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 도착 직전에 유엔군 당하다
차량폭탄 테러로 스페인군 6명 사망… 평화유지·정전감시 임무도 위험에 노출

레바논 일간지 ‘데일리스타’ 에 한국의 동명부대 선발대가 도착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지난 6월 24일 레바논 남부 마르자윤에서 키암으로 가는 도로에서 원격조종을 이용한 차량폭탄테러가 발생해 유엔평화유지군(UNIFIL·이하 유엔군) 소속 스페인 병사 6명이 사망했다. 그동안 레바논에서 환영받고 있다는 유엔군이 직접적인 공격을 당한 첫 번째 적대적 행위이다.
이 소식은 레바논에 있는 30개국에서 파병한 유엔군에 말할 수 없을 만큼 큰 충격을 줬다. 유엔군은 평화 유지 업무의 일환으로 이스라엘과 레바논 헤즈볼라 사이의 무력 공격을 감시하면서 큰 신임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유엔군에 대한 테러가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을까.
우선 레바논의 내부 사정을 살펴보자. 레바논 군대는 북부도시 트리폴리에 있는 난민촌 ‘나흐르 알 바리드’에서 활동하는 ‘파타 알 이슬람’이라는 무장조직을 상대하느라 무려 50여 일에 걸친 혈전을 벌이고 있었다. 스페인 부대에 대한 테러가 감행될 무렵 레바논 정부는 그 사건의 불씨를 겨우 진화하고 승리를 선언했다. 하지만 그 싸움에서 파타 알 이슬람 조직원이 전원 사망한 것 같지는 않다.
부대 내부 정보 유출 가능성 커
레바논 정부의 승리 선언 이후에도 트리폴리시와 남부 사이다시에서는 계속 총격전이 이어졌다. 파타 알 이슬람뿐만 아니라 제2, 3의 무장그룹이 이곳저곳에서 공격을 해온 것이다. 이름만 다를 뿐 그들의 목적은 하나같이 레바논 사회를 테러로 공격하는 것이다. 그들은 대부분 다른 중동국가에서 온 무장세력이며 이라크에서 단련된 테러 솜씨를 레바논에 와서 과시하고 있다. 무장세력은 주로 시리아나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등지에서 온 외국 전사들이며 레바논 정부의 공권력이 미치지 않는 팔레스타인 난민촌에 은거한다. 레바논의 일간지 ‘알 하얏트’의 편집장 하산씨는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히 물러날 조직이 아니다. 오히려 ‘나흐르 알 바리드’ 난민촌 사건 이후 더 많은 조직원이 중동 각지에서 몰려들었을 것이다. 지금 레바논은 ‘제2의 이라크’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테러를 레바논 사회 곳곳에서 할 가능성이 높다. 이젠 정말 문제가 심각해졌다”고 말한다.
나흐르 알 바리드 사건 이후 일부 조직원은 탈출했고, 팔레스타인 난민촌으로 숨어들어 다시 한 번 재기를 노린다는 소문이 돌 무렵 스페인군에 대한 차량폭탄테러가 발생한 것이다.
이 사건을 자세히 살펴보면 여러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사고 당시 스페인군의 차량은 탄약을 수송하고 있었다. 그리고 스페인 주둔지와 사고를 당한 장소는 불과 10여 분 거리밖에 안 된다. 스페인 부대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자가 테러 용의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한 것이다.
하지만 유엔군을 공격할 수 있다는 첩보는 스페인 부대의 사고가 나기 전부터 나왔다. 생포된 ‘파타 알 이슬람’ 조직원 중 몇몇이 “다음에는 유엔군을 공격할 예정이다”라고 털어놓은 것. 이 소식은 이미 일간지 1면 기사로 나왔던 이야기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이 현실화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유엔군에 대한 레바논 사람들의 인식이 나쁘지 않기 때문에 ‘설마’ 했던 것이다. 그러다 유엔군은 갑작스럽게 6명의 군인을 잃었고,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사고 직후 레바논 남부 국경도시 나쿠라에 있는 유엔군 본부에서는 즉시 적색경보를 내려 모든 군인의 외출과 이동을 막았다. 이제까지 파란 베레모나 파란 모자만 쓰고 마음대로 밖으로 다니던 병사들에게 전투용 헬멧과 방탄복을 지급했다. 사고가 난 스페인은 즉시 본국에 요청해 폭탄에도 강한 장갑차를 레바논으로 공수했다.
누구보다 병사를 잃은 스페인 부대의 슬픔이 제일 컸다. 스페인 부대 파병 초기에는 주민들과 약간 문제가 있었다. 이라크에 파병한 국가라는 이유만으로 돌을 던지는 주민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스페인 부대의 꾸준한 대민사업으로 겨우 주민들과 친해질 무렵 이 사고가 난 것이다.
유엔군은 그동안 현지 주민과 관계도 좋았고, 남부지역은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평화 유지와 정전 감시만 하던 유엔군에는 ‘테러 위협’이라는 더 힘든 짐을 지게 된 것이다. 그동안 트리폴리에서 난리가 나도 애써 무시하며 “우리는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관계만 관여한다”며 남의 일같이 여겼던 테러가 바로 그들에게 닥친 것이다.
이제 유엔군은 레바논의 내부 상황에 더욱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테러의 위협에 직접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레바논 사람들에게 환영받더라도 테러는 테러대로 당하고 말았다. 테러를 한 세력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밝혀진 바가 없다. 단지 레바논에 있는 이슬람 무장세력 중 한 조직이 했을 거라는 것이 유력하다.
한국군 파병 외신서도 관심 높아
그리고 스페인 부대원을 테러한 세력의 목적은 여러 가지 추측이 나온다. 그 중에서 ‘레바논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서’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사건 직후 레바논 정부는 비상이 걸렸다. 이번 테러로 인해 유엔군이 철수하면 그때는 레바논의 운명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유엔군은 레바논에서 유일한 평화를 지켜주는 댐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가뜩이나 어수선한 레바논 정국에 이스라엘까지 합세하면 이 나라는 바람 앞의 촛불 같은 상황이 될 것이다.
이 테러 사건으로 레바논 정부는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50여 일이나 되는 트리폴리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스페인군 테러 사건으로 레바논 정부는 압박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과정이야 어떻든 간에 이런 짜릿한 경험을 한 테러리스트들은 다시 비슷한 공격을 할 가능성이 많다.
이렇게 레바논이 예민한 치안상황에 있을 때 한국의 동명부대 파병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지난 7월 5일 동명부대 선발대 61명(본진은 7월 19일 레바논에 도착할 예정)이 레바논에 도착했는데, 현지 언론들은 스페인 부대 테러 사건 이후 파병되는 한국군에 큰 관심을 보였다. 선발대가 도착한 아침, 한국 취재진뿐 아니라 외신과 현지 언론까지 취재경쟁을 했지만 한국군은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버스로 바로 이동해 언론을 따돌렸다.
레바논에서 평화 유지 업무는 정말 중요하다. 세계가 레바논에서 등을 돌린다면 수많은 희생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유엔 회원국 30여개국에서 레바논의 평화를 위한 노력을 같이 해 유엔평화유지군을 만든 것이다. 한국군은 레바논의 평화 유지 임무를 수행하는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물론 레바논 파병은 이라크에 대한 파병하고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다만 현지의 치안 상황이 워낙 좋지 않다 보니 많이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레바논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상황에 대한 정보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수집할 수 있다면 위험에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레바논|글·사진 김영미 PD gabjini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