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법 개정안 고소 없이도 처벌 가능… 저작권자 잠재고객 잃을까 오히려 반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에 따라 국내 프로그램 보호법이 더 강화될 전망이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프로그램보호법 개정안에 따르면 저작권자의 고소 없이도 불법 복제 프로그램 사용자들을 처벌할 수 있다. ‘비친고죄’가 도입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불법 복제 프로그램 사용자를 처벌하기 위해 저작권자의 고소가 꼭 필요했던 ‘친고죄’가 폐지되는 것. 이 때문에 프로그램 업계에서는 이 개정안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저작권자의 고소 없이도 처벌이 가능하다면 지금과 달라지는 것은 무엇일까.
‘처벌의 폭’ 넓어져
프로그램보호법에서 보호하는 프로그램들은 흔히 소프트웨어라는 말로 사용하기도 한다. 여기서 정의하는 프로그램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운영체제인 ‘윈도’나 어도비시스템즈의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 ‘포토샵’ 등이 포함된다. 그동안은 이 같은 컴퓨터 프로그램들을 불법 복제품을 사용하더라도 저작권자가 직접 고소하지 않으면 법적 처벌을 받을 일이 거의 없었다. 컴퓨터 프로그램 보호법에는 ‘친고죄’가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친고죄란 범죄의 피해자나 그밖의 법률에서 정한 사람이 고소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범죄를 말한다. 말 그대로 피해자가 고소해야 처벌할 수 있는 범죄다.
그러나 프로그램보호법을 개정하면 이 같은 ‘친고죄’는 자취를 감출 듯하다. 정부는 개정안을 통해 앞으로 ‘영리를 목적으로 불법 복제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경우’와 ‘6개월 동안 불법 복제 프로그램 사용으로 피해액수가 100만 원 이상이 될 경우’에 불법 복제 프로그램 사용자를 대상으로 ‘비친고죄’를 적용하겠다고 했다. 즉 저작권자들이 직접 나서지 않아도 경찰이 불법 복제 프로그램 사용자를 적벌해 처벌하겠다는 말이다.
일부에서는 ‘비친고죄’를 적용하면 “온 국민이 범죄자가 된다”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한다. 저작권자의 고소가 필요한 ‘친고죄’가 적용되는 지금은 저작권자가 광범위하게 분포한 불법 복제 프로그램 사용자를 적발하기 어렵다 보니 그 처벌 대상이 적은 편이었다. 또 고소하기 전에 저작권자와 불법 복제 사용자들의 합의가 가능하기 때문에 불법 복제 사용자가 곧바로 ‘범죄자’가 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러나 ‘비친고죄’를 적용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불법 복제 프로그램 사용이 적발되는 순간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저작권자의 고소와 같은 복잡한 절차 없이 경찰의 기소가 이어질 수 있다.
