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름버그시장, 미국 대선 ‘태풍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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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 탈당 후 거취 정가서 주목… 본인은 “절대 출마하지 않겠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오른쪽)이 지난 6월 19일 로스앤젤레스에서 공화당 탈당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오른쪽)이 지난 6월 19일 로스앤젤레스에서 공화당 탈당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미국 정가에 ‘불름버그발(發) 폭풍’이 거세다. 유력한 대선 주자로 언급되던 마이클 불름버그(65) 뉴욕 시장이 공화당을 탈당하면서부터 시작된 폭풍이다. 본인 스스로 대선 출마를 부인했는데도 미국 정계와 언론계는 그의 출마를 기정사실화했고, 민주·공화당은 이해득실을 따지는 작업에 들어갔다. 당분간 미국 정계는 불름버그 시장의 일거수 일투족에 눈을 떼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대선 출마 신호탄? 불름버그 시장은 지난 19일 공화당을 탈당해 무소속이 됐다. 뉴욕시의 정책을 추진하는 데 정당이 걸림돌이 된다는 게 이유였다. 평생 민주당원이었던 그는 2000년 시장에 당선되기 위해 공화당으로 당적을 변경했다. 그러나 2001년 시장 당선 이후에도 민주당 성향의 정책을 꾸준히 추진해왔다. 불름버그 시장은 뉴욕시에 강력한 총기 규제법을 도입했고, ‘뉴욕 시 계획(PlaNYC)’을 통해 2012년까지 택시를 하이브리드 차량으로 바꾸겠다고 천명했다. 미국 시 가운데 최초로 인체에 유해한 트랜스지방 사용 금지 결정을 내렸으며, 강력한 금연정책을 추진해 흡연문제를 환기시켰다. 공화당 내부에서는 불름버그가 무늬만 공화당원일 뿐 사실상 민주당원과 다름없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저간의 사정으로 비춰볼 때 불름버그 시장의 당적 이탈은 정체성 혼란을 벗어나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은 단순하지 않다. 2008년 대선을 목전에 둔 시점에 탈당한 것에 대해 정가에서는 대선 출마의 사전 준비작업이라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냈다. 그가 대선에 출마할 경우 진보적 견해를 가지고는 공화당원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점 때문에 탈당했다는 것이다.

최근 언론에서는 뉴욕 시를 바꿔놓은 불름버그의 ‘실용적 리더십’띄우기가 한창이었다. 시사 주간 ‘타임’은 지난 17일 ‘백악관은 누구를 원하는가’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기사를 통해 말만 늘어놓는 미국 정치권에서 실천에 앞장서는 불름버그가 주목을 받고 있다고 썼다. 공화당원이면서 부시 행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 있게 정책을 추진하는 점을 부각시켰다. 추진력의 바탕으로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불름버그라는 세계적 통신사를 일군 ‘개척가 정신’을 꼽기도 했다. 2008년 대선 주자가 될 가능성도 크다고 보도했다.

게다가 최근 불름버그 시장은 평소와 다른 행동을 보이며 미국 정치에 대한 거침없는 발언을 내놓아 관심을 모았다. 외신들에 따르면 불름버그 시장은 최근 뉴햄프셔, 캘리포니아 등 미국 구석구석을 다니고 있다. 그는 단순한 여행이라고 주장하지만 대선 출마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민심 탐방’의 성격이 짙다는 게 주변의 관측이다. 불름버그는 또 지난달 중순 캘리포니아 구글 본사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마치 대선 주자의 연설을 떠올리게 하는 지구 온난화, 총기, 이민 등 굵직한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정작 자신은 “절대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 “세상사람이 다 죽고 나만 살아 있다면 출마하겠다”며 대선 출마 가능성을 적극 부인한다. 그러나 그의 이 같은 발언과는 무관하게 미국 정계와 언론은 불름버그 시장의 대선 출마를 기정 사실화하고 ‘찬성’과 ‘반대’의 입장으로 팽팽하게 갈리는 분위기다.

