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성문 의원(대구 중·남)이 한나라당을 탈당해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다. 현역 의원이 한나라당을 떠나 이 후보 측으로 둥지를 옮긴 것은 곽 의원이 처음이다. 다음 날인 11월 30일에는 김병호 의원(부산진갑)이 그의 뒤를 이어 탈당해 이 후보 측으로 갔다.
두 의원 모두 지난 8월 당내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도왔다. 곽 의원은 깃발을 들었고, 김병호 의원이 따라나선 모양이 됐다. 곽 의원은 경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차명재산이 8000억 원에 이른다는 소문이 있다”라는 발언으로 6개월의 당원권 정지라는 중징계를 당했다가 경선이 끝난 후 복권됐다. 같이 중징계를 당했다가 복권된 정두언 의원은 이명박 후보를 민 덕분에 선대위의 전략기획단 총괄팀장을 맡아 활약하고 있다.
하지만 곽 의원은 패자의 길을 갔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시작하자마자 탈당해 이회창 후보를 지지한 것이다. 곽 의원은 “경선 이후 승자가 패자를 단죄하려는 오만한 태도와 승자 독식을 당연시하는 독선적인 자세는 저에게 큰 좌절을 안겨줬다”고 말했다. 승자와 패자 간에 엇갈린 냉엄한 운명을 볼 수 있다. 그가 만약 승자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궁금해진다. 기자 회견을 하는 그의 입술은 부르터 있었다.
“유세차를 끌고 후보 지지를 호소하러 다녀야 하는데 저로서는 이명박 후보를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었다. 누구는 하는 척하면 되지 않느냐고 그러는데 그건 정치인으로서 할 수 있는 도리가 아니다.”
그는 끝내 박근혜 전 대표와 박 전 대표 측 측근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한나라당이라는 울타리를 떠났다. 한나라당은 그의 탈당 이후 다른 의원들의 추가 탈당이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바로 다음 날 김병호 의원이 그의 뒤를 따랐다. 추가 탈당이 이어져 도미노 현상이 발생할지는 BBK 사건의 검찰 발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나라당은 ‘나갈 사람이 나갔다’는 식으로 맹비난을 퍼부었다. 2005년 6월 대구지역 인사들과 골프를 친 후 술병을 던져 물의를 빚은 사건이 다시금 들춰졌다. 한나라당은 “내년에 공천을 받지 못할 것이 분명해지자, 미리 선수를 친 것”이라는 비난까지 곁들였다.
일반인들에게 생명이 있듯이 정치인에게는 정치 생명이란 것이 있다. 마찬가지로 일반인들이 수명을 연장하려고 노력하듯이, 정치인에게는 정치 생명을 이어가고 싶은 욕망이 있다. 선거를 불과 며칠 앞두고 자신이 몸담은 당을 떠나는 데는 자신의 정치 생명을 연장하려는 뜻이 숨어 있을 법하다. 하지만 정치 생명은 명분을 잃는 순간 끝나게 마련이다.
어쨌든 곽 의원의 선택은 또 다시 승자와 패자의 갈림길에 섰다. 승자가 되면 모든 것이 잊히지만 패자가 되면 또 한 번 굴욕의 길을 가야 한다. 패자에 굴욕의 길을 강요하는 한국 정치의 현실이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패자의 굴욕을 감당하지 못한 그의 선택이 잘못된 것인지 내년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판단해줄 수밖에 없다.
<윤호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