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이동통신망 제도 입법 예고… 기존 이통사 통신망 빌려 누구나 가입자 모집
앞으로는 롯데마트, 이마트 등 할인점이나 삼성생명 등 보험사에서 휴대전화에 가입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그것도 저렴한 요금으로 말이다. 정보통신부가 준비하고 있는 가상이동통신망사업자(MVNO) 제도가 곧 도입되기 때문이다.
정보통신부는 MVNO 제도의 도입 근거를 담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지난 8월 1일 입법 예고했다.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10월 정기 국회에 상정할 계획이다. 이 법이 국회에 통과하면 종래의 이동통신사의 네트워크를 빌려 누구나 휴대전화 가입자를 모집할 수 있게 된다. 이번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에는 이를 재판매라고 규정했으나 해외에서는 MVNO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된다.
재판매나 MVNO는 대표적인 도매 규제의 한 방법이다. MVNO 제도를 도입하면 현재 SK텔레콤, KTF, LG텔레콤 등 이동통신 3사 이외에도 다른 이동통신사가 생길 수 있다. MVNO는 주파수를 할당받지 않고 기존 이동통신 3사의 네트워크를 빌려 가입자를 모은다. 기존 통신사로부터 ‘도매’로 회선을 구입하고 대규모 시설투자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MVNO는 요금이 저렴하다. 정보통신부는 MVNO가 등장하면 현재보다 휴대전화 요금이 대폭 낮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실 정부가 재판매나 MVNO 제도의 도입을 서두르는 것은 시민단체나 정치권에서 휴대전화 요금을 인하하라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것도 한 이유다.
정유사·홈쇼핑도 이동통신사 가능
현재 예상되는 MVNO로 가장 유력한 것이 할인점이다. 할인점은 이미 전국적인 유통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추가 투자비가 적게 든다. 실제로 몇몇 대형 할인점에서 이미 MVNO나 재판매 사업 진출 계획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적인 영업망을 갖춘 정유사도 유력한 MVNO로 꼽힌다. 또 대규모 영업 사원을 거느린 보험회사도 MVNO로 등록해 휴대전화 가입자를 모을 수 있다. 보험과 휴대전화를 패키지로 묶은 결합상품도 예상할 수 있다. 생명보험에 가입하면 저렴하게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있는 상품이 나올 수도 있다. 홈쇼핑도 유력한 MVNO다. 미국에서는 디즈니가 MVNO 사업에 진출하기도 했다.
문제는 기존 통신사들이 과연 차별 없이 MVNO들에게 회선을 임대해줄 것인지다. 기존 통신사들은 아무래도 MVNO들의 등장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는 전기통신사업법을 개정해 SK텔레콤이나 KT 등 시장 점유율이 50% 이상인 거대 사업자들은 요청이 있을 경우 의무적으로 재판매(MVNO)에 나서게 할 계획이다. 다만, 3세대 휴대전화 서비스와 같은 신규 서비스일 때는 투자 인센티브를 보장하기 위해 재판매 의무화 대상에서 제외할 방침이다. 또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재판매가 활성화되는 경우에도 의무 사업자를 지정할 수 없게 할 계획이다.
거대 통신사들이 망을 임대하더라도 그 가격을 터무니없이 높게 부른다면 MVNO나 재판매 사업자가 저렴한 요금으로 가입자를 모을 수 없다. 따라서 정부는 재판매 의무 제공 사업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다른 재판매 사업자를 차별할 수 없게 할 계획이다. 또 KT나 SKT와 같은 지배적 사업자가 자신의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해 부당한 거래 조건을 강제할 수 없게 할 계획이다.
기존 통신사 재판매 사업 엄격히 통제
그래도 역시 문제는 발생할 수 있다. 가령 KT가 SK텔레콤의 망을 빌려 MVNO 사업을 하는 경우다. 이미 유선 전화 시장에서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KT가 휴대전화 사업에 진출하면 시장의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SK텔레콤 등 이동전화 업계도 이를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KT 등 재판매 의무 제공 사업자가 재판매 시장에 참여하면 시장 점유율 상한선을 정하기로 했다. 이를테면 KT가 휴대전화 재판매 사업을 하면 10% 이상 점유율을 가져가지 못하도록 막는다는 계획이다.
그런데도 재판매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고 휴대전화 요금이 내려가지 않으면 재판매 대가(망 임대 대가)를 정부가 규제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는 정부가 시장에 지나치게 간여할 소지가 있고 투자 유인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으므로 도입 요건을 엄격히 제한할 방침이다.
정통부 관계자는 “재판매 등 도매 규제의 도입은 더 많은 사업자가 더욱 다양하고 혁신적인 상품을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통신 시장 전체에 경쟁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라며 “도매 규제를 도입하면서 소매 규제를 완화해 나간다면 시장 자율적인 경쟁을 통해 요금이 인하되는 등 소비자 이익이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상이동통신망사업자란 MVNO(Mobile Virtual Network Operator)는 가상이동망사업자로 번역한다. 이와 달리 현재 SK텔레콤, KTF, LG텔레콤 등 정부에서 허가를 받고 주파수를 분배받아 이동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는 MNO(Mobile Network Operator, 네트워크운영사업자)라고 한다. MVNO는 MNO로부터 무선 회선의 일부를 임대해 독자적인 부가가치를 부여해 자사의 브랜드로 이동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를 의미한다. MVNO는 주파수를 보유하고 있지 않지만 MNO는 주파수 및 이동통신 설비를 보유하고 있다. 단순 재판매는 MNO와 계약 후 별도 브랜드로 가입자를 모집하는 형태이며, 독립적 고객관리 및 마케팅이 가능하나 부가서비스 플랫폼이 없다. 시장에 진입하는 비용과 위험이 적은 반면, 서비스 차별화나 트래픽 통제가 불가능하며 MNO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 현재 KT가 KTF의 PCS 재판매를 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부분 MVNO는 자체 부가서비스 플랫폼을 보유하고 별도의 요금체계를 갖는 등 좀 더 독립성을 강화한 형태다. 자체 콘텐츠 또는 포털을 통해 서비스 차별화가 가능하다. 부분 MVNO는 시장 진입의 위험이 적은 반면 MNO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SK텔레콤이 미국에서 어스링크와 합작한 힐리오가 부분 MVNO 형태다. 완전 MVNO는 교환기 및 가입자위치등록기(HLR) 등의 설비를 보유하고 음성·데이터 및 부가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다. 무선 주파수를 보유하고 있지 않지만 MNO와 유사한 수준의 이동통신 서비스가 가능하다. 자체 교환기를 보유해 착신 접속료 수익을 창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장 진입하는 데 자금이 많이 필요하고 그만큼 위험 요인도 많다. |
강희종<아이뉴스24 기자> hjkang@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