물론 프로그램 보호법이 개정된다고 해도 바로 개인 사용자가 처벌 대상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컴퓨터 프로그램의 가장 큰 사용자는 바로 기업으로 그 사용량이 많은 만큼 단속의 주된 대상은 기업이 될 전망이다. 그러나 이 같은 ‘비친고죄’ 분위기가 확산돼 자리를 잡고나면 개인 사용자 역시 불법 복제 프로그램을 사용할 경우 ‘범죄자’로 적발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는 불법 복제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이 ‘당연한 일’처럼 인식되고 있어 ‘비친고죄’를 적용하면 일부 주장처럼 ‘온 국민이 잠재적 범죄자’를 되는 것이 꼭 틀린 말은 아니다. 또 매우 작은 기업체나 소호 등도 불법 복제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적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저작권 강화 반대하는 저작권자
잘 알려졌듯이 국내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율, 사용률은 매우 높은 수준이다. 일부에서는 불법 복제를 사용하는 비율이 프로그램 사용자의 절반에 육박한다는 통계를 제기하기도 했다. 이미 ‘불법 SW의 천국’이라는 오명은 오래전 얘기기도 하다. 저작권자의 권리를 보호해주는 프로그램 보호법이 강화된다는 것은 이 같은 오명을 씻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그동안 불법 복제 SW를 사용하던 사람들에 경각심을 불러올 수도 있다. 당연히 저작권자들의 환영을 받을 만하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비친고죄’가 도입되는 프로그램 업계에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저작권자들이 이 저작권 강화를 반대하고 나선 것. 소프트웨어를 만든 저작권자, 프로그램 개발 업체들은 “온 국민의 절반을 범죄자로 만들 수는 없다”며 ‘비친고죄’ 적용을 적극 반대하고 있다. 이들이 속해 있는 한 협회 관계자는 “협회 회원사, 즉 저자권자들 가운데 80% 이상이 ‘비친고죄’ 적용을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법의 강화를 쌍수 들어 환영해야 할 저작권자들이 이처럼 ‘비친고죄’ 적용을 반대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들은 ‘잠재적인 고객’을 잃을 수는 없다고 말한다. ‘친고죄’는 그동안 이 저작권자들의 강력한 무기 가운데 하나였다. 소송을 무기로 정품 사용자를 확보할 수 있고 소송을 취하하는 조건으로 일종의 ‘합의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 ‘합의금’을 소송이 진행되면 받는 손해배상금이라고 말하고 있다. 어찌 보면 ‘친고죄’가 적용되는 현형 프로그램 보호법을 통해 이들은 정품 사용자와 ‘합의금’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취하는 셈이다. 한·미 FTA의 협정에 따라 프로그램 보호법을 개정해야 하는 정부는 이 같은 저작권자들의 반응에 당황스러워 하고 있다. ‘비친고죄’를 적용할 경우 장기적으로 저작권법을 강화할 수 있는데 막상 저작권자들이 이를 반대하는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정부가 개정안을 내놓았다고는 하지만 이 법은 입법부인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저작권자들의 ‘비친고죄’ 적용 반대 주장이 입법부인 국회를 설득할 경우 프로그램보호법 개정은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것. 이에 정부 관계자는 “한·미 FTA 협상에 따른 개정안이기 때문에 이 법은 반드시 개정해야 한다”며 “저작권자들이 눈 앞의 이익만 생각해 ‘비친고죄’ 도입을 반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안
프로그램보호법 개정안은 불법 복제 프로그램 사용률이 높은 우리나라 상황에 ‘양날의 칼’이다. 사회적인 이슈로 떠오른 불법 복제 프로그램 사용의 만연 실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이나 과연 ‘비친고죄’ 도입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인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정부가 프로그램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 후 열린 한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는 “국내 불법 복제 프로그램 사용이 해외에 비해 매우 높은 편이나 ‘비친고죄’를 도입하는 문제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충고했다. 그는 “해외에서는 수사당국이 저작권자의 고소 없이 직접 수사에 나서는 경우는 매우 대대적인 불법 복제 프로그램 사용이 일어났을 때”라고 말했다. 즉 사회적 물의를 빚을 만큼 큰 사건이 터졌을 때만 경찰이 직접 수사에 나서고 나머지 작은 사건들은 저작권자가 소송을 제기하는 ‘친고죄’를 적용한다는 것이다. ‘비친고죄’를 적용할 경우 경찰의 수사가 우선 기업 사용자들에게 집중될 것이라는 예상 때문에 실제 국내 불법 복제 프로그램의 사용이 크게 줄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개인 사용자들도 불법 복제 프로그램을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개인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수사가 쉽지 않기 때문에 개인 불법 프로그램 사용자들은 그대로 남을 것이라는 예상에서다. 이 때문에 단순히 ‘비친고죄’를 무조건 도입하기보다 유예 기간을 거치거나 좀 더 현실적인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비친고죄’ 도입으로 저작권 보호를 강하게 만들어 그동안 우리 사회 ‘고질병’으로 굳어진 불법 복제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함정선〈아이뉴스24 기자〉 mint@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