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계동 한나라당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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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 한 획 그은 14대국회 ‘활약상’

[1000자 인물비평]박계동 한나라당 의원

박계동 한나라당 의원, 그는 한국 정치사의 한 획을 그은 사람이다. 1995년 정기국회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폭로해 전직 대통령을 법정에 서게 만들었다. 마침 친인척·측근 비리 등으로 정치적 수세에 몰린 김영삼 전 대통령이 ‘박계동 발언’을 계기로 ‘역사바로세우기’를 추진하면서 위기를 극복했다. 그 결과는 한국 정치사를 재정립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종전의 통념을 깨버린 것이다.

김원웅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장은 “박계동 의원이 어디서 정보를 얻었는지는 모르지만 당시 기준으로 매우 용기있는 행동과 발언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1992년 한준수 전 연기군수의 양심선언을 통해 관권부정선거의 실태를 밝혀냈다. 이 역시 헌정사상 초유의 ‘중립내각’(노태우 정권)을 출범시킨 대사건이었다. 당시(14대) 최고의 국회의원으로 그를 꼽는 데 어느 누구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15·16대 국회에서 ‘지역풍’에 낙선의 아픔을 경험했다.

그런 동안 그는 택시기사와 라디오 방송 진행자 등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재충전했다. 그의 재충전 기간엔 정치의 이합집산이 계속됐다. 1997년 DJP연대, 신한국당과 조순 민주당의 통합(한나라당 창당) 과정에서 그는 고(故) 제정구·홍성우 의원, 이철 철도공사사장, 김부겸 의원 등과 함께 한나라당을 선택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길 대한체육회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부터 장관직을 약속받고 국민회의를 선택했다.

그는 두 번의 낙선에도 불구하고 김근태·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이재오 한나라당 최고위원 등과 함께 재야세력의 4대 거두로 불렸다. 2003년 고 제정구 의원의 추모식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에게 “노무현보다 제정구가 옳았어”라고 소리쳤다. 이는 2002년 대선과정에서 노무현 후보 측에서 한나라당 내에 있는 통합추진회의 출신들을 강하게 비난한 데 대한 반박이었다. 선거가 치열했던 만큼 감정의 골도 깊었던 것.

이에 대해 일각에선 박 의원이 감정관리에 허점을 드러낸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다.

박 의원이 공교롭게도 곧이어 술집 여종업원에게 성추행하는 동영상이 공개됐다. 또 자리 배정에 불만을 드러내며 당시 이재정 평통부의장에게 맥주 세례를 퍼부어 구설수에 올랐다.

그가 이번에는 경향신문을 향해 소리치고 있다. 캠프 일각에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과 이상은씨, 처남인 김재정씨가 전국 각지에 224만㎡의 땅을 갖고 있다는 보도에 배후가 있다고 외치고 있다. 사실상 언론에 족쇄를 채우는 행위다.

10여 년 전 민주화의 열정으로 불타던 박 의원이라면 과연 언론보도에 트집을 잡았을까.

<김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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