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D 상용화·대용량화 빨라지면서 기존 HDD 아성에 도전장
디지털기기 저장장치 시장이 소용돌이에 휩싸이고 있다. 이전엔 플래시메모리와 하드디스크 드라이브(HDD)가 각각 소형과 중·대형 저장장치 역할을 나눠 맡았다. 하지만 플래시메모리가 결합된 솔리드 스테이트 디스크(SSD)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올해 들어 SSD의 상용화와 대용량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기존 HDD 시장을 얼마나 잠식할 수 있을지 관심을 끌고 있다. 최근 속속 시장에 나오고 있는 SSD는 보통 1.8인치, 2.5인치, 3.5인치 크기로 만든다. 이는 HDD 제품들과 같은 크기로, 형태에 제한을 받지 않는 SSD를 이렇게 만드는 것은 현재 HDD의 영역을 파고들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HDD 진영은 상위 6~7개 업체가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면서도, SSD라는 신흥 세력에 맞서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SSD는 2005년 5월 삼성전자가 선을 보이면서 국내에 널리 알려졌다. 당시 삼성전자는 8GB(기가바이트) 낸드플래시메모리 16개를 결합한 16GB 제품을 포함해, 4~16GB SSD 4종을 선보였다. 각 제품은 낸드플래시와 SSD의 성능을 좌우하는 콘트롤러가 결합해 완성됐다.
SSD, 전력소비·안정성 우세… HDD는 용량·가격이 강점
SSD는 고체 반도체(Solid State)들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원판 모양의 디스크(플래터)가 빠르게 회전하면서 바늘 모양의 헤드로 데이터를 읽는 HDD에 비해 전력소비·소음·발열·읽기 속도·충격 등에서 우수한 성능을 보인다. 물론 SSD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같은 용량의 제품에서도 가격이 HDD에 비해 많게는 10배 이상 높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저장장치 시장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SSD는 고가라는 약점이 걸림돌이 됐다. 하지만 SSD 업계는 삼성전자·도시바·하이닉스반도체 등 낸드플래시 상위업체 간 미세공정 도입과 생산라인 확대 경쟁이 낸드플래시 가격의 점진적인 하락을 유발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1956년 최초의 제품 출시 이후 수십 년 동안 기술을 축적해온 HDD 업계 역시 SSD의 약진을 바라보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격과 용량의 절대적인 우위를 확보하고 있는 HDD 진영은 최근 소음을 사람이 듣기 어려운 수준으로 줄이고, 소비전력도 낮추는 데 주력하며 상대적인 약점들을 빠르게 만회하고 있다.
인텔·삼성전자·샌디스크 등 50여 개 업체 SSD 출시 ‘봇물’
올해 초 낸드플래시 가격이 급락하자 SSD 업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시장에 속속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세계 메모리카드 1위 업체인 샌디스크는 지난 1월 첫 제품을 공개한 데 이어, 최근 1.8~2.5인치 크기의 32GB, 64GB SSD를 각각 출시하고 제품 공급에 나섰다. 세계 최대 반도체회사 인텔도 올해 들어 1GB, 2GB, 4GB 제품을 양산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삼성전자 역시 1.8인치 크기의 64GB SSD를 지난 6월부터 양산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대만의 PQI, 라이텍, 킹스톤, 트랜센드, 원칩, 트윈모스 등 반도체 업체도 16~256GB의 다양한 SSD를 선보이며 경쟁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국내에서 엠트론, 뉴틸메카, 오픈네트서비스, 명정보기술 등 중소기업은 독창적인 기술 개발에 성공해 노트북·데스크톱 시장 및 서버·군수·항공·선박 등 특수 분야 공략에 나선 상태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핵심 콘트롤러 기술 보유업체 10여 곳을 포함해 50여 개의 국내외 기업이 SSD 시장에 뛰어든 것으로 파악된다. 높은 가격 때문에 SSD가 HDD 시장을 넘보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은 오래지 않아 옛말이 됐다. 최근 PMP와 울트라 모바일PC(UMPC)에 SSD가 장착되고 있는 것을 비롯해, SSD를 탑재한 노트북도 속속 선을 보이며 HDD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 델·후지쯔·도시바·소니·HP 같은 주요 노트북 제조업체들은 삼성전자와 샌디스크 등으로부터 32~64GB 제품을 공급받아 SSD 탑재 노트북을 선보이고 있다. 삼성전자에 이어 국내 라온디지털이 조만간 SSD 탑재 UMPC를 내놓는 것을 비롯해, 국내외 다수 PMP 업체도 하반기 HDD 대신 SSD를 저장장치로 쓴 제품들을 내놓을 예정이다.
중소형 디지털기기 시장 ‘전면전’ 양상
용량을 1TB(테라바이트)까지 확대해 SSD 진영과 거리를 벌렸다고 생각한 HDD 업체들은 당장 1.8인치 크기의 제품과 모바일기기 시장에서 SSD와 경쟁이 불가피해졌다. 삼성전자는 내년 40나노급 공정을 적용한 낸드플래시를 활용해 1.8인치 크기의 128GB SSD도 내놓을 방침이다. HDD 업계는 2.5인치와 3.5인치 시장에서 여전히 용량 및 가격 우위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시장을 내주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 스토리지사업부의 박노열 상무는 “현재 1.8인치 이하의 영역에서 HDD와 SSD의 경쟁이 시작되고 있다”며 “이러한 양상은 점차 2.5인치까지 확대될 전망이나, 이러한 과정에서 HDD와 SSD가 고유의 영역을 확보해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시장조사기관 아이서플라이는 오는 2009년 말께 전체 노트북 가운데 하이브리드 HDD(SSD의 장점을 결합한 HDD) 및 SSD를 탑재한 제품의 비중이 일반 HDD 채용 제품의 비중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그만큼 노트북을 비롯한 중소형 디지털기기 시장에서 HDD와 SSD 간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단 데스크톱 PC용으로 쓰이는 3.5인치 시장과 대용량 소비가전용 저장장치 시장은 앞으로도 HDD 업체들의 텃밭이 될 전망이다. 3.5인치 HDD는 이미 1TB까지 용량이 확대돼 수십 만 원대에 팔리고 있지만, 현재 64GB 제품이 수십만~수백만 원에 판매되는 SSD는 향후 수년 동안 HDD의 용량과 합리적인 가격 수준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스크톱 PC와 소비가전 시장을 제외하고도 SSD와 HDD의 대결은 서버와 자동차, 군수, 항공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될 전망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권해주〈아이뉴스 기자〉 postman@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