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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환경 악화가 출산율 떨어뜨려”
비정규직 재취업 준비 국가서 도와주고 자기계발비 지원했으면

권수현씨가 집담회에 앞서 자신이 작성한 정책 제안 카드를 게시판에 붙이고 있다.

권수현씨가 집담회에 앞서 자신이 작성한 정책 제안 카드를 게시판에 붙이고 있다.

지난 8월 2일 충무로 KYC 사무실에 6명의 비정규직·정규직 노동자가 모여 비정규직 문제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먼저 이랜드 계약직 노동자 외주화 방침에 대한 비판적 의견이 쏟아졌다. “재계와 노동계의 반대 속에서 억지로 입안한 법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왔다. 참석자들은 또 “앞으로 비정규직 문제가 어떻게 굴러갈지 불안하다”며 “국가가 나서서 풀어야 할 몫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또 기업이 정규직에 ‘안정적인 삶’의 발판을 마련해준다면, 비정규직들에는 국가가 그런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비정규직 노동자가 쉽게 재고용될 수 있도록 국가의 체계적인 자기계발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참석자
권수현 ▶ 여·25·파트타임
김상미 ▶ 여·20·파트타임
이수정(가명) ▶ 여·26·계약직
임선남 ▶ 남·20·계약직
이성현(가명) ▶ 남·35·정규직
뱍태현(가명) ▶ 남·31·정규직

사회(최융선): 먼저 이슈가 되고 있는 이랜드 계약직 노동자 외주화 방침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박태현: 계산원처럼 능력 고하를 따질 수 없는 일부 서비스직종에서는 오히려 비정규직법안이 독이 됐다. 애초 노동계·재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만든 허술한 법안의 한계다. 아마 대부분 기업이 이랜드처럼 외주화를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성현: (이랜드의 경우) 노동조합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카드를 회사가 제시했다고 본다. 박성수 회장을 비롯해 이랜드그룹의 기업문화는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는다. 우선 기업과 노동조합의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박태현: 이번 일을 지켜보면서 비정규직 문제가 앞으로 어떻게 굴러갈지 불안감이 커졌다.

이성현: 노무사로 일하고 있어, 고민이 많다. 국가 몫의 과제가 많이 남아 있다고 본다. 이를테면 은행에서 창구업무를 보는 계약직 직원의 경우, 기업에서 직무전환시험을 보게 해서 정규직 일반업무를 담당하게 할 수도 있다. 열심히 일하고 지식도 쌓아 시험을 통과한 계약직원을 정규직으로 뽑으면 기업으로서도 좋은 일이다. 이렇게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국가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김상미

김상미

이수정: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가 생기고 있다지만 문제는 일부 비정규직의 경우, 동일가치의 노동 기회마저 박탈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데 정규직에 비하면 허드렛일을 하고 있다고 느낀다. ‘숙련’이 필요한 ‘깊이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이성현: 정규직 공채로 뽑히면 수습기간이 있는데, 비정규직을 일종의 ‘긴 수습기간’으로 보고 활용하는 길이 있다고 본다. 비정규직의 경우, 진입장벽이 (정규직에 비해) 낮기 때문에 원하는 회사·직종에서 경력을 쌓기가 좋다. 그후 경력을 인정받아 정규직으로 전환되거나 더 나은 곳으로 옮길 수 있다.

사회(최융선): 보통 몇 년 일해야 이직할 때 경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나.

이성현: 보통 2년이다. 2년 이하로는 대개 신입으로 친다.

이수정: 하지만 사회에서 ‘정규직의 2년’과 ‘비정규직의 2년’을 같게 볼까? 제가 일하고 있는 직장에선 합병 때문에 5분의 1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 다들 불안해하고 있지만 물론 비정규직의 불안이 더 심하다. 정규직은 경력이라도 당당히 인정받을 수 있지만 비정규직은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임선남: 역시 비정규직의 가장 큰 문제는 ‘해고 이후’에 대한 불안인 것 같다. 공장에서 일용직 형태로 일한 적이 있다. 정규직 동료들은 아플 때 병가를 내 쉬었지만 비정규직 동료들은 눈치만 살피다가 병을 키우더라. 미운 털이 박혀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었다. 잘리고 나면 갈 곳이 없으니….

