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아탄 배 ‘난파’ 구할 ‘선장’으로
대통합민주신당은 과반은 아니지만 아직 절반에 육박하는 의원을 보유하고 있는 다수당이다. 하지만 이 거함은 총선을 앞두고 침몰이 예고됐다. 40석도 겨우 건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이름은 거창하게 ‘대통합’이라는 명칭을 달고 있지만, 거함이 아니라 석 달 후 보트로 옮겨타야 할 형편이다. 총선체제에 들어가기 전 이미 탈당 행렬이 줄을 이을 것으로 예상된다. 껍데기만 거함인 이 배의 선장으로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임명됐다.
지난해는 그에게 ‘고난의 해’였다. 한나라당 내에서 대선 후보로 부상하는 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명박·박근혜 후보에 밀려 3위를 전전하다, 결국 ‘안에 있으나 밖에 있으나 시베리아’라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3월에는 자신의 정치적 운명을 걸고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스스로 ‘시베리아 행’을 택한 그에게 범여권 후보 중 1위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상품으로 주어졌다.
대세론을 바탕으로 그는 6월에 범여권 합류를 선언하고 신당 창당에 참여했다. 범여권에 몸을 담았지만, 그의 생각은 한나라당에 머물렀다. 한 도시의 경선에 내려갈 때의 일이다. 손 대표는 일정을 담당하는 보좌진들에게 사진이 근사하게 나올 수 있는 시장을 물색하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반대 쪽의 정동영 후보는 달랐다. 정 후보는 그 도시의 당내 조직을 담당하는 유력 인사들을 직접 만나러 다녔다. 심지어 정 후보는 2004년 공천 당시 자신이 내친 지역 책임자에게까지 찾아가 그때 일을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는 뻔했다. 손학규 대세론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두 사람 모두 이미지를 중요시하지만 선거 전략은 매우 달랐다.
대통합민주신당에서는 손 대표를 김혁규 전 의원과 비교하기도 했다. 3선의 경남도지사로 대통령감으로도 물망에 오른 김 전 의원이 열린우리당에 들어가면서 힘을 잃는 과정과 비교한 것이다. 한나라당 내부의 생리와 열린우리당·대통합민주신당의 생리가 그만큼 다르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열린우리당·대통합민주신당의 내부 경선에서는 늘 전략과 전술이 난무했다. 언론 플레이와 조직 동원, 계파 간의 이합집산을 잘 하는 쪽이 당내 헤게모니를 장악했다. 손 대표와 김 전 의원은 여기에 적응하지 못했다.
지난해 당내 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이후 그는 낮은 자세로 엎드리면서 선대위원장으로 활약했다. 대선은 한나라당의 압승으로 끝이 났다. 언제나 전략과 전술에 능했던 대통합민주신당은 대선에서 참패해 위기를 맞았다. 국민들은 전략과 전술로 위기를 넘기는 대통합민주신당식 정국 운영에 환멸을 느끼고 있다.
손 대표가 총선이라는 큰 파도를 앞두고 거함의 선장이 된 데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가 어떤 길을 택할지에 대한 뚜렷한 정답은 없다. 한나라당과 같은 방식도 아니고, 기존의 범여권이 걸어온 길도 아닐 것이다. 야당 대표로 출발하는 그의 앞에는 새로운 길이 놓여 있다. 그가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하다.
<윤호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