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운하 총경 “징계 철회 안 되면 행정소송도 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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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격인터뷰]황운하 총경 “징계 철회 안 되면 행정소송도 불사”

지난 8월 말, 경찰 안팎은 ‘보복징계’ 논란으로 시끄러웠다. 사연은 이랬다.

3개월 전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사건에 대한 경찰의 은폐 의혹이 커지자 이택순 경찰청장은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당시 경찰종합학교 총무과장 황운하 총경(44)은 검찰 수사 의뢰를 비판하며 “경찰청장은 스스로 물러남으로써 조직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청장은 3개월이 지나 그에 대한 징계를 요청했다. 조직의 위신을 실추시켰다는 이유다. 파면 해임 등 중징계 가능성도 흘렸다. 청와대도 “하극상은 안 된다”며 이 청장을 감쌌다. 내부 반발이 커지자 결국 감봉 3개월의 경징계 처분이 내려졌지만 불씨는 남아 있다. 황 총경이 소청·소송을 통해 징계에 맞서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지난 9월 4일 기자와 만난 황 총경은 징계의 부당성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했다. 청와대의 하극상 발언에 대해서는 “경찰이 말 잘 듣는, 비민주적인 조직으로 남기를 바라는 것처럼 받아들일 수 있는 주장”이라면서 조심스럽게 날을 세웠다.

그러나 황 총경을 ‘부당한 징계에 맞선 정의의 투사’로만 보기는 힘들다. 애초 그가 이 청장의 퇴진을 주장한 것은 경찰 간부를 검찰에 수사 의뢰해 경찰 조직에 수치심을 안겨줬다고 봤기 때문. 이날 인터뷰에서도 그는 경찰 조직 보호 논리를 숨기지 않았다.

경찰대 1기생으로 경찰대 졸업생들의 리더 격인 황 총경은 그간 수사권 독립을 강하게 주장해 검찰 및 경찰 지도부와 마찰이 잦았다. 지난해에는 경찰 지휘부가 수사권 독립에 미온적이라고 비판했다가 “내부 계통과 체계를 무시한다”는 이 청장의 질책을 받고 경찰종합학교 총무과장으로 좌천된 바 있다.

- 파면·해임 등 중징계가 언급되다가 경징계(감봉 3개월)가 내려졌다. 그럼에도 소청제기하고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는데.

“100대 때린다고 하다가 ‘50대만 맞으라’는 격이다. 맞을 이유가 없는데 50대라고 고마워할 수는 없잖나. 그리고 ‘감봉 3개월’은 경징계 중 가장 무거운 것으로, 중징계 바로 아래다.”

- 소청을 통해 징계가 철회되지 않는다면.

“못 이기면 행정소송도 할 것이다. 징계를 무효로 해달라고 할 생각인데, (소청심사위원회에서는) 견책 정도로 수위를 내리는 결론을 낼 수도 있다. 이건 못 받아들인다. 절차에 따라 징계 자체를 무효화해달라는 소송을 법원에 낼 것이다.”

- 감봉 3개월의 징계 때문에 손해배상소송을 한다는 게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

“손해의 경중은 생각하기에 따라 다르다. 무엇보다 징계권 남용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싶다. 감찰조사를 받고 징계위원회에 나가고, 중징계가 언급되는 과정에서 나와 가족들은 정신적 상처를 크게 받았다. 돈과 관계없이 징계권 남용으로 입은 개인의 피해에 대해 소송을 내려는 것이다.”

- 징계위원회는 청장의 퇴진을 요구한 게시물과 같은 내용의 언론 인터뷰를 문제삼았는데.

“총수라도 물러날 만한 이유가 있다면 물러나라고 요구하는 건 당연하다. 법원도 연판장을 돌려 대법원장 퇴진 요구를 한 적이 있고, 검찰에서도 내부에서 검찰총장 퇴진 요구를 한 바 있다. 유독 경찰만 총수 퇴진 요구가 불가하다는 근거는 뭔가.

당시의 퇴진 요구엔 나름의 동기와 이유가 있었고 내부뿐 아니라 경찰 외부에서도 청장 퇴진 요구가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징계를 내린 것은 비판의 봉쇄다.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표현 자유의 침해다.”

- 청와대는 “하극상이 용인돼서는 안 된다”며 징계조치를 옹호했다.

