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훈 동북아시대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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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비핵화, 정상회담 중심의제 될 수 없다”

[직격인터뷰]이수훈  동북아시대 위원장

대선을 2개월여 앞두고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된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남북 정상회담이 대선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정상회담 무용론’이나 ‘정상회담 불가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임기가 불과 몇 개월밖에 남지 않은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통해서 합의한 결과물을 차기 정권에서 실천할 수 있을 것이냐 하는 문제도 제기된다. 정상회담 관련 논쟁이 치열한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고 있는 청와대 직속 동북아시대위원회 이수훈 위원장을 정부종합청사에서 만나, 남북정상회담의 의미를 물어봤다.

- 국민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 후보는 이번 남북 정상회담의 중심의제가 북한의 비핵화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비핵화가 남북 정상회담의 중심의제가 될 수 없다. 비핵화는 6자회담에서 다루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평화증진, 공동번영, 통일 등 3가지 의제를 다루기로 남북이 이미 합의했다. 비핵화 문제는 6자 프로세스가 그런대로 굴러가고 있기 때문에 그 작동에 정치적 의지를 실어주는 방향에서 논의하면 된다. 남북 정상회담은 포괄적인 회담이 될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는 남북 경제공동체 형성 문제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번 회담의 테마가 경제가 될 것이란 얘기다.

- 일각에서는 남북 정상회담을 차기 정부에 넘기는 것이, 남북 정상 간에 합의사항을 실천할 수 있다는 면에서 더 효율적이라고 주장하는데.

“무책임한 주장이다. 정부더러 일하지 말고 손놓고 있으라는 주장이다. 지금이 한반도와 동북아의 앞날과 관련하여 대단히 중요한 시기다. 이 시점에 남북 정상이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대화해야 한다. 이때 남북관계의 실질적 진전을 위해 할 일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 모두에게 짐이 된다. 차기 정부에도 짐이 되고 역사적으로도 과오가 된다고 본다. 이번 2차 정상회담을 잘 해놓고 보면 다음에 정상회담도 쉽게 할 수 있다. 차기 정부가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부담을 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10월 초순은 범여권인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후보 경선이 한 창인 때다. 남북 정상회담이 남한의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나.

“남북 정상회담이 대선에 미칠 영향이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남북관계가 그만큼 진전되었다. 만약 정상회담이 그런 정치적 의도를 갖고 추진되었다고 하면 국민이 준엄한 심판을 내릴 것이다. 유권자는 매우 현명하다. 정치적 잣대로 남북 정상회담과 같은 국가적 중대사를 바라봐서도 안 되고, 추진 주체인 정부가 그런 차원에서 추진할 일도 없다. 정치권의 기우에 불과하다.”

- 서해북방한계선(NLL)에 대한 정상회담 의제화를 놓고 관련 부처인 통일부와 국방부가 각각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 같다. 정상회담에서 NLL 문제를 어떤 수준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NLL은 복잡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논란이 이는 것이다. 나는 두 부처가 다른 목소리를 낸다고 보지 않는다. 정부의 입장이 명확하게 있는데 왜 다른 소리가 나오나? 이 문제는 대단히 정치성을 띠고 있다. 정상회담에서 논의되면 NLL 문제는 남북 기본합의서의 틀 내에서 접근해야 하고, 군사적 신뢰 구축을 위해 실무적으로 다룰 수 있을 것이다. 각론은 정상회담보다 국방장관회담 등 후속 회담에서 실무적으로 논의하는 것이 적절하다.”

- 일설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연내에 서울에 방문할 것이라는 얘기도 있는데.

“그것이 가능하겠나.”

- 2·13 합의 이후 북핵 비핵화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논의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6자회담 대표를 차관급(국장급)에서 장관급으로 격상하자는 얘기도 있는데.

“지금 6자회담의 틀이 비효율적이거나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회담 참가자의 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비핵화 실현을 위한 의지가 있느냐가 중요하다. 장관급으로 격상하면 모이기가 어려운 점을 비롯해 다른 실무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지금 구조로도 비핵화 목표에 이를 수 있다.”

- 6자 외무장관 회담 개최의 조건은 무엇이며, 언제 개최될 것으로 생각하나.

“다음 6자수석 대표회담 개최 시점을 9월 중순으로 봤을 때, 그 회담에서 비핵화의 윤곽이 드러나면 예컨대 불능화의 일정 문제가 해결되면 6개국 외무장관 회담이 열릴 수 있다. 9월 중에 열렸으면 좋겠는데, 여러 외교 일정을 감안하면 좀 어렵다고 본다.”

- 노무현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 일정 때문에 9월 말 미국 방문과 한·미 정상회담을 포기하고 그 대신, 호주 시드니에서 열릴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추진 중이다. APEC 기간 중의 정상회담은 관례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회담의 의미가 반감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을 포기하면서까지 남북 정상회담을 해야 할 의미가 있나.

“한·미 정상회담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애당초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은 유엔총회라는 계기가 있었기 때문에 검토해온 일이다. 이제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중대한 변수가 생겼고 북한이 뜻밖의 수해로 정상회담이 연기됐으니까 APEC 계기를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중요한 것은 한·미 간 공조가 굳건하고, 한국 대통령의 임기 말에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다는 사실이다. 흔히 남북과 한·미가 충돌한다는 관점에서 바라보는데, 지금은 양자가 상충하지 않고 서로 견인하는 관계라고 봐야 한다. 시드니에서도 한·미 정상 간에 더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다.”

[직격인터뷰]이수훈  동북아시대 위원장

-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북한 방문 가능성이 다시 제기되는데.

“그 문제는 내가 더는 얘기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나로서는 미국의 고위급 인사가 방북하여 비핵화 프로세스를 가속화하고 북·미 관계 개선의 중대한 계기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뿐이다. 라이스 장관이 방북한다면 북·미 관계 정상화에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 일부에서는 참여정부를 ‘위원회 공화국’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특히 차기 정부에서는 대통령 직속 또는 정부 직속 위원회가 폐지될 것이라고 하는데, 이에 대한 견해는.

“위원회가 일을 많이 했다. 위원회를 매도하는 것은 우리 학계와 전문가 집단을 매도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동북아시대위원회만 해도 수십 명의 학자와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국정과제위원회는 한국 거버넌스에 있어 매우 중요한 실험이고 의의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일부에서는 동북아시대위원회도 ‘개점휴업 상태’라면서 별로 하는 일이 없다고 비판했는데.

“내가 비상근인데 매일 9시에 출근해 오후 늦게까지 사무실을 지킨다. 그만큼 일이 있고 일을 하기 때문이다. 지금 중요한 일은 그간의 과제들을 종합적으로 정리 정돈하는 것, 대통령의 각종 정상회담 준비 지원, 동북아다자안보체제 구축 대책 마련, 주요국과의 전략대화 등이다. 러시아 등과 에너지 협력도 가시화되고 있다. 사할린에서 LNG를 들여와서 직접 소비하는 단계에 와 있다. 하지만 아직 동북아 에너지 협력은 초보단계다. 러시아와 같이 한다는 것이 어려움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에너지 협력 구상도 현실화될 것으로 믿는다.”

"비핵화 문제는 6자 프로세스가 그런대로 굴러가고 있기 때문에 그 작동에 정치적 의지를 실어주는 방향에서 논의하면 된다. 남북 정상회담은 포괄적인 회담이 될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는 남북 경제공동체 형성 문제에 무게를 두고 있다."

<글·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사진·김세구 기자 k3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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