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이 게 맛을 알아?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글루코사민 당류 성분이 많이 들어 있는 게.

글루코사민 당류 성분이 많이 들어 있는 게.

한때 유행했던 이 말처럼 찜통에서 갓 익힌 게 맛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그러나 게는 갑각류의 제왕이니만큼 게 속살을 먹으려면 딱딱한 게 껍질을 벗겨내야 한다. 그런데 살에 비하면 정말 쓸모없을 것 같은 껍질에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 안에 노화를 억제하고, 면역력을 강화하며, 질병을 예방하고, 생체리듬을 조절해준다는 키틴, 키토산, 키토올리고당 등의 글루코사민 당류 성분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 성분들은 콜레스테롤을 흡착하고 배설하는 탈콜레스테롤 작용과, 암 세포 증식을 억제하는 항암 작용을 한다. 그리고 혈압 상승의 원인이 되는 염화물 이온을 흡착해 장에서의 흡수를 억제한 뒤 체외로 배출함으로써 혈압 상승을 억제하고, 장 내의 유효 세균을 증식시킴으로써 세포를 활성화한다. 그밖에 혈당 조절과 간 기능 개선, 체내 중금속 및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등의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게 껍질 속 키틴, 키토산에 주목
키틴을 처음 발견한 것은 1811년이다. 프랑스의 자연사학자 브라코노가 버섯에 들어 있는 미지의 성분, 즉 키틴을 처음 발견한 것이다. 그 후 1859년 화학자 루게가 키틴을 탈아세탈화해 새로운 물질을 얻어냈는데, 1894년 후페 자이라가 이를 ‘키토산’이라고 불렀다. 키틴과 키토산을 실용화한 것은 1960년대 일본 과학자들이다. 일본 사람들은 게를 좋아해 많이 먹는데 그 껍질이 쓰레기 문제를 일으켰다. 그러자 몇몇 과학자가 이 게 껍질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으며, 얼마 안 있어 키토산을 주성분으로 하는 식품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전남대 박노동 교수(농업생명과학대학장)에 따르면, 게·새우 등 갑각류의 껍질과 버섯 등 균류의 세포벽을 구성하는 주성분인 키틴은 아미노산중합체로 이뤄져 있다. 키틴은 매우 단단한 구조를 하고 있어 물에 녹지 않지만, 이 키틴을 가열해 진한 알칼리용액에 담가두면 그 분자에서 아세틸기가 떨어져나가 아미노기로 바뀌는 ‘키토산’이 된다. 동물성 식이섬유로 불리는 키토산과 키틴을 총칭해 ‘키틴질’이라고도 하는데, 21세기 들어 이 키틴질이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노화했거나 파괴된 세포를 재구성할 수 있는 재료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포를 구성하는 다당류에는 동물에서 생성되는 키틴과 식물성 셀룰로오스가 있다. 지구 상에서 생성되고 있는 키틴의 양은 연간 약 1000억 t. 이는 식물이 생성하고 있는 셀룰로오스 양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박 교수는 “이 두 개의 고분자 물질이 지구환경 및 생태계의 밸런스를 유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환경 파괴와 함께 생태계 파괴가 급속히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키틴과 셀룰로오스는 지구 상에 엄청난 양의 세포를 생산하면서 생태계 균형을 맞춰나가고 있다는 것.

의료, 식품, 화장품 등 실생활에 응용

키틴을 함유하고 있는 균주.

키틴을 함유하고 있는 균주.

키틴과 셀룰로오스 성분에는 둘 다 물에 녹지 않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셀룰로오스는 성분을 구성하는 그 실(조직)이 잘 보여 일찍부터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실생활에 활용할 수 있었다. 반면 키틴은 성분을 분석하기 어려워 연구와 실용화가 늦어졌다.

놀라운 것은 우리 조상들이 오래전부터 키틴의 효능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게 껍질을 갈아서 상처 부위에 발랐으며, 남새밭에 뿌려서 채소를 건강하게 재배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된장 역시 키틴을 섭취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된장을 발효시킨 곰팡이와 같은 균류에 키틴 성분이 많이 함유돼 있는데 그 결과 된장을 섭취했을 경우 키틴 성분을 섭취하는 것과 마찬가지 효과를 볼 수 있었다. 메뚜기, 번데기 등 키틴을 많이 함유하고 있는 일부 곤충류를 식품화해 사용한 것도 조상들의 지혜로 볼 수 있다.

최근 들어 키틴 혹은 키토산 성분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무궁무진한 이용가치 때문이다. 박 교수는 이 키틴과 키토산이 “의료, 식품, 화장품, 섬유 등 실생활에 안 쓰이는 곳이 없을 정도”라고 설명하고 있다. 일례로 외과 수술을 할 때 봉합하는 실의 원료로도 쓰이는데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실과 다른 점은 나중에 그것을 빼낼 필요가 없다는 것. 그냥 두면 자연스럽게 세포 성분으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의료계에서는 이 성분의 특성을 살려 암, 당뇨병, 신장병, 신경통 등의 질환이 있는 환자들의 면역력을 높이는 데 이용하고 있다.

농업 분야에서도 키틴과 키토산은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일례로 토마토를 심어 키틴과 키토산 처리를 하면 그렇지 않은 것들보다 생장속도가 매우 빠르고 왕성해지고, 사과의 경우도 키토산으로 처리한 사과는 벌레가 잘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또 오염된 하수 정화에도 키토산을 사용하는데 이는 농업과 환경 분야에 이들 성분을 무한할 정도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해주고 있다”고 박 교수는 설명한다.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게 껍질을 이용해 키토산을 제조할 때, 2N HCl을 처리하는 탈 회분 과정(실온), 1N NaOH를 처리하는 제단백 과정(100℃), 40% NaOH를 처리하는 탈아세틸화 과정(100℃) 등의 처리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이 공정은 폐기물 처리 등 환경 부담과 함께 장비의 부식, 제품의 안정성 등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 실제로 키틴을 생산하는 공장은 절반이 폐기물 처리시설로 채워져 있지만 최근 화학 공정을 줄이고 미생물이나 효소를 이용하는 생물 공정 기술이 개발됨에 따라 새로운 공정 개발과 함께 게 껍질 산업도 크게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이강봉<사이언스타임즈 편집위원>>

과학이야기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