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비자금 폭로 ‘구원투수’로 등판
대선을 코앞에 앞두고 BBK 의혹 사건의 진실 규명이 핵폭탄이 되지는 않을지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또 다른 핵폭탄이 터졌다. 11월 19일 이용철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이 청와대 근무 당시인 2004년 1월 삼성전자 법무팀으로부터 현금 500만 원을 받았다가 돌려준 사실을 폭로했다.
이 기사를 접하자 국민들은 순간적으로 자신들의 눈을 의심했을 것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이름이 잘못 올라간 것이 아닐까 두 눈을 비볐을 법하다. 하지만 다시 기사를 보고 김용철과 성은 다르지만 이름은 같은 이용철 전 법무비서관이 새로운 사실을 밝혀 삼성 로비의 진실을 드러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묘하게도 ‘용철’이란 이름을 가진 두 사람이 한국 제일의 기업 ‘삼성’을 상대로 칼을 뽑아든 셈이 됐다.
두 사람은 변호사로서 1958년생(김용철), 1960년생(이용철)으로 비슷한 연배다. 김용철 변호사는 고려대 법학과를, 이용철 전 비서관은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김 변호사가 사법고시 25회 출신으로 검사와 삼성 구조조정본부 변호사로 지름길을 간 반면, 이 전 비서관은 김 변호사보다 6년 늦은 사법고시 31회로 합격한 데다 곧장 변호사의 길로 들어서서 재야의 길을 걸었다. 민변에서 활동하던 이 전 비서관은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대통령의 법률 특보를 맡으면서 권력의 중심에 섰다. 이후 청와대에 들어가 민정수석실 민정2비서관과 법무비서관을 거쳐 1급 공무원에 해당하는 방위사업청 차장 자리까지 올랐다.
두 사람이 삼성과 악연을 맺은 시점도 2004년으로 비슷하다. 김 변호사는 전무급인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에서 물러난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이 전 비서관은 삼성에서 현금을 받았다가 돌려줬다. 이 전 비서관은 현금 다발을 사진으로 찍어 보관해오다 11월 19일 공개했다.
이들 두 사람은 2005년 삼성 Ⅹ파일 공개로 삼성에 대한 비난이 들끓었을 때 침묵했다. 때문에 기획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하필이면 대선을 앞두고 두 사람이 잇달아 삼성 로비 의혹을 터뜨린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은 기획설을 믿지 않는다. 이 전 비서관은 20일 기자회견에서 “김용철 변호사가 인격적으로 이상한 사람으로 폄하되는 현실이 옳은가라는 생각에서 나서게 됐다”며 김 변호사의 용기를 높이 샀다. 김 변호사에 대한 보도를 보고, 그동안 망설여왔던 입장을 바꿔 사실을 공개했다는 것이다.
이 전 비서관은 스스로 김 변호사의 구원투수임을 자처하고 나선 셈이다. 김 변호사 역시 이 전 비서관의 주장이 자신의 주장과 거의 일치한다고 했다. 두 사람의 진실 공개로 삼성은 특검을 받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삼성은 앞으로 ‘용철’이란 이름만 들어도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만하다.
<윤호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