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CEO 이어 ‘대한민국 사장’에 도전

<일러스트 김영민>
열린우리당 김혁규 의원이 6월 28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대선 출마 선언의 키워드는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사장’이었다. 김 의원은 참 이야깃거리가 많은 정치인이다. 이런 저런 화제를 불러모은 사람치고 세상을 앞서가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는 한국 최초의 ‘행정 CEO’로 통한다. 그는 1993년 경남도지사에 취임한 이래 재임기간 내내 ‘주식회사 경상남도’를 팔았다. 도지사가 직접 해외자본과 기업을 유치한 일은 김 의원 이전엔 없었다. 지방공기업의 구조조정, 행정사무의 원스톱 시스템을 도입한 사람도 그가 처음이다. 이는 지방행정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1998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경남도 지방시찰을 할 때의 일이다. 김 전 대통령은 “김 지사 같은 도지사가 두 사람만 더 있어도 우리나라가 달라질 것”이라며 칭찬했다. 당시 김 전 지사는 신한국당 소속이었다.
그가 경남도를 바꿀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머릿속에 ‘세계일류’ ‘세계 제일’이라는 관념이 박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부모 없이 자란 5형제의 맏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 쑥을 뜯어먹으면서 끼니를 때워야 했다. 부산대를 졸업한 뒤 9급 공무원이 됐던 것도 배고픈 설움을 알기 때문이다. 당시엔 변변한 직업이라는 게 공무원과 은행원뿐이었다. 그는 4년 만에 중앙부처(내무부) 7급 공무원이 됐다.
그는 1972년 단돈 1000달러를 들고 미국으로 날아갔다. 치킨집 접시닦이와 좌판상인으로 시작한 미국 생활 몇 년 만에 그는 한국인으로서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이 됐다. 그것도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로. 그는 우리나라 상인들이 사용하던 전대를 변형해서 ‘벨트 파우치’를 개발했다. 미국 언론에서는 “이상한 물건”이라면서도 올해의 상품으로 선정했다.
미국 속담에 ‘성공하길 원하면 성공한 친구를 두라’는 말이 있다. 그 의미는 성공한 친구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성공한 친구의 삶에서 성공하는 자세를 배우라는 뜻이다.
김 의원은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구석이 있었던 것 같다. 경남 합천 산골짜기가 고향인 그는 진영에 있는 한얼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재단비리에 맞서 학생데모를 주도한 ‘잘못’으로 퇴학처분을 받았다. 미국에서 얻은 첫 직장은 프라이드 치킨 가게였다. 주인은 한국 사정을 잘 아는 한국전 참전용사. 가난한 한국에서 온 젊은이를 대하는 주인의 태도는 멸시 그 자체였다고 한다. 그는 동료 직원을 꾀어 파업(스트라이크)을 했다. 그는 “미국인에게 한국인의 매운 고추맛을 보여줬다”고 회고했다.
그는 뉴욕한인회 회장을 맡은 게 인연이 되어 김영삼 정부에서 청와대 비서관, 경남도지사 등으로 일했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후 곧바로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 1995년에 노무현 대통령은 김 의원을 총리로 지명할 생각이었으나 한나라당 반대로 무산됐다.
9급공무원 출신인 김 의원의 대선 출마 그 자체도 2007년이 만든 하나의 이야깃거리다. 물론 그의 성공 여부에 따라 이야기가 아니라 신화가 될 수도 있다.
<김경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