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여권서 연정 한다면 전면에 나서겠다”
![[직격인터뷰]대선판 이슈메이커로 나선 작가 황석영](https://img.khan.co.kr/newsmaker/753/753_34a.jpg)
3년 6개월의 외국생활을 마치고 지난 10월 말 귀국한 작가 황석영씨(64)가 대선을 앞두고 ‘연합정부론’을 외치면서 이슈 메이커가 되고 있다. 그는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의 한나라당 탈당을 권유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진보진영 내에서도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사람들은 왜 그가 연정론을 주장하면서 대선의 전면에 나서는지 궁금해 한다. 언론과의 인터뷰를 거절해온 황석영씨가 본지 기자와 만나서 그동안의 행보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황씨의 이야기를 통해서 대선을 앞둔 진보 진영의 고민과 희망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총대 멘 황석영’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떴는데, 느낌이 어떤가.
“(웃음)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가 나이가 먹어서 문단에서 제일 선배가 됐다. 비록 백낙청, 고은 등이 있지만. 대선을 앞두고 문화예술계에서도 한마디 해야 한다고 해서 했는데, 그렇게 기사가 나왔다.”
2004년 4월 영국 런던대 유학길에 오를 때 현실과 거리를 두고 싶다고 말했는데.
“냉전시대에 망명으로 해외에서 5년을 보냈지만, 세계는 그때와 많이 달라졌다. 변화를 직접 보고 싶었다. 그리고 나와 한반도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우리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고 싶었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 현실의 전면에 나선 것처럼 보인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한국 근·현대사 100년 중에 이번 대선이 가장 중요하다. 내년이 되면 동북아시아 정세에 경천동지할 상황이 생긴다. 또한 북·미 수교가 이뤄지면 남·북 관계 역시 예전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1900년대 초반 제국주의 열강들이 들어왔을 때 동북아 정세가 급변했다. 하지만 당시 지식인이나 통치계급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런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향후 5년이 한반도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황석영씨는 6자회담을 통한 북·미 수교와 남북 교역의 질적인 변화가 생기고, 그에 따라 동북아시아 정세는 자연스럽게 변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유럽의 EU처럼 동북아시아도 경제를 중심으로 하는 ‘권역’ 개념으로 질적으로 변화할 것이고, 이런 회오리 속에서 남북한이 어떻게 대응을 하느냐가 이번 대선에서 판가름난다고 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황씨는 ‘민족통일’ ‘조국통일’이라는 개념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DJ의 ‘선단일화 후통합’ 주장 이후 대통합민주신당의 의원 38명이 ‘연합정부’ 구성을 통한 단일화를 촉구했다. 그리고 진보 진영 내에서도 이에 화답하듯 연정을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당신이 연정론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됐는데.
“진보 진영은 지난 여름부터 연정론을 외쳤다. 정치의 선진화를 이루려면 정당정치의 기틀 위에서 정책대결을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게 없다. 대선 때만 되면 당이 바뀌고, 새로운 당이 나온다. 이합집산도 잦고, 정책도 엇비슷하다. 우리 현실에서는 내각제가 가장 좋은데, 남북의 특수성 때문에 힘들다. 우선 대통령 5년 단임제가 4년 중임제로 바뀌어야 한다는 데는 국민의 합의를 이룬 것 같다. 이렇게 되면 서구식 연정도 가능하다.”
지난 대선에서는 여러 가지 담론이 활발하게 전파됐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연정이라는 단어도 들어보기 힘든데.
“연정을 해서 단일화해도 여론조사 결과 당 지지율이 3.3% 정도 올라간다고 한다. 한마디로 이번 대선에 사람들이 관심이 없는 거다. 사람들은 너희들이 할 것 다 해도 싫다는 거다. 그래서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견고한 것 같다.”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이 ‘연정이 과연 가능한가’라는 점이다.
“대부분 ‘그게 되겠냐’라고 회의적인 생각을 한다. 그리고 연정이 되도 승리할 수 없다는 생각이 깊숙이 깔려 있다. 정치적 무관심이 널리 퍼져 있다는 증거다. 지금쯤 되면 대선에 관한 담론으로 아주 시끄러울 때다. 하지만 술집에 가봐라. 정치 이야기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민주화가 정착되면서 담담해진 측면도 있다. 하지만 ‘정치하는 놈들이 우리 생활을 좋아지게 해주냐!’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는 게 문제다.”
개인적으로 연정이 가능할 것으로 보나.
“글쎄. 잘 모르겠다. 잘하면 될 것 같기도 하고. 믿는 구석은 없는데 연정이 되면 꽤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민노당을 아는 사람들은 민노당이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는데.
“그렇다. 그들도 계급성을 지켜야 하니까. 하지만 민노당까지 염두에 두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노무현 정부에 실망한 사람들을 위해서 연정으로 만족시켜줘야 할 때다. FTA 전면 재검토, 재벌개혁 위주에서 중소기업 위주의 개편, 전경련 해체 정도를 내놓으면 민노당과도 접점이 생기지 않을까. 이번 민노당에서 심상정 등 다른 사람이 나왔으면 깨져도 강렬하게 깨질 텐데라는 아쉬움은 있다. 민노당이 저렇게 쪼그라들면 내년 총선에서 1석이나 건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연정을 하기에는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물론 부족하다. 하지만 정치는 생물이기 때문에 두고 봐야 한다. 이런 이야기까지 하면 안 되지만 깨져도 명분 있게 깨지자는 것이다. 그럼 운동의 틀이 생기는 거니까. 이명박 후보가 되면 얼마나 많은 문제가 생기겠나. 깨졌을 때 처음에는 허탈하겠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더 할 일이 많아지는 측면이 있다.(웃음)”
정치권과 진보 진영에서 연정을 두고 물밑작업이 이뤄질 것 같은데.