[월드리포트]불름버그시장, 미국 대선 ‘태풍의 눈’

팽팽한 찬반론 불름버그 시장은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대학원을 졸업한 뒤 살로먼 브러더스 증권 중개인이 된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다. 그는 첫 직장에서 탁월한 영업력을 발휘, 초고속 승진을 하는 등 순탄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39세 되던 해 직장에서 갑작스럽게 명예퇴직을 통보받았다. 이 순간이 오늘날의 불름버그를 만든 계기가 됐다. 그는 회사에서 받은 퇴직금 1000만 달러를 투자, 증권 정보를 제공하는 불름버그 통신을 설립했다. 불름버그 통신은 월가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결국 세계적인 통신사로 성장했다. 정치 영역에서도 그의 승부사적 기질은 통했다.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 시장이 건강을 이유로 물러난 자리에 들어간 불름버그 시장은 뉴욕 시의 악명 높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민원 시스템도 재구축하는 등 강도 높은 개혁에 착수했다. 개혁이 성공을 거두면서 불름버그 시장은 4년 후 치른 선거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재선에 성공했다.

불름버그 시장이 대선에 출마하는 것에 대해 찬성하는 측은 그의 ‘실용주의’와 ‘추진력’을 높이 평가했다. 평범한 샐러리맨이 거대 통신사를 일궈낸 배경에는 이 같은 능력이 있었고, 기업가(CEO) 성향을 정치에도 그대로 반영해 좋은 결과를 내놓았다는 것이다. 정당 정치에 휘말려 말싸움에 시간을 낭비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며 기존 정치인들이 갖고 있는 ‘엄숙주의’를 넘어섰다는 점도 높이 샀다. 지금까지 무소속 후보가 한 차례도 대통령에 당선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 불름버그 시장의 당선 가능성을 낮게 보는 일부 견해에 대해서도 “미국은 무소속 대통령을 원하는 쪽으로 가고 있으며, 단지 ‘시기가 언제냐’는 문제가 남았을 뿐”(라리 사바토 버지니아대 정치학교 교수)이라고 반박했다. 재산이 포브스 집계 55억 달러로 정치자금을 충분히 쓸 수 있다는 점도 유리하다고 전했다.

반면 반대하는 측은 불름버그가 민주당의 스포일러(방해 입후보자)가 될 가능성이 크고, 정치 철학은 변함이 없는데도 시장이 되기 위해 공화당과 ‘정략 결혼’한 것에 대한 비판을 뛰어넘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대선이 돈으로 망가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밥 허버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는 “그가 대선후보에 나설 경우 ‘불름버그를 대통령으로’라는 5억 달러짜리 대선 광고가 전국 TV에 밤낮으로 등장할 것”이라고 비꼬았다. 아울러 2000년 미국 대선에서 소비자운동가 랠프 네이더가 녹색당 소속으로 대선에 나서 민주당 후보 표를 갉아 먹어 공화당 소속인 조지 부시 대통령이 백악관으로 입성했듯이 불름버그 시장도 민주당 후보에게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민주당에서는 불름버그 시장의 대선 출마가 ‘악재’인 것으로 자체 판단하고 있다. 공화당 역시 공화당 소속이었던 불름버그 시장이 대선에 출마할 경우 공화당 표를 빨아들일 가능성에 대한 분석에 들어갔다.

출마 전략과 당선 가능성 정치권에서는 그가 대선 출마 여부를 결정할 시기가 빨라야 내년 2월이 될 것이라고 추정한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선 후보가 결정되고 무소속 후보에 대한 여론의 기대를 가늠한 뒤 출마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뉴욕 타임스는 당선 가능성이 크지 않기 때문에 불름버그 시장이 일단 대선에 입후보한 뒤 1~2개 큰 주(州)에 선거인단을 확보한 뒤 공유(共有)를 시도하는 ‘킹 메이커’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무소속 후보들이 권력을 공유하려는 시도가 있었던 전례를 볼 때 불름버그의 이 같은 선택지가 상당히 유력할 것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그러나 당선 가능성을 언급하는 언론 보도도 나오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무소속 후보를 지지하는 정치운동 단체 ‘유니티 08’이 그를 지지할 것이며 미국인들의 성향이 점차 무소속에 대해 우호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보도했다. 당분간 불름버그의 일거수 일투족이 미국 정계에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국제부|김정선 기자 kjs0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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