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복 국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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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채 출신 첫 수장’ 正道를 이탈하다

[1000자 인물비평]김만복 국정원장

김만복 국정원장이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과 나눈 대화를 기록한 대화록을 유출한 것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이름이 특이해서 한 번 그의 이름을 들은 사람이라면 쉽게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이름은 2003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보관리실장(1급)으로 임명되면서 정가에 떠올랐다. 당시 청와대 실세는 이종석 NSC사무차장(차관급)이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퍼져 있을 때였다. 그래서 이종석계 인물로 제일 처음 꼽혔다.

북한을 전공하는 소장 진보학자인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과, 한때 학원 사찰 업무를 맡았던 북한 관련 정보 전문가인 김 원장의 특이한 인연은 세종연구소에서 비롯했다. 그에게 세종연구소 행은 명예퇴직과 같은 ‘무덤’ 자리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전 장관에게 세종연구소는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요람’이었다.

이 전 장관은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한 후, 제16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외교·통일·안보분과 위원이 되면서 관가로 진출했다. 그리고 청와대에 입성한 후 실세로 불렸다. 이 전 장관의 뒤에 김 원장의 이름이 나타났다. 그는 NSC사무차장에서 2004년 국정원의 요직인 기획조정실 실장(차관급)으로 컴백했다. 세간에서는 이 전 장관 덕분에 금의환향했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이 전 장관이 통일부 장관으로, NSC 상임위원장으로 ‘잘 나가는’ 동안, 그 역시 국정원에서 ‘잘 나가는’ 인물이 됐다.

마침내 그는 2006년 11월 자신이 몸담았던 직장에서 ‘국정원장’이라는 최고의 수장이 됐다. 그는 1974년 중앙정보부에 들어가 32년 만에 국정원장이 됐다. ‘공채 출신 첫 국정원장’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래서인지 국정원을 매우 잘 아는 국정원장에 거는 국민들의 기대가 컸다.

그는 지난해 최고의 시절을 보냈다. 2차 정상회담에서 남북 두 정상을 연결하는 최고의 역할을 했는가 하면,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 사건을 원만하게 푸는 ‘해결사’ 노릇을 했다. 국정원 출신 국정원장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에 보답하는 듯했다.

하지만 2007년 대선이 끝난 지금, 그는 초라한 모습으로 사퇴 의사를 밝혔다. 그는 2006년 취임 일성에서 “2007년 대선은 우리의 정치적 중립 원칙이 확고히 정착됐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며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정치적 중립을 확고히 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보안이 생명인 정보 요원의 기본자세를 망각하고 정치권 줄대기, 정보 누설 등으로 조직을 존폐 위기에 빠뜨리는 일체의 행동에 대해서는 엄정히 대처할 것”이라고 직원들에게 경고했다.

국정원을 너무나 잘 아는 그였기에 취임 일성에서 그는 정치적 중립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저버리고, ‘정치권 줄대기’의 덫에 빠진 모습이 됐다. 사실의 진위와 관계없이, 순수한 국정원 출신 국정원장의 마지막 뒷모습이 아름답지 못했다는 점은 국정원이 얼마나 힘든 과정을 거쳐야 국민들에게 가까운 기관으로 다가갈 수 있을까라는 물음표를 또 한 번 남겼다.

<윤호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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