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 감축, 문제는 ‘탄소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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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출권 파는 시장 노린 국제적 암투 치열… 교토의정서 대체협약 발효에 큰 장애물

전 세계 원주민들을 대표하는 행동가들이 자신들에게 유엔 기후변화회의에서 발언할 권리를 달라며 유엔을 상대로 항의시위를 하고 있다.

전 세계 원주민들을 대표하는 행동가들이 자신들에게 유엔 기후변화회의에서 발언할 권리를 달라며 유엔을 상대로 항의시위를 하고 있다.

세계의 지도자들은 과연 2015년까지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 시사주간지 타임스는 최근호에서 지난 3일부터 14일까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190개 국이 참가해 열리는 제13차 기후변화협약(UNFCCC) 회의의 성과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사공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이번 발리 회의의 시작은 좋다. 그동안 미국과 공동보조를 취하며 교토의정서에 가입하기를 거부해온 호주가 전격적으로 의정서를 비준했다. 이에 따라 세계 최대의 온실가스 배출국이면서도 의정서 가입을 거부한 미국에 대한 압박도 커졌다. 2012년 만료되는 교토의정서를 대체하는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담은 새로운 협약에 대한 전망도 그만큼 밝아진 셈이다. 교토의정서에는 36개 온실가스 감축 의무이행 대상국이 2008~2012년 사이에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기준으로 평균 5.2% 줄이도록 돼 있다. 새 협약에서는 이를 모든 국가가 참여하는 것이 목표다.

유럽연합(EU)은 특히 강력한 규제를 원한다. AFP통신에 따르면 EU는 지난 4일 “다른 선진국이 동참할 경우 EU는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30% 감축하겠다”고 제안했다. EU 회원국들은 이미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 줄이기로 합의했지만 미국 등 다른 나라가 새 기후협약에 합의하면 추가로 감축하겠다는 것이다. EU 대표인 누노 라카스타는 “새 기후변화협약 하에서는 선진국의 경우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30% 감축할 필요가 있다”며 선진국들의 동참을 제안하기도 했다.

미국·중국·인도 감축 동참 촉구

이보 드 보어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사무총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이보 드 보어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사무총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미국은 공식적으로는 이번 회의에 걸림돌이 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폴라 도브리안스키 미 국무부 차관은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새로운 협상이 출범하기를 바라며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로드맵을 보고 싶다”고 밝혔다. 중국이나 인도 등 온실가스 감축 의무이행 국가에서 제외된 국가들이 새 협약에서는 의무감축에 동참해야 한다는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한 셈이다. 미 의회 대표로 발리 회의에 참가한 존 케리 상원의원은 “미국을 비롯한 산업국가는 온실가스 의무감축을 수용해야 하며 중국 등 개도국도 국내총생산(GDP) 규모에 따라 의무감축에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이를 보고 “미국이 강제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설정되는 것을 막기 위해 중국·인도와 삼각연대 구축을 시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개도국을 대표하는 중국과 인도가 “서방 선진국들이 더 많은 재정 지원을 해주지 않는 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 설정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게 부추켜 ‘판’을 깨도록 하겠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 5일 파이낸셜타임스는 실제로 발리 회의에서 중국과 인도의 온실가스 배출 수준을 놓고 논란을 벌이고 있어 양국의 입장이 미국 등 선진국 행보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달 발표한 ‘세계에너지전망보고서’에서 중국이 올해 미국을 앞지르고 세계 최대의 온실가스 배출국으로 등장하고 인도는 2015년 세계 3위의 배출국이 된다고 예상했다. 이 때문에 선진국들은 중국과 인도가 온실가스 배출 규제안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제안한 대로 개도국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 선진국은 80% 감축 등 동반하자는 것이다.

2010년 탄소시장 1500억 달러 예상
반면 중국과 인도는 거꾸로 미국이 우선해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중국은 발리 회의에서 적극적이고 건설적이며 책임 있는 자세로 임하겠지만 부국들이 기후변화 방지에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류젠차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선진 산업국이 온실가스 배출과 에너지 사용 감축에 앞장서야 하며 나아가 관련 기술을 개발도상국에 이전하고 재정적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요청했다.

사실 온실가스에 의한 기후변화는 선진국들의 책임이 크다. UNDP가 최근 발간한 ‘인간개발보고서’에 따르면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인류가 대기에 배출한 이산화탄소의 70%는 선진국이 내놓은 것이다. 국가별로 보면 미국·러시아·중국·독일·영국·일본 순인데 미국과 서유럽은 전체 배출량에서 각각 29%와 27%의 책임이 있다.

기후변화는 지구 전체의 문제지만 원인은 몇 나라에 있다는 말이다. 인구 6000만 명의 영국은 이집트·나이지리아·파키스탄·베트남을 합친 인구(4억7000만 명)보다 많은 이산화탄소를 내보낸다. 미국인 한 명이 중국인의 5배, 인도인의 17배인 연간 20.6t의 온실가스를 내보낸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UNDP의 제안을 허용할 경우 인도가 사용할 수 있는 연료는 미국이나 EU에서 허용한 수준의 33%도 안 된다는 분석도 있다. 경제개발이 어려워진다는 말이다.

이런 이유들이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새로운 협약의 발효를 어렵게 하는 장애물이다. 그러나 실제로 내면을 들여다보면 각국이 제기한 문제는 표면적인 것이다. 이번 UNFCC 회의뿐 아니라 기후변화를 둘러싼 논의 이면에는 대부분 경제적인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교토의정서 이후로 ‘이산화탄소 배출권’이라는 것이 생겼다. 온실가스를 감축해 남는 여유분을 감축의무를 이행하지 못한 국가나 나라에 파는 것이다. 이는 ‘탄소시장’이라고도 부르는데 2006년만 301억 달러 규모로 2010년에 1500억 달러로 급성장할 것이 예상된다. 2005년 1월 출범한 EU 배출권 시장은 세계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감축의무 불이행에 따른 벌금도 인상될 예정이라 배출권 시장은 더욱 더 커질 전망이다. 조금 양보해 미국이 중국을 끌어들이면 시장은 더욱 커질 것이 확실하다. 탄소시장의 주도권을 EU가 갖고 있는 이상 새 협약에 전 세계가 참여하면 선점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다. EU가 이번 발리 회의에서 추가감축 제안까지 내놓은 의도는 그 때문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발리 회의 개막에 앞서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산업혁명과 기술혁명, 세계화에 이어 이제 ‘그린 경제’ 시대를 열어나가자”고 주장했다. 반 총장은 “과학자들은 제 몫을 다했고 이제는 정치인들이 나서야 하고 발리 회의는 그들 지도력의 시험대”라며 “향후 30년간 기후변화 문제를 극복하는 데 드는 비용은 전 세계 GDP의 0.1%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기후변화를 극복하는 데 드는 비용이 예상보다는 적게 든다는 말이다. 그런데 선진국 간, 선진국과 개도국 간 의견 조율이 쉽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기후변화를 극복하기 위한 인류의 노력이 새로운 거대 시장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를 극복하자는 대의보다 탄소시장을 향한 국제적 패권 경쟁이 훨씬 매력적이라는 말이다.

<국제부┃김주현 기자 amic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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