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력 경제지 월스트리트 저널 인수하자 세계 언론시장 긴장
![[월드리포트]머독, ‘명품 금융정보’ 손에 넣다](https://img.khan.co.kr/newsmaker/738/wor-1.jpg)
루퍼트 머독 뉴스코프 회장(76)이 8월 1일 미국의 유력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을 손에 넣었다. 월스트리트를 소유한 다우존스와 머독의 협상 과정은 내내 화제를 몰고 다녔다. 출신국 호주를 비롯해 영국, 미국, 홍콩에 100여 개 신문과 방송을 소유한 ‘미디어 재벌’ 머독이 월스트리트저널 인수에 보인 집착과 밀고 밀리는 4개월 간의 협상전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인수 협상이 마무리된 이후에는 머독의 선정적 저널리즘과 머독의 월스트리트저널이 몰고올 경제 신문 시장의 판도 변화가 관심을 모았다.
머독, 협상의 귀재 머독이 다우존스 주식 가격의 60%의 웃돈을 얹은 주당 60달러를 인수가로 제안했을 때 금융 시장에서는 그의 인수 승리를 확신했다. 그는 천부적 재능으로 어려운 게임을 즐겼다. 이코노미스트 최신호는 머독의 승리 배경을 비교적 상세히 분석했다. 머독이 다우존스 대주주인 반크로프트 가(家) 내부 정치를 완벽하게 읽어냈다고 평가했다.
다우존스 인수가격으로 50억 달러(주당 60달러)를 제시한 것은 반크로프트 가문의 세대 균열을 위한 작전이었다. 그의 전략은 적중했다. 편집권 독립 등 언론의 책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구세대와 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신세대의 의견이 갈렸다. 그동안 머독의 인수 제안에 한목소리로 반대해온 반크로프트 가문 주주들의 의견은 차별화를 보였다. 전체 64%의 지분 가운데 37%의 젊은 세대가 매각 찬성쪽으로 돌아섰다.
반크로프트에서 인수가 인상을 제안했을 때 깨끗이 거절한 협상력도 탁월했다. 머독은 애초에 제안한 인수가에 협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포기할 수도 있다는 인상을 심어줌으로써 반크로프트 가문의 애를 타게 했다. 한편에서는 반크로프트 가문이 지난 100여 년 간 지켜온 월스트리트저널에 대한 편집권 독립도 약속하는 유화 전략을 썼다. 머독이 인수를 제안한 타이밍 역시 다우존스 이사회가 매각만이 살 길이라는 결론을 내렸을 때라고 한다.
인수 과정에서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슈퍼마켓 재벌 론 버클, 인터넷 기업가 브래드 그린스팬 등 경쟁 인수자가 나타났다. 머독이 가장 우려한 상대는 파이낸셜타임스와 CNBC를 소유한 제너럴일렉트릭(GE)의 피어슨이었다. 그러나 경쟁자들은 머독이 올려놓은 높은 인수가의 벽을 결국 넘지 못했다.
왜 월스트리트저널인가 머독은 언론을 이용해 돈을 벌 줄 아는 ‘여우’로 통한다. 그는 2005년 5억5000만 달러를 주고 인터넷 네트워크 프로그램 마이스페이스를 사들였다. 디지털 시대를 어떻게 뚫고 나가야 하는지 전략을 갖고 있다는 증거다.
머독이 인기가 시들한 월스트리트저널을 비싸게 사들인 것을 누구도 ‘치기’로 치부하지 않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명품’으로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제공하는 금융 관련 뉴스와 정보는 고급 정보로 취급된다. 사업가들의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구독자들이 엘리트 계층이라 광고업계에서도 만만하게 보지 않는다. 비즈니스 정보를 제공하면서 전국 배급망을 가진 신문으로는 월스트리트저널이 거의 유일하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머독이 금융 자산이 증가하면서 금융 정보도 같은 속도로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매킨지글로벌인스티튜트는 세계 금융자산이 2005년 140조 달러, 2010년 214조 달러로 불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정확하고 신속하며 깊이 있는 금융 정보에 대한 수요는 나날이 늘 것으로 보인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머독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인터넷, 방송 채널을 통해 고급 금융 정보를 제공해 돈을 벌어보겠다는 야욕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금융 정보를 제공하는 방송 CNBC가 연 6억 달러의 광고수익을 벌어들이고 있는 것에 군침을 흘리고 있다는 것이다. 머독이 오는 10월 ‘폭스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내놓을 계획을 하고 있다는 점이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저널을 인수하는 데 너무 많은 돈을 썼다는 점을 들어 그의 전략이 차질을 빚을 것으로 전망하는 분석가들도 있다. 그들은 이번 협상 타결을 희생을 너무 많이 치른 승리라는 의미로 ‘피루스의 승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뉴스코프의 일부 주주들은 이번 인수 협상을 둘러싸고 머독이 세계 유수의 언론사를 사들이겠다는 개인적인 야망을 실현한 것에 불과하다고 폄훼하기도 했다.
언론 시장 긴장 머독의 월스트리트저널 인수로 언론 시장은 긴장 태세다. CNBC는 말할 것도 없고 업계 1위인 블룸버그에 대항하기 위해 최근 로이터 통신을 인수한 톰슨 파이낸셜도 걱정스런 눈빛이 역력하다. 여기에 뉴스코프가 경제 뉴스만이 아니라 정치 등 일반 뉴스까지 폭넓게 다루며 독자층을 넓혀나가겠다고 공언하자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까지 놀라는 모습이다.
이들은 한정된 독자들을 놓고 경쟁을 벌여야 하는 것에 대한 우려에 돈이 되는 것이라면 가리지 않는 뉴스코프의 저널리즘에 대한 걱정을 지면을 통해 연일 쏟아내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2일 사설을 통해 “미국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인 ‘품위 있는 저널리즘’은 경쟁을 통해 번성한다”며 머독이 월스트리트저널을 인수한 것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전했다. 아울러 머독이 영국 더타임스와 한 바 있는 편집권 독립 약속을 배신했던 점, 스타 TV가 중국 지도자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BBC 위성중계를 중단했던 때를 언급했다. 이코노미스트도 최신호에서 월스트리트저널은 그간 언론으로서 높은 기준을 가진 매체임을 강조했다. 반면 머독이 소유한 영국 타블로이드들은 선정적인 제목들로 가득 차 있음을 지적했다. 다우존스의 주요 주주이자 전 경영진 제임스 오타웨이의 발언도 각 언론을 통해 주요하게 실리고 있다. 그는 “다우존스와 반크로프트 일가가 머독 회장의 제안에 버티지 못한 것은 결코 좋지 못한 일”이라며 “머독 회장이 편집권 독립을 지키고 다우존스의 명성과 품질에 투자하겠다는 약속을 지켜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쨌든 머독 ‘선장’이 이끄는 ‘월스트리트저널 호(號)’는 세간의 무수한 화제를 뿌리고 이제 막 항해를 시작했다. 순항할지 좌초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국제부|김정선 기자 kjs043@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