“솔직히 이야기하면 정치권으로부터 매일 제안을 받고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뿌리치면서 하는 말이 있다. ‘너희들이 연정을 위한 연합을 한다면 내가 한 발짝 더 나아갈 것이다’라고 압력을 넣고 있다. 통합 후에는 전면에 나설 수 있다. 정치인은 아니니까 정치권에 들어가지는 않지만, 내 영향력이 필요한 경우에는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
정동영 후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저쪽과 각을 세워서 싸우기에는 이해찬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은 한다. 하지만 정 후보는 경선을 거쳐서 나온 정통성이 있는 후보니까 지지해야지. 그 사람이 약하다고 하는데, 이젠 약한 것을 자기 강점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외국에 나가 있을 때 중간에 들어와서 손학규 전 지사의 탈당을 권유한 후에 진보 진영 내에서 욕을 많이 먹었을 텐데.
“(웃음) 엄청나게 욕을 먹었다. 근데 손 전 지사가 중요한 돌멩이였다. 그것을 딱 떼어나면 힘의 균형이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열린우리당은 헤쳐 모여할 수 있는 핑곗거리가 생기고, 한나라당은 이명박과 박근혜만 남을 것이 아닌가. 새로운 판이 형성될 줄 알았다. 그런데 예상보다 쉽지 않았다.”
그럼 판세를 뒤집으려고 손 전 지사를 선택했나.
“그가 한나라당에서 탈당하면 5~6명의 국회의원이 함께 나올 줄 알았다. 나는 욕 얻어먹을 것을 각오하고 그 바람을 잡은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안 됐다. 사람들이 그냥 한나라당에 놔뒀으면 손에게는 좋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건 상관할 바가 아니다. 우리는 변화를 원했으니까. 하지만 진보 진영에 대한 불신이 워낙 높았기 때문에 영향력이 미미했다.”
이번 대선을 어떻게 생각하나.
“유감스럽게도 ‘때’와 ‘사람’이 잘 안 맞는다. 지금이 제일 중요한 때인데, 사람들이 잘 안 맞는 것이 속상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난 10월 말에 귀국한 것도 대선을 위한 것 같다.
“맞다. 예전에 한 인터뷰에서 문학축제에 초대받아서 1개월 일찍 귀국했다고 했는데, 대선 때문에 일찍 들어왔다고 못 하겠더라. 좀더 일찍 들어오고 싶었지만, 집 계약이 10월에 끝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10월 말에 귀국했다.”
문학 이야기로 넘어가자. 유럽 생활에서 많은 것을 얻고 왔나.
“아이템을 많이 가져왔다. 그리고 내가 쓰고자 하는 것이 맞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왔다. 서양도 별거 아니네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현지 작가와 유럽 출판사 관계자와 폭넓게 교류했다.”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많이 있을 텐데.
“너무 많다. 내가 가는 곳마다 사고가 터지더라. 영국 런던에 갔더니 폭탄이 터지고(2005년 7월 런던에서 지하철 및 버스 등에서 6건 이상의 폭발 사고가 발생해 100여 명이 사상한 사건) 프랑스로 갔더니 4만여 대의 차가 불에 탔다(2005년 발생한 이민자들의 대규모 폭동 사태를 뜻함). 솔직히 우리들만 특별한 역사를 겪은 줄 알았는데, 서구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더라.”
‘바리데기’가 25만 부 정도 팔린 것으로 알고 있다.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데.
“우선 2~3편의 경장편 소설을 하나 쓸 예정이다. 그리고 내년 여름부터 연재하려는 작품이 ‘강남형성사’다. 한국 자본주의 근대사가 어떻게 이뤄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일제강점기부터 6·25 전쟁 무렵까지의 철도원 3대 이야기를 쓸 예정이다. 우리가 대륙적 정서를 어떻게 가지고 있었나를 살펴보려고 한다.”
요즘 문단계에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정해져 있는 것 같다. 이런 흐름에 대해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을 텐데.
“고쳐야 할 점이다. 소설미학에 대한 견해 차이가 있겠지만, 젊은 작가들은 서사가 좀 부족한 것 같다. 소설이 현실을 읽어내고 반영해야 하는데, 좀 못 미치는 것 같다.”
문단계에서는 선·후배 간에 쓴소리가 없어졌다. 관심이 없어서 그런가.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고, 작가들이 개인주의화됐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공동체가 있었다. 선·후배가 술을 먹다가 술상을 뒤엎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면서 미운정, 고운정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것이 없다. 각자 자폐되는 것이다.”
전남 구례에 문학촌을 세운다고 했는데.
“문학동네 사장과 문인 등이 함께 14만8500㎡의 땅을 사놨다. 남도 쪽에서 제안이 온 것인데, 창작공간과 문학아카데미, 문인촌 등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는 곳으로 만들 예정이다. 젊은 작가가 와서 글도 쓸 수 있게 할 것이고. 구례 군수가 시설을 짓는 것을 도와주고 길도 닦아준다고 했다. 그리고 전북 진안에서도 제안해와서 지금 고민하고 있다. 둘 중 하나를 고를 것이다.”
대선과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혹자는 작가가 너무 정치적이라는 비판을 할 여지도 많은데.
“괜찮다. 어차피 작가는 현실을 통해서 작품을 쓰는 사람이다.”
<글·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사진·김세구 기자 k39@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