이수정: 주위에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친구들을 보면, 다니는 직장이 없을 때 무조건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그냥 달려들더라. 불안감 때문이다. 그 불안을, ‘학습권 보장’을 통해 (국가가) 어느 정도 해소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정규직은 쫓겨나면 다른 회사로 가야만 하는데 그러려면 준비된 상태여야 한다. 그 ‘준비’를 국가가 도와달라는 얘기다. 비정규직은 자기계발을 할 기회마저도 정규직보다 더 적다. 정규직은 회사 차원에서 연수나 대학원 등을 보내주는 경우가 많고 숙련노동을 하면서 배우는 것도 많다. 비정규직은 정부가 학원비를 깎아주는 것 외에는 별다른 게 없다. 비정규직이 업무 관련성이 인정되는 학위를 따고자 할 경우 국가가 일정 심사를 통해 지원금을 주면 어떨까. 자기계발비를 월급에 추가해 주거나, 실업급여와 관계없이 주면 어떨지.

임선남

임선남

김상미: 여성 비정규직의 불안이 더 심하다는 점도 정치권에서 곱씹어봐야 한다. 특히 많은 비정규직 여성이 출산 후 언제 잘릴지 몰라 불안해한다. 그래서 출산을 꺼리는 것이다.

이수정: 공감한다. 여성의 경우 비정규직 비율이 70~80%로 남성보다 훨씬 높다고 들었다. 주위에서는 ‘왜 결혼을 안 하냐, 골드미스가 좋냐’ 이렇게 몰고 가는데, 노동환경이 계속 여자들로 하여금 애를 못 낳게 만들고 있다. 그러니까 출산율이 저하되고, 노동인력이 줄어든다.

권수현: 단지 비정규직이라는 근로 형태에 대한 접근에서 나아가 직종별로 접근해 줬으면하는 바람도 있다.일부 직종의 경우, 신입을 고용해서 교육하려 하지 않고 경력자 위주로 채용한다. 신입은 아주 적은 임금을 받거나 혹은 임금을 전혀 받지 않고도 경력을 쌓기 위해 고생스럽게 일한다. 이런 일은 아르바이트와 다를 바 없다. 자연히 고용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사회(최융선): 한 취업 포털사이트에 따르면 구직을 원하는 사람 66.7%가 비정규직이라도 취직하고 싶다고 한다. 그런데 비정규직을 해 본 사람 중 30% 미만만이 비정규직이라도 다시 일하고 싶다고 말한다. 만약 자신이 지금 일을 구한다면 비정규직이라도 괜찮겠나.

권수현

권수현

김상미: 가능하면 안 하고 싶다. 하지만 비정규직 경력을 쌓은 뒤 정규직으로 전환되거나 혹은 재취업할 수 있는 길이 넓다면 고려해 보겠다. 그런 시스템이 정착만 된다면 일부에서 말하는 대로 청년 실업률을 줄이는 방안도 될 수 있지 않을까.

이성현: 비정규직이 많아지면 실업률이 낮아진다는 논리는 허구다. 물론 OECD 가입국 중 일부 국가에서는 그런 상관관계가 나오기도 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제가 공부한 바로는) 그렇지 않다. 이미 우리나라의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 하고 있는 일들은 ‘셰어링’(여러 사람이 일을 나누어 처리할 수 있는 것)이 불가능하다. 비정규직을 ‘보호’한다고 해도 더 이상의 (비정규직) 일자리는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이 (비정규직보호법에 대해) 청년실업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본다.

진행·최융선〈KYC 사회개혁간사〉
<정리·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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