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환 10주년 맞는 동방의 진주, 중화인민공화국 속의 자본주의 체제의 앞날은

홍콩 증권거래소. 홍콩의주가를 대표하는 항셍지수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어 주식거래인들의 발걸음이 가볍다.
1997년 7월 1일 0시 3분, 장쩌민 당시 중국 국가주석은 홍콩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홍콩 주권 반환식 행사에서 “중국은 홍콩에 대한 주권을 회복했다”며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가 정식 출범했다”고 선언했다. 이어 0시 40분, 찰스 영국 황태자와 크리스 패튼 최후의 홍콩 총독 등 영국 측 귀빈들을 태운 황실 전용선 브리태니아호가 홍콩의 부두인 퀸스 피어를 출발했다. 156년 동안 영국 식민지였던 홍콩이 중국 영토로 넘어간 것이다.
홍콩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향후 50년 동안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일국양제’라는 전대미문의 새로운 체제다. 7월 1일로 10주년이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주석 취임 이후 처음으로 6월 29일 홍콩을 찾아가 주권 반환 10주년을 자축하는 성대한 행사를 벌였다. 홍콩은 중국의 일부인가, 아니면 자신의 특성을 최대한 살려 ‘동방의 진주’로 거듭날 것인가. 지난 6월 12일부터 15일까지 기자는 직접 홍콩을 찾았다.
#1 중국 광둥성 선전. 홍콩과는 ‘선전허’라는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중국 최남단의 도시다. 6월 13일 오전 11시쯤 선전 지하철 뤄후역에서 ‘출국 수속’을 밟고 다시 홍콩 ‘입국 수속’을 했다. 40분 정도 걸렸다. 강 건너편 홍콩 지하철 역이름은 로우역. 한자로는 같은 글자이지만 홍콩 쪽은 광둥어 발음이고, 선전 쪽은 중국어 표준발음이다. 홍콩 로우역에서 중국 화폐인 위안화를 꺼냈더니 받지 않는다. 홍콩 달러만 받는단다. 하는 수 없이 현금 자동지급기 앞에 줄을 서서 신용카드로 홍콩 달러를 대출받아야 했다.
#2 홍콩 섬의 완차이. 과거 베트남 전쟁 때는 물론이고 미군들이 홍콩에 들어오면 반드시 치는 유흥가다. 일부 홍콩 교민은‘홍콩 간다’는 속어의 어원이 이곳 유흥가에서 비롯한 것이라며 ‘유권해석’을 내리기도 했다. 홍콩에서 묵었던 완차이의 YMCA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면서 위안화를 꺼냈더니 프런트 데스크는 1홍콩 달러에 95위안이라고 했다. 1위안을 공정환율인 1홍콩 달러에도 쳐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홍콩 시내 일부 환전상들이 ‘1000위안을 1022홍콩 달러로 바꿔준다’는 안내판을 걸어놓기는 했으나 위안화 강세를 홍콩에서 실감하기는 어려웠다.
홍콩은 경제지표 등 외관으로 보면 지난 10년 동안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1997년 주권 반환 직전까지 총 30만 명의 시민들이 공산당이 무섭다며 캐나다·호주·미국 등으로 도망갔다. 그러나 주권 반환 10년 만에 홍콩에는 다시 30만 명이 새로 들어왔다. 떠났던 상당수의 홍콩 사람이 중국의 초고속성장으로 사업기회가 생기자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자동차 부품상을 하는 테니 양(50)은 반환 직전만 해도 고급 주택에다 본인은 물론 아내까지 벤츠차를 굴리던 부유층이었다. 그는 반환을 앞두고 캐나다 벤쿠버로 근거지를 옮겼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판단이 잘못됐음을 실감했다. 캐나다의 돈벌이는 생각보다 신통치 않았고 2004년부터 홍콩 경제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다시 홍콩을 찾았으나 이미 자신의 주택은 처분했을 때보다 10배 이상 올라 있었다. 주변 친구들의 도움으로 조그만 사업을 시작하기는 했지만, 그는 캐나다로 성급하게 떠났던 자신의 판단을 줄곧 후회하고 있다. 일부 새로운 이민은 콧대 높은 홍콩 여성들을 아내로 맞지 못한 홍콩 청년들의 배필로 홍콩에 온 대륙 출신 여성들이다.
