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트라 TRS를 통한 유기적 정보교환 시스템 구축 목표 늦어질 듯
#1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 전례없는 규모의 여객기 테러가 뉴욕 중심부를 강타했다. 미국 경제의 상징이었던 세계무역센터가 붕괴하면서 약 300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2 2003년 2월 18일. 대한민국 대구. 우울증을 앓던 한 사내가 지하철에 불을 질렀고 사람들은 혼란 속에서 쓰러져 갔다. 연기가 지하철을 타고 흐르면서 피해가 확산돼 결국 192명의 사망자를 내고 말았다.
두 사건은 일반 대중을 무차별적으로 노린 테러라는 점 외에 한 가지 공통점이 더 있다. 사건 발생 당시 소방서, 경찰서, 군부대 사이에 완벽한 정보 교환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당시 모든 관련 기관이 정보를 유기적으로 교환할 수 있었다면 피해 규모를 상당히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테트라(TETRA) 방식의 국가통합지휘무선통신망 도입
이 사건 이후 양국은 물론 쓰나미, 대형 산사태 등의 위험이 있는 국가에선 대형 재난 발생시 국가기관이 신속하게 종합적인 대응 방안을 세우고 긴급구조 활동을 벌일 수 있게 하는 국가통합지휘무선통신망(이하 국가통합망) 구축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우리나라는 2003년 12월 ‘테트라(TETRA)’ 방식의 국가통합망 도입을 결정했다.
테트라(TETRA)는 유럽무선통신표준기구(ETSI)가 정한 디지털 주파수공용통신(TRS:Trunked Radio System) 기술로 유럽형 디지털TRS라고도 불린다. TRS는 주파수 이용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여러 주파수를 다수 가입자가 공동으로 이용하는 무선통신 시스템이다. 하나의 단말기에서 다수 사용자와 동시에 음성통신을 할 수 있다.
테트라는 아날로그 TRS를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한 것이다. 개방형 기술로 기술표준화 그룹인 TETRA MoU에서 기술규격을 제정하고 관련 장비 인증 등을 진행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유럽 주요 국가와 중국 등지에서 국가통합망 방식으로 채택했다. 테트라 외 상용화된 다른 디지털 TRS 방식엔 미군 등이 채택하는 아이덴(iDEN:Integrated Digital Enhanced Network) 등이 있다.
테트라의 가장 큰 장점은 단말기 하나에서 다양한 음성통신 외에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동전화, 무선데이터전송, 양방향 무선호출 등이 모두 가능하다. 20∼30㎞였던 통화권도 최대 50㎞까지 늘어나며 시속 160㎞ 이상의 고속주행 중에도 통화 품질이 떨어지지 않는다. 통화할 때마다 주파수가 바뀌기 때문에 보안성도 높다.
이러한 유용성 때문에 테트라는 현재 경찰망 방식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무선 단말기로 음성통화를 하다가 필요한 경우 신속하게 차량, 전과 조회 등과 관련된 데이터를 내려받을 수 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작년에 이미 테트라 시스템을 구축하고 지난 4월에 200억 원 규모, 총 1만8000대의 테트라 TRS단말기 구입을 계약하기도 했다.
테트라 시장 성장 전망에 따라 업체간 경쟁 가열
테트라 방식의 디지털TRS는 방범, 방재 및 재해, 재난구호와 관련된 공공부문은 물론이고 일반 제조, 통신 등 사설 또는 상업망으로 폭넓게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전문가들은 국가통합망을 포함한 테트라 TRS가 향후 4∼5년간 수천억 원대의 시장 수요를 창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서울시는 오는 2008년 12월 준공 예정인 도시철도 9호선에 테트라 TRS를 이용한 열차무선통신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며 한국전력도 전국에 설치된 지상 전신주를 디지털 TRS망으로 무인자동화(전력 원격제어)하기로 하고 최근 시범사업자를 선정했다. 특히 한전의 경우 올해 시범운용을 거쳐 무인자동화시스템을 전국 규모로 확대,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업계는 한전 TRS 본사업이 200~300개 TRS 기지국과 6만 대의 단말기 등이 투입되는 등 예산 규모가 1000억 원대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시장을 놓고 벌어지는 모토로라, EADS, 세퓨라 등 글로벌 테트라 시스템 및 단말기 업체간 경쟁도 한창 달아오르고 있다. 국내에선 모토로라가 기존 TRS 관련 사업의 힘을 업고 유리한 고지를 선점 중이다. 모토로라는 지난 1월 KT와 총 270억 원 규모의 장비 공급을 계약하고 국가통합망 1차 확장사업에 모토로라 테트라 시스템(기지국·교환국)을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국가통합망 1차 사업은 서울·경기지역과 고속도로 신설구간이 대상이다.
하지만 EADS는 앞서 소개한 한전의 디지털 TRS 전환 시범사업자로 선정돼 한전 테트라 본사업 수주전에서 먼저 교두보를 확보했다. EADS는 최근엔 서로 다른 테트라 시스템 호환성(ISI)을 강조하고 있다. 아직 ISI 표준화가 완료된 것은 아니지만 TETRA MoU로부터 관련 인증을 받았다는 것을 내세워 모토로라의 아성을 흔들겠다는 전략이다. 세퓨라, 유니모테크놀로지도 각각 서울지방경찰청, 한국전기안전공사 등과 테트라 단말기 공급 계약을 맺는 등 영업을 강화하고 있다.
정작 국가통합망 사업은 불투명
하지만 테트라 TRS와 관련해 정작 가장 중요한 국가통합망 구축 사업은 4년째 표류하고 있어 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정부·관련 업계에 따르면 소방방재청은 통합지휘무선통신망 사업을 추진할 민간사업자를 선정해 이르면 연말부터 본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었으나 최근 감사원 감사를 받은 후 결과가 나올 때까지 사업 추진을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2003년 도입 결정 당시 국무조정실은 2006년까지 3600억 원의 예산을 들여 테트라 방식으로 관련 기관의 무선망을 통합하기로 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테트라 시스템이 설치된 지역은 서울·경기지역과 대전·대구·부산·광주 등 일부 광역시뿐이다. 3600억 원으로 알려졌던 예산도 현재 2100억 원으로 준 상태고 그나마 집행 여부마저 불투명하다.
애초에 소방방재청은 내년을 전국망 설치 시기 목표로 삼았으나 사업자 선정이 이뤄지지 않아 이미 물 건너간 꼴이 됐다. 내년 초에 사업자 선정이 이뤄진다면 빨라야 2010년에나 전국망 구축이 가능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사업 지연은 테트라가 기존 TRS망을 사용해야 하는지 전국망을 새로 구축할 것인지 등에 대한 논란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예산 확보 문제, 전체 시스템이 특정 업체 시스템에 종속되서는 안 된다는 의견 제기 등도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민자 사업인 건 맞지만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라 규모 등 사업 관련 내용이 바뀔 수도 있다”며 “감사 결과에 따라 사업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사업 내용이나 예산 등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더라도 사업 자체에 대한 정부의 확고한 의지가 필요한 시점이다.
최순욱〈전자신문 U미디어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