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 민영화보다 우정청 승격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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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부시 대통령이 2006년 12월 우정청 조직을 그대로 둔 채 개혁한다는 내용의 새 우편법에 서명하고 있다.

미국 부시 대통령이 2006년 12월 우정청 조직을 그대로 둔 채 개혁한다는 내용의 새 우편법에 서명하고 있다.

2003년 재선에 도전한 조지 부시 대통령은 2기 정부에서 추진할 주요 국정 추진과제를 목록으로 만들었다. 그 상위 목록에 우편 개혁이 있었다. 전통적인 고비용 배달망을 운영하느라 적자에 허덕이는 우정청(USPS)을 디지털 시대에 어떻게 할 것인지가 문제였다. 부시의 특별지시로 구성된 대통령직속 위원회는 광범위한 조사와 여론 수렴 끝에 그해 7월 최종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 보고서 첫장 첫머리에 나오는 결론은 이렇다.

“우정청은 공공기관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우정청을 민영화하려 들지 말고 현 상태로 유지하라는 것이다. 위원회는 그 이유에 대해 “일부에서는 온전한 기업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갑작스러운 민영화는 매우 위험하며 우편의 보편적 서비스를 불안하게 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독자 경영을 수행하는 연방정부 내 독립기관으로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권고였다.

그때까지 우정청 폐지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처럼 보였다. 돈 먹는 하마를 국가가 왜 끼고 있느냐는 분위기가 미국 내에 팽배했고, 유럽 여러 나라에서도 우정을 속속 민영화하고 있는 터였다. 그런데 예상 밖의 결론이 나온 것이다.

위원회는 정부가 우편사업을 독점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정리했다. 먼저 정부의 독점영역이 어디까지인지 명확히 하고, 점진적으로 이를 시장에 개방하라고 권고한 것이다. 그러니까 우편물의 정부 독점을 기본적으로 유지하되 일정한 기준을 정해 비싸고 무거운 우편물 배달은 풀어서 민간과 경쟁하도록 하라는 뜻이다.

우정청을 유지하면 적자구조는 어떻게 하나. 위원회는 이에 대해 우체국 배달망을 구조조정하는 등 자체적으로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다른 한 편으로는 우편 요금을 인상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이와 함께 급변하는 시장환경에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우정청의 권한을 키워야 한다는 권고도 덧붙였다.

여기서 우리의 우정사업본부을 떠올려보자. 우편 독점과 관련해서는 우리의 시장상황 역시 미국과 다르지 않다. 정부의 독점영역이 모호해 불법이 있어도 단속하거나 규제하기가 어렵다. 이 때문에 일정 중량 이상의 우편물은 민간에서도 취급할 수 있도록 국가의 우편 독점을 일부 완화하는 우편법 개정안을 마련해 현재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미국과 같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조직의 규모나 효율성 면에서는 뚜렷이 대비된다. 미 우정청은 우본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거대조직이다. 우편사업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미국 내 열한 번째, 고용하고 있는 직원 규모로 보면 두 번째로 큰 기업이다. 위원회가 보고서를 낼 때 누적 적자가 무려 900억 달러에 달할 만큼 빚덩어리 기업이다.

하지만 우본은 9년 연속 경영수지가 흑자다. 우편사업이 한때 적자였으나 지난해 흑자로 다시 돌아섰다. 소비자들의 평가도 우호적이다. 공공행정부문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9년 연속 1위를 차지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문제는 우본의 위상이다. 우본은 정부 조직법상 중앙행정기관(정보통신부)의 소속기관에 불과하다. 그래서 미 우정청과 달리 대외 독립성이 전혀 없다. 다른 부처와 협의할 일이 생겨도 본부장 관인을 찍은 문서를 보낼 수가 없다. 인사, 재무, 조직에 관한 변경사항이 있으면 내부 결재 외에 정통부 장관의 인가를 일일이 받아야 한다. 자고 나면 달라지는 인터넷 시대에 신속한 의사 결정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우정사업본부를 우정청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끊임없이 나온 것은 이 때문이다. 차기 정부 출범을 앞두고 정부 조직개편이 한창이다. 우정사업을 민영화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하지만 미국 예에서 보듯 민영화가 능사는 아니다. 보편적 서비스를 저해할 우려가 있는 민영화는 장기 검토 과제로 미루고 우정청 승격부터 하는 게 순리다. 그게 우정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길이다.

〈이종탁 경향신문 논설위원〉 jt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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