빠져나간 30만 명 중 상당수 귀향
2004년부터 연간 7% 이상 경세 성장을 하고 있는 홍콩의 경쟁력은 ‘자유’와 ‘법치’, 그리고 질 높은 행정 서비스, 효율 높은 인프라 등이다. 홍콩에서 활동 중인 한 금융계 인사는 올해 초 세무서에서 연말정산 과정에 착오가 있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는 당장 세무서로 달려가겠다고 말했으나 그 공무원은 “서로 바쁜데, 오실 필요가 있느냐”며 “관련 서류를 팩스로 보내달라”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금융계 인사들은 편리함이 주는 효율성을 가장 높이 꼽았다. 홍콩 섬에 있는 센트럴 지구는 HSBC·씨티은행·중국은행 등 세계적인 은행은 물론 증권거래소 등 대다수 금융기관이 몰려 있는 홍콩의 금싸라기 땅이다. 이곳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 10군데 이상 다른 곳을 찾아가 일을 볼 수 있다. 건물끼리 회랑으로 이어져 있어 비를 맞지 않고도 찾아갈 수 있도록 근접성이 뛰어나다. 지하철을 타면 20분 만에 첵랍콕 공항에 도착한다. 첵랍콕 공항은 중국 도시 40여 개를 비롯해 전 세계 150여 개 도시와 연결되어 있어 금융계 인사들은 간편하게 해외나 중국 출장을 다녀올 수 있다. 중국 남부 윈난성의 성도 쿤밍에서 나오는 생화가 24시간 만에 일본 도쿄 화훼도매시장으로 갈 수 있는 것도 첵랍콕 공항의 효율성 덕분이다.
지난 10년 동안 홍콩은 중국과의 경제 통합을 갈수록 가속화하고 있다. 지난 6월 15일 오후 5시쯤, 이른 저녁식사를 하려고 광둥성 선전의 한 고급 아파트 단지 내 식당에 들렀다. 때마침 50대 중년 아저씨가 30대 여성과 다정하게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부녀라고 하기에는 맥줏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너무 다정해 보였다. 선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홍콩 기업인과 중국 현지처의 만남이었다. 선전과 홍콩이 하나의 경제권 내에 들면서 출퇴근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홍콩에서 40분이면 선전에 갈 수 있고, 선전에서는 다시 50분이면 광둥성 성도인 광저우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 은행 밀집 금융업무 효율성
선전에서 캐피털 펀드를 운영하는 헨리 후(45)는 날마다 선전과 홍콩을 출퇴근하고 있다. 물론 일이 있으면 선전의 아파트에 머물기도 하지만, 웬만하면 가족이 있는 홍콩의 집으로 달려간다. 이성만 우리은행 선전지점장은 “광둥성은 지금과 같은 추세로 경제성장을 할 경우 15년 이면 홍콩 경제를 추월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코트라 홍콩무역관 박해열 과장은 “홍콩은 지난 10년 동안 중국 대도시들과 협력 및 건전한 경쟁을 통해 아시아 금융위기와 사스 위기를 슬기롭게 이겨내고 세계 금융·무역·물류의 중심지로, ‘동양의 진주’로 새로운 도약을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경제 통합과 달리 중국과의 정치적 통합은 아직도 갈길이 멀다. 상당수의 홍콩 사람은 중국인이기를 심정적으로 거부하면서 ‘홍콩 사람’임을 강조한다. 최근 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40%가 홍콩 사람이라고 답변했다. 그나마 지난해의 50%보다는 낮은 수치다. 중국의 경제적·국제적 위상이 높아진 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4월부터 불거진 ‘퀸스 피어’ 철거 논란도 눈여겨볼 만한 정치적 현안이다. 홍콩에 주둔하고 있는 1만 명의 중국 인민해방군을 총괄지휘하는 해방군 홍콩주둔 사령부 건물에서 불과 100m 떨어진 완차이의 부두 퀸스 피어는 영국 총독이 부임할 때마다 대대적인 상륙 행사가 벌어진 역사적인 곳이다. 특구 정부는 지난해 말 식민지 잔재인 이곳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대해 홍콩 시민단체들은 해방군 해군기지로 이용하려는 음모라고 주장하면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7월 1일 제3기 행정부를 출범한 도널드 창 행정수반은 향후 임기 5년 안에 행정수반을 직선으로 선출하고, 현재 간선으로 뽑고 있는 입법위원 절반을 직선으로 뽑겠다는 원칙을 천명하겠다고 다짐하지만, 중국 지도부의 미지근한 반응으로 미뤄볼 때 상당기간 추진이 어려울 전망이다.
홍콩의 야당인 민주당은 2012년 행정 장관 직선과 삼권분립을 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 지도부는 영국의 음모가 숨어 있다고 보고 있다. 식민지 시절 민주화에 대해 전혀 관심도 갖지 않던 영국이 주권 반환을 눈앞에 두고 민주화 조치를 단행한 것은 주권을 넘겨주면서 분란의 씨앗을 남기려는 고도의 식민지 통치술이라는 지적이다. 인도와 파키스탄, 카슈미르 분쟁 등이 지금까지 분란을 겪는 것도 바로 영국 작품이라는 시각이다. 따라서 중국은 최대한 민주화 제도 시행을 늦추는 한편 서방식의 삼권분립이 아니라, 정치적 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정치개혁을 유도할 것으로 홍콩의 정치 분석가들은 전망했다. 홍콩의 한 외교 소식통은 “중국 정부는 홍콩 사람들의 정체성이나 민주화 문제가 앞으로 10년이나 20년이 지나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중국정부 “우리는 한가족” 인식 유도
중국 중앙정부는 홍콩과의 정치적 통합을 위해 차분하고도 치밀하게 접근하고 있다. 서두르지 않고 장기적으로 접근하겠다는 전략이다. 예컨데, 홍콩의 유치원을 비롯해 초·중·고교마다 아침이면 국기 게양식을 한다. 게양식 행사때마다 ‘의용군 행진곡’이라는 중국 국가를 듣는다. 이밖에 완차이에 중국 교육센터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중국의 상황을 알려준다. 학생들의 수학여행을 베이징 등으로 유도해 중국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알려주면서 ‘우리는 한가족’이라는 인식을 갖게 한다.
