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교외 ‘화약고’ 또 열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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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화난 이민 후손들 이번엔 총기까지… 프랑스 이민자통합 정책 실패 도마에

11월 27일 파리 시민들이 이틀 전 사망한 청소년들의 사진을 안고 사고 현장에서 추모 행진을 벌이고 있다.

11월 27일 파리 시민들이 이틀 전 사망한 청소년들의 사진을 안고 사고 현장에서 추모 행진을 벌이고 있다.

프랑스 파리 외곽이 다시 들썩인다. 프랑스 전역을 뒤흔들었던 소요가 이 일대에서 발생한 지 2년 만이다. 이 지역에 사는 아랍·아프리카 출신의 이민 2·3세 청소년들은 지금 자동차에 불을 지르고 경찰에 돌을 던지고 있다. 세월이 흘렀지만 풍경은 2005년과 다르지 않다. 이는 정부가 이민자들의 소요로 한바탕 몸살을 앓고서도 파리 교외의 뿌리깊은 병폐를 고치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2년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당시 내무장관이었던 남자가 지금은 대통령이라는 사실이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취임 6개월 만에 교외 청소년들에게서 도전장을 받고 있다. 좌파들은 이 기회에 사르코지 대통령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요의 원인을 내버려둔 채 경찰력으로 억누르기만 하면, 이 같은 사태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총기로 무장한 청소년들

사고 발생 다음 날인 11월 26일 격분한 이 지역 청소년들이 경찰을 향해 돌을 던지고 있다.

사고 발생 다음 날인 11월 26일 격분한 이 지역 청소년들이 경찰을 향해 돌을 던지고 있다.

사건은 11월 25일 파리 중심부에서 북쪽으로 32㎞ 떨어진 빌리에 르 벨에서 일어났다. 미니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던 15세, 16세 청소년 2명이 순찰차와 충돌한 후 사망했다. 교외 청소년들에게 ‘공공의 적’이나 다름없는 경찰이 개입된 이상, 이 교통사고는 평범할 수 없었다.

사고 소식은 마을로 퍼져나갔다. 오후 6시, 100여 명으로 불어난 청소년 무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경찰서로 몰려가 화염병을 던지고 유리창을 부쉈다. 주차된 자동차, 쓰레기 운반트럭에도 불을 놓았다. 인근 아르누빌의 청소년들도 소문을 듣고 경찰서를 습격했다. 어수선한 틈을 타 유리문이 깨진 상점에 들어가 보석을 훔친 사람은 경찰에 체포됐다.
경찰은 이번 사태가 2005년처럼 전국으로 번질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실제 파리 서쪽의 레 뮈노, 프랑스 남부의 툴루즈에서도 화염병 투척과 방화 등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즉각 “이번 사망 사건은 (2005년과는 달리) 검문이 아니라 교통사고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며 자신들에게 책임이 없음을 강조했다. 2005년 소요는 파리 북부의 클리시 수 부아에서 경찰의 검문을 피해 달아나던 청소년 2명이 감전사하면서 발생했다.

그러나 경찰이 교통사고 이후에 뺑소니를 쳤다는 일부 주민의 목격담이 흘러나왔다. 경찰이 사망 청소년들의 오토바이를 추격하고 있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1차 조사 결과, 이 같은 의혹엔 근거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지만 청소년들의 분노는 식지 않았다.

청소년들은 급기야 사냥총과 공기총 등 총기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2005년 소요 때는 화염병과 보도블록 정도가 전부였다. 지난 2년간 무엇이 이들을 이 같은 극단으로 몰아넣었을까. 청소년들이 총을 사용한 탓에 경찰 부상자는 소요 사흘 만에 120여 명에 달했다. 2년 전, 소요 전체 기간(3주)에 발생한 경찰 부상자 수(200여 명)와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다.

2005년에도 진압 작전에 참가한 경찰 크리스토프는 “이번이 더욱 폭력적”이라며 “당시엔 반항에 가까웠지만, 지금 그들은 무장한 상태로 우리를 뒤쫓고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경찰 관계자는 “그들은 국가를 상징하는 모든 것을 공격하고 있다”며 “심지어 소방관도 공격한다”고 덧붙였다.

이민자 통합 실패의 결과

부서진 순찰차 주변에 몰려 있는 청소년들.

부서진 순찰차 주변에 몰려 있는 청소년들.

교외 청소년들이 국가를 증오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들의 부모는 60여 년 전 일자리를 찾아 프랑스로 건너온 아랍·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들이다. 당시 고도 성장을 누리던 프랑스는 적극적으로 이민자를 받아들여 부족한 일손을 채웠다.

파리 교외에 모여살던 이들은 1970년대 경제 불황으로 직장을 잃었다. 산업 구조가 3차 서비스 산업 위주로 재편된 것도 실업의 이유였다. 만성 실업 상태였던 이들에게 1990년대는 더욱 가혹한 시기였다. 자크 시라크 당시 대통령은 재정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공공 부문의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정부 지원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던 교외 거주민들의 빈곤 수준은 더욱 심각해졌다.

이민 2·3세들은 교외의 열악한 공공임대주택에서 나고 자랐다. 교육 기회도 충분히 제공받지 못했다. 배움이 부족하니 좋은 직업을 얻기 어려워, 실업률이 국가 평균의 2배에 이른다. 일부 지역의 실업률은 무려 40%라는 통계도 있다.

자녀 세대들은 부모 세대가 겪은 빈곤과 실업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본래 대도시의 외곽을 가리키던 보통명사 방리우(Banlieue)는 ‘사회적 문제가 많은 교외 지역’을 뜻하는, 사실상의 고유명사가 됐다. 이는 프랑스 사회가 이민자를 통합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기도 하다.

직업이 없는 이민 청소년들은 하릴없이 거리를 배회한다. 피부색이 검은 청소년들이 떼지어 몰려다니는 모습은 중산층 시민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하기에 충분하다. 시라크 정부의 내무장관이었던 사르코지는 2002년 교외 지역의 치안을 강화할 정책을 선보였다. 동네마다 자율적으로 운영하던 지역 경찰제를 폐지하고 중앙정부에서 운영하는 공화국 보안기동대(CRS)를 투입한 것이다.

마을 경찰은 청소년들에게 ‘옆집 아저씨’처럼 부담 없는 존재였지만 CRS는 달랐다. 이들은 수시로 행인을 불심검문한다. 응하지 않고 달아나다간 2005년 감전사한 청소년들처럼 봉변을 당할 수 있다.

일상적으로 범죄자 취급을 받는다는 게 유쾌할 리 없다. 경찰은 청소년들의 적이 됐다. 그러니 내무장관으로서 경찰 총책임자였던 사르코지는 ‘주적’일 수밖에. 그는 “교외의 인간 쓰레기를 진공 청소기로 쓸어버리겠다”는 등 막말을 일삼아 청소년들의 분노를 키웠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내년 1월부터 교외 지역 750곳의 청년 25만 명에게 직업 훈련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정책이 과연 교외 젊은이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클리시 수 부아의 클로드 딜랭 시장(사회당)은 “집권 대중운동연합은 교외의 특수성에 관해 아는 것이 없다”고 비판했다. 프랑스 사회가 이민자에 대한 편견의 벽을 허물고 이들을 적극 끌어안지 않는 이상, 교외의 ‘화약고’는 어느 때라도 불타오를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제부┃최희진 기자 dai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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