“‘하극상 발언’은 청와대가 과거 정치권력들처럼 경찰을 ‘부려먹기 좋은 조직’으로 보고 (경찰이) 주체성, 독립성, 정치중립성을 갖추려는 것을 꺼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할 수 있다. 또 경찰청장 한 명만 움직이면 경찰조직을 다 움직일 수 있는 ‘일사불란함’을 (기강이 서 있는 것으로) 미화하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기강 보호를 누가 반대하나. 그 본질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 상명하복만 강조한다고 기강이 서는 게 아니다. 상황에 따라 수장의 퇴진문제도 거론할 수 있을 만큼 비판이 허용돼야 건강한 조직이 될 수 있고 기강도 바로 선다.”

- 사실 지난 5월의 청장 퇴진 요구는 진실규명 차원보다 ‘(은폐의혹) 수사를 검찰에 맡기지 말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했던 것 아닌가. 그러나 만약 그때 경찰이 자체 수사를 했다면 이후 밝혀진 것만큼의 사실이 드러났을까.

“(경찰이) 불신받는 상황에서 자체 수사한다는데 누가 믿겠나. ‘중요한 건 진실이지 수사를 누가 하는 게 아니다’라는 의견에 공감한다. 그러나 경찰이 스스로 진실을 밝힐 기회를 놓치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는 게 문제다.

사실 방법은 있었다. 먼저 경찰청장이 퇴진 의사를 밝히고 본인에 대한 통화 내역 조회와 압수수색을 다 할 수 있게 해야 했다. 또 소신이 강한 사람들을 골라 청장 지휘를 받지 않는 자체 수사팀을 구성해 수사하게 했으면 어땠을까. 이런 노력을 해보고 그래도 국민이 믿어주지 않으면 검찰로 넘기면 되는 것이다. 실제로 경찰 감찰 결과와 검찰의 수사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 다르지 않았다고 할 수 있나. 이 청장이 한화 유시왕 고문과 통화도 하고 골프도 친 것을 숨겼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감찰은 수사와 달리 통화 내역 조회가 불가능하다. 경찰이 자체 ‘수사’를 했다면 드러났을 수 있다. 또 경찰이 자체 감찰 후 직위해제하거나 중징계한 수사부장· 형사과장을 검찰이 입건유예했다. 검찰로부터 ‘직권남용으로 아무리 엮어보려고 해도 무죄더라’는 얘기도 들었다. 그런데도 (검찰이) 마치 봐준 양 생색을 낸 거다. 장 전 서장의 기소가 그나마 검찰의 성과였지만 억울한 점이 많은 것으로 안다. 재판에서 밝혀질 것이다.”

- 이 청장이 거짓말을 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경찰 조직원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고 마음 아팠다. 그러나 이 자체가 물러나야 할 이유가 되진 않는다고 본다. 저는 최후 관리자가 책임을 지라는 의미에서 퇴진 요구를 한 것이지, 사건과 개입됐기 때문에 떠나라고 한 것은 아니다.”

- 그동안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강력하게 주장해왔다. 그러나 한화 사건은 한국 경찰의 수사력에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지 않았나.

“경찰의 수사권 독립은 권력을 집중시킬 것인지와 견제가 가능하도록 분배할 것인지, 즉 ‘민주화’에 관한 문제다. 수사력과는 논리적으로 관계가 없다. 2차대전 패전 후 일본 경찰에 대한 신뢰 수준은 굉장히 낮았다. 하지만 미군정은 ‘기소권을 가진 검찰이 경찰 수사에 관여하는 게 비민주적’이라며 수사권을 독립시켰다. 이후 별 시행착오 없이 신뢰받는 조직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한국 경찰의 수사력이 그렇게 좋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처럼 수사권이 독립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더 나아지기 어렵다. 검찰은 좀 잘 하려고 하면 ‘그만하라’면서 경찰 수사가 커지는 것을 자꾸 막는다. 자체적으로 수사역량을 강화 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다만 한화사건은 너무 아깝다. 잘 했다면 큰 박수를 받았을 텐데. 그런데 그걸 관리자들이 ‘최악’으로 망가뜨렸다.”

- 정계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말도 있다.

“최근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정치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보신주의에 물든 이들이 자신의 비겁함을 감추려고 ‘정치권에 진출하려고 하니까 저러지’라고 말하는 거다. 다만 ‘절대로’ (정치권에) 안 가겠다는 말은 위선적으로 비치더라. 만약 경찰조직을 떠나 할 일 없을 때는 (정치를 통해) 사회에 기여하는 길이 생길 수도 있지 않겠나. 하지만 지금은 생각 없다.”

<글·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사진·김세구 기자 k3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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