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이져 시스템에 들어갈 파이프. 시추공이 깊어질수록 치큐와 드릴을 열결하는 파이프가 많이 필요하다.
인류는 무인우주선으로 지구에서 155억㎞나 떨어진 태양계 외곽을 탐사하고 심해잠수정으로 깊이 10㎞ 바닷속의 해구까지 탐사했지만, 아직까지 지각을 뚫고 그 아래에 있는 맨틀까지 도달한 적은 없다.
지질학자들은 20세기 중반부터 지구의 속살인 맨틀에 도달하려고 노력해왔다. 1957년 지각과 맨틀의 경계인 모호로비치치 불연속면을 탐사하는 모홀 계획을 세웠고, 그 뒤 심해저 굴착 계획, 심해저 시추 계획을 거쳐 2003년에는 맨틀까지 탐사할 수 있는 ‘국제공동해양시추프로그램(IODP)’을 출범시켰다. 현재 이 프로그램에는 미국, 일본, 한국을 비롯한 21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IODP의 일환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심해시추선 ‘치큐’가 세계 최초로 맨틀까지 파고들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미국의 ‘조이데스레절루션’이나 유럽연합의 ‘미션스페시픽’ 같은 시추선은 최고 3㎞밖에 파고들지 못했지만 치큐는 7~10㎞까지 시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해양지각의 두께는 6㎞ 정도라 맨틀까지 뚫는 일도 가능하다는 것이 관련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현재 심해시추선 ‘치큐’는 난카이 해구 근처에서 1단계 탐사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2012년까지 지구의 속살인 맨틀에 도달할 야심찬 계획을 품은 치큐를 만나보자.
‘명품 진흙’으로 시추공 붕괴 막아

위_첫 출항에 나선 심해시추선 치큐. 일본해양과학기술센터(JAMTEC)가 중심이 돼 건조했다.
아래_라이저 시스템의 맨 끝에 쓰이는 특수 드릴. 네 개의 날이 회전하며 암석을 뚫고 작은 구멍에서 진흙을 내뿜는다.
치큐(지구의 일본어 발음)는 일본이 1000억 원을 들여 제작한 최신 심해시추선이다. 중량이 5만8000t에 이르는 거대한 배인 치큐는 길이가 축구장에서 긴 쪽의 2배에 해당하는 210m이고 높이가 30층 건물과 비슷한 130m다.해저 바닥에서 2㎞ 가량만 뚫을 수 있었던 기존 시추선과 달리 치큐는 7㎞ 이상 시추할 수 있다. 이는 치큐에 석유시추용으로 쓰이던 ‘라이저 시스템(riser system)’을 적용했고, 이 시스템에 ‘분출방지장치(BOP)’를 장착했기 때문이다.
라이저 시스템이란 시추선과 해저 사이를 파이프로 연결하는 장치인데, 시추는 이 파이프 안에서 드릴이 회전하면서 진행된다. 이 시스템의 중간에 달린 분출방지장치는 시추할 때 드릴이 땅속의 가스전을 잘못 건드릴 경우 가스가 배까지 올라오는 현상을 막는다. 분출방지장치가 있으면 시추공의 입구가 막히기 때문에 가스가 시추공 안에서만 폭발해 시추장비만 망가지고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는다.
이전 시스템에서는 드릴이 암석을 뚫을 때 생기는 파편이 시추공에 쌓여 드릴의 회전을 막았지만, 라이저 시스템은 드릴에 있는 작은 구멍을 통해 걸쭉한 진흙을 주입하기 때문에 암석 파편이 진흙에 밀려 위로 떠오른다. 그 덕분에 암석 파편이 드릴을 방해하지 않을 뿐 아니라 현재 어느 부분의 암석을 파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또 진흙은 시추공의 빈 공간을 메우며 주위 압력 때문에 시추공이 붕괴하는 일도 막는다.
