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지금 ‘이인전’ 재미에 푹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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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전통공연 보며 어릴 적 향수 떠올려… 수많은 어린이는 미래의 스타 꿈꿔

중국 선양(潘陽)시 시내의 이인전 전용극장 ‘유로근대무태(劉老根大舞台)’ 에서 남여 주인공이 공연을 하고 있다.

중국 선양(潘陽)시 시내의 이인전 전용극장 ‘유로근대무태(劉老根大舞台)’ 에서 남여 주인공이 공연을 하고 있다.

중국 동북지방의 전통 예능인 ‘이인전(二人轉)’이 중국 전역에서 인기를 몰면서 새로운 ‘차이나 드림’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인전은 노래와 춤, 기예 등을 함께 엮은 뒤 코믹한 요소를 가미해 관객의 폭소를 이끌어내는 무대극의 하나다. 이인전은 중국의 급속한 경제 발전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된 도시 사람들에게 시골생활의 옛 추억을 아련하게 떠올리게 만들며 인기를 끌고 있다. 또 빈곤한 농촌에서는 수많은 어린이가 ‘미래의 이인전 스타’를 목표로 예능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은 최근 중국에서 부는 이인전 바람에 대해 보도했다.

TV 특별 편성, 사투리 유행 중국 선양(潘陽)시 시내의 이인전 전용 극장 ‘유로근대무태(劉老根大舞台)’. 이곳은 매일 밤 넘쳐나는 관객으로 번창하고 있다. 남여 한 사람씩 짝을 이뤄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화려한 무대가 펼쳐진다. 객석 관객과 주고받는 유머 넘치는 추임새에 어른들도 눈을 반짝이며 빠져든다. 요란한 드럼 소리와 피리 소리가 울려퍼진 뒤 무대 위에서 콩트가 시작됐다.

“임신했다는 건 알았는데, 그럼 공자(孔子)와 장자(莊子), 노자(老子) 중에 누구의 아이일까?”
“공자입니다.” “아니야.” “그럼 장자.” “아니라니깐.”

여기서 득의양양한 표정의 한 남성이 등장해 “알았다, 노자적(老子的)이다”라고 외치자 관객들이 배꼽을 잡는다. 중국어로 ‘노자적’은 “내 아이다”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장내는 그야말로 폭소의 도가니다. 배꼽을 쥐고 웃음을 멈출 줄 모르는 중국인들의 모습은 중국어를 알아듣는 외국인들에게조차 낯설다.

이인전은 중국인이라도 남부지방 출신은 이해하기 힘든 동북 고유의 말장난이 숨어 있다. 서두의 콩트 대사도 잘 들어보면 임신한 것은 돼지다. 경극 등과는 달리 외국인 관광객의 모습은 전혀 없다.

원래 이인전은 명나라 말 중국 동북지방에서 탄생, 청나라에 걸쳐 서서히 발전해 지금에 이른 예능이다. 우리나라에서 마당놀이 등이 발전한 것과 마찬가지로 농촌 사람들이 농한기를 보내기 위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던 것이 발전한 형태다.
근대에 들어선 후, 특히 문화대혁명 당시에는 강력한 규제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농민들은 알음알음 이인전을 계속 즐겨왔다. 그러던 것이 2000년 이후 전국적인 인기몰이를 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는 동북지방에서나 즐기던 지역축제 식이었지만 대표적인 이인전 배우인 조본산(趙本山) 등이 TV 광고에 모델로 등장, 전국에 알려졌다. 조본산은 “국민적 스타”로 불릴 정도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중국 TV와 라디오에서는 연일 이인전 프로그램을 방송할 정도다. 춘절(설날)을 전후해서는 특집방송도 편성했다. 유명한 배우가 출연한 이인전은 DVD로 발매하기도 한다. 신문의 문화·예능면에 실리는 것은 물론이다. 전국적인 인기로 인해 이인전에서 쓰는 동북지방의 사투리마저 유행하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이인전 전용극장이 세워지기도 했다. 랴오닝(遼寧)성의 한 극단은 지난 한 해 동안 전국에서 100회가 넘는 공연을 진행했다. 이 극단은 올 봄 처음으로 미국 원정 공연도 나섰다.

전문가들은 이인전의 선풍적 인기를 경제 발전과 맞물려 해석한다. 생활 수준이 높아져 새로운 오락거리에 목마른 도시 생활자들의 마음을 소박한 웃음과 예능이 쓰다듬어주었다는 것. 대부분 유소년기를 시골 농촌에서 보낸 사람들의 생활을 이인전 속에서 엿본다는 것이다.

최개(崔凱) 중국 곡예가협회 부주석은 “목소리를 내어 함께 웃고 즐기며 무대에 참가했다는 느낌을 맛볼 수 있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주는 듯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도시 관중에 맞춰 연기시간을 줄이고 입장료를 3000원 정도로 싸게 책정한 것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들어 인기를 얻는 듯하다”고 덧붙였다.

성공 꿈꾸며 어린이도 특훈 “공부는 관심도 없고 별로 잘 하지 못해서요. 제가 좋아하는 것은 사람들의 박수예요. 앞으로 이인전의 스타가 돼 부자가 될 거예요. 엄마 아빠에게 커다란 집을 사드리는 게 꿈이에요.”

장강(張强·12)은 방석같이 생긴 모포를 양손으로 돌려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장강은 1년 전부터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시의 ‘대동북이인전연예훈련기지(大東北二人轉演藝訓練基地)’에서 이인전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곳은 이인전 스타를 목표로 하는 사람들을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학교다. 현재 10~27세의 사람 140명이 이인전을 배우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빈곤한 농촌 출신이다.

사실 이인전은 “도회지의 어린이는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된다”고 한다. 이인전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정신이 ‘시골’에 있기 때문이다. ‘국민배우’ 조본산은 유명해진 뒤에도 고향의 랴오닝성 톄링(鐵嶺)시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동북지방의 어린이들에게는 이인전이 미래의 희망과 연결돼 있다.

이상(李爽·14)은 지린시 교외에서 3월에 훈련기지로 왔다. 또래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것은 늦었지만 성적은 괜찮은 편이었다. 주변에서는 이번 여름에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중학교로 진학하는 것을 권했지만, 그는 “노래와 춤이 좋다”며 졸업을 기다리지 않고 예능의 길로 들어섰다.

“이인전의 스타들을 진심으로 동경하고 있어요. 언젠가는 꼭 저도 무대에 서고 싶어요.”
개혁·개방 정책에 따른 급속한 경제 발전에도 불구하고 농촌지역은 여전히 뒤처져 있다. 돈을 벌기 위해 화려한 도시지역으로 옮겨와도 얻을 수 있는 직업은 경비원이나 레스토랑 종업원, 건축현장의 육체노동자뿐이다. 농촌의 어린이들이 아무리 도시의 풍족한 생활을 바란다 해도 간단히 손에 넣지는 못한다. 때문에 이들에게 이인전의 스타는 ‘차이나 드림’의 실현인 것이다.

이인전이 처음 인기몰이를 시작한 2003년 창춘시의 훈련기지를 연 이뢰(李雷) 교장은 “동북지방의 사람들은 이인전을 정말 좋아한다”며 “이제는 생활에 깊게 밀착된 문화가 됐다”고 전했다. 그는 “농촌의 어린이들도 스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부모들도 어린이들도 필사적으로 배우려고 한다”고 말했다.

<국제부|박지희 기자 viole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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