서 남몰래 눈물을 훔치던 김 명장은 망치로 돌을 깨면서 ‘이것도 공부다’라는 말을 수없이 되뇌였다.
수년간 돌을 깨니 석공예의 오묘함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석공예가 인생을 걸 만한 일이란 확신이 들었다. 김 명장은 “고달픈 세월을 보내면서 기술을 배우고 내가 갈 수 있는 길은 오직 석공예라는 것을 깨달았다. 좋은 작품이 타인에 인정받을 때 고단함도 사라졌다”라고 술회했다. 한 우물을 꾸준히 파니 역시 기회가 왔다. 1975년 국제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해 은메달을 획득한 것. “열심히 노력하면 돈도 벌고, 작품도 남기는 참 좋은 직업이다 싶더군요. 그래서 황등석으로 유명한 돌의 고장이라는 익산에서 능력을 더 연마하자는 마음으로 1984년 이사 와 정착한 거죠.” 김 명장은 이후 익산시 석재인과 기술교류, 석재연구 등 많은 활동을 하면서 일심석재를 설립했고 지금의 터전에서 석공예 명장과 인간문화재라는 일가를 이루어냈다.
석재박물관 건립과 돌문화 보존도 주도
김 명장은 자신을 석공예의 선조이며 익산미륵사지 석탑을 만든 백제 아사달의 후예라고 말한다. 백제 석공예의 후손으로 자부심이 대단한 김 명장은 익산의 대표 축제인 ‘돌문화축제’를 주도하고 있다. 익산은 뛰어난 화강암과 백제의 석재유물, 세계적인 미륵사지석탑을 비롯해 왕궁리5층석탑, 동고도리석상 등 자랑스러운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 김 명장은 “위대한 백제 석공예인의 후손으로 익산이 아름다운 ‘돌의 고장’임을 널리 알리고 싶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는 1991년에 ‘돌문화 보존회’를 만든 이유기도 하다.
김 명장의 또 다른 요즘 관심사는 ‘익산 돌다루기 놀이’의 활성화다. 이를 민속놀이로 승화해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음으로써 석재 관련 업체들의 자긍심과 사기를 드높이고 건축·공예·조각 등 석재산업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석재박물관도 설립해야 한다. 마한과 백제문화가 살아 숨쉬는 익산에 국내 석재유물을 전시하는 ‘석재박물관’을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작은 소망이다. 김 명장은 “석재박물관과 전수관을 짓는 것은 우리의 찬란한 석재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출발점”이라며 “정부에서도 이런 박물관이나 전수관 하나 정도는 세워줄 만한 제도적인 장치와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김태열 기자 yol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