흥미롭게도 라이저 시스템에 쓰이는 진흙은 전문가들이 특별히 만든 ‘명품’이다. 드릴이 손상되지 않도록 표면이 곱고 지름이 60㎛(마이크로미터, 1㎛=100만분의 1m)보다 작은 데다, 점성을 높이면서도 진흙과 암석 파편이 들러붙지 않도록 화학물질을 첨가하기 때문이다.
지진 원인 밝히고 새 에너지원 발굴
치큐의 1단계 탐사는 라이저 시스템을 가동하지 않은 채 얕은 시추공을 뚫어 샘플을 채취하는 예비탐사다. 먼저 치큐는 9월 21일 일본 오사카 남동쪽 신구항을 떠나 난카이 해구로 첫 출항을 한 뒤 11월 16일까지 첫 번째 임무를 수행했다. 난카이 해구 근처의 해저 여섯 군데에서 시추공을 10개 정도 뚫어 샘플을 채취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구멍 하나를 뚫다가 드릴이 부러지는 사고가 발생해 네 군데에서만 시추공을 뚫었고 해저에서 1400m까지 파고드는 데 그쳤다.
시추선 치큐의 두 번째 예비탐사는 지진 발원지 중 하나로 추측되는 ‘메가스플레이(megasplay)’ 단층에서 11월 17일부터 12월 19일까지 33일간 진행됐다. 연구진 25명은 해저에서 458~1057m 깊이까지 구멍 8개를 뚫어 샘플을 채취했다. 세 번째 예비탐사는 12월 20일부터 2008년 2월 5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1단계 탐사는 질환을 파악하기 전에 환자를 진찰해보는 단계에 해당한다. 메가스플레이 단층은 해저에서 3㎞ 이상 들어가야 있지만 치큐는 2㎞ 정도만 시추해 지진파를 재는 각종 계측기를 설치한다. 메가스플레이 단층에 도달하기 위한 최적의 시추 경로를 찾기 위해서다.
사실 2단계부터가 라이저 시스템을 사용하는 본격탐사라고 할 수 있다. 2단계에서는 메가스플레이 단층을 목표로 해저부터 3.5㎞ 아래까지 시추공을 뚫을 예정이고, 3단계에서는 지진대를 거쳐 해양지각의 밑바닥까지 해저부터 6㎞ 깊이까지 파고들 계획이다. 그 뒤 4단계에서는 2, 3단계에서 깊게 판 시추공에 장기간 관측시스템을 설치해 지진 발원지를 실시간으로 감시할 것이다. 모든 단계는 2012년쯤 마무리된다.
치큐의 탐사지역인 난카이 해구는 아시아 지역에서 발생한 대부분의 지진과 쓰나미(지진 해일)의 진원지라고 알려져 있다. 이 해구에서는 일본 남쪽, 필리핀 동쪽에 위치한 필리핀해판이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구성하는 유라시아판 아래로 밀려들어간다. 다른 해구에서는 판이 1년에 4㎝ 미만으로 움직이는 데 비해 필리핀해판은 1년에 4~10㎝씩 이동하기 때문에 지진이 자주 일어난다. 지질학자들은 난카이 해구에 깊은 시추공을 뚫어 실시간으로 연구하면 지진과 해일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심해시추선 치큐에는 IODP 회원국의 과학자만 승선할 수 있다. IODP는 매년 1000억 원을 내놓는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며, 유럽연합은 매년 200억 원을 투입하며 참여하고 있다. 2006년에 IODP에 가입한 한국은 매년 3억 원을 투자하고 있다.
IODP 회원국은 자국의 해역을 시추할 수 있는데, 치큐가 우리나라 해역에서 시추한다면 300억 원을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울릉도 근방 해양지각의 메탄하이드레이트를 탐사하기 위한 시추 계획서를 제출한 상태다.
치큐가 지구의 속살인 맨틀에 도달해 지진 발생 메커니즘을 밝혀내고 동해에서 새로운 에너지 자원인 메탄하이드레이트를 대량으로 발굴해낼 그날이 기다려진다.
이충환<동아사이언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