홍콩이 경제적 통합의 성공을 토대로 정치적 융합을 이룰지는 중국 중앙정부의 의지가 크게 작용할 전망이다. 홍콩 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선 것도 중국 당국이 2003년부터 중국 관광객의 홍콩 방문을 허용한데다 2004년 1월 1일부터 홍콩산 제품에 대해 무관세를 적용하면서 상승세를 탄 것이다. 중국은 대만과의 통일을 위해서도 홍콩에서 실시하고 있는 일국양제가 성공을 해야 하는 만큼 홍콩 경제의 미래는 당분간 밝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정치적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것이 현지 분위기다.
인터뷰 | 석동연 홍콩 주재 총영사
“중국 대도시와의 경쟁서 뒤지지 않을 것”
![[월드리포트]경제미래 ‘밝음’홍콩 정치미래 ‘흐림’](https://img.khan.co.kr/newsmaker/732/wor2-2.jpg)
석동연 홍콩 주재 총영사(대사)는 “홍콩은 다양한 장점을 두루 갖추고 있는 만큼 당분간은 상하이 등 다른 중국 대도시와 경쟁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석 총영사는 주중 대사관 정무공사와 본부대사를 거쳐 지난 5월 현직에 부임했다. 지난 13일 오후 홍콩 총영사관에서 석 총영사를 만났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우리나라 교민 현황은.
“현재 8500명으로 추산한다. 원래 1만 명을 넘었으나 1997년 닥친 아시아 금융위기로 줄었다. 대부분 주재원과 자영업자로 구성되어 있다.”
- 홍콩 사람들의 한국에 대한 인상은.
“2005년 방영한 TV 드라마 ‘대장금’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에 대한 이미지는 좋은 편이다. 다만 대중예술에 국한한 ‘한류’를 고급예술까지 확산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향후 홍콩과 중국의 관계는.
“홍콩의 6만 개 기업이 중국에 진출해 중국인 근로자 1100만 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 홍콩은 중국과 손을 잡고 가야 한다. 홍콩 경제는 1997년 주권 반환 직후 금융위기가 찾아왔고, 2003년 4월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발생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주권 반환을 앞두고 홍콩을 떠났던 사람들이 지금 되돌아오고 있다. 캐나다 총영사 말로는 현재 캐나다 시민권 소지자가 홍콩에 26만5000명이 있다고 말했다. 홍콩의 비즈니스 환경이 좋아지면서 많이 돌아왔다.”
- 홍콩의 장점은.
“홍콩은 세계 4대 금융 중심지의 하나다. 중국이 하루 아침에 따라올 수는 없다. 컨테이너 처리 물동량은 싱가포르와 상하이가 홍콩을 추월했다. 곧 선전도 추월할 것이다. 규모로 봐서 어쩔 수 없다. 그러나 홍콩의 가장 큰 장점은 규제가 없다는 것이다. 헤리티지 재단은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경제(freeest economy)라고 홍콩을 평가했다. 비즈니스 환경도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두루 갖췄다. 중국 상하이가 소프트웨어를 갖추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 중국 정부가 홍콩 발전에 적극적인 도움을 줄 것으로 보는가.
“당연하다. 홍콩은 중국 자금의 젓줄이다. 효자다. 중국 경제에 큰 도움이 된다. 중국 정부가 굳이 홍콩을 견제할 이유가 없다. 마카오가 라스베이거스를 앞지른 것은 중국 정부의 결정으로 도박장 독점 조치를 풀었기 때문이다. 미국 자본들이 대거 마카오에 들어온 것이다. 상하이가 홍콩을 능가할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홍콩만큼 영어를 구사하는 인력을 확보하기 쉽지 않다.”
홍콩의 현황 및 역사
![]() 중국 광둥성 선전과 홍콩의 경계선. 홍콩은 면적이 서울의 1.8배인 1104㎢에 이른다. 홍콩 섬(81㎢)과 주룽 반도(47㎢), 신계지와 섬(976㎢)으로 이루어져 있다. 꾸준한 간척 사업을 통해 1887년 이후 67㎢의 땅이 새로 생겨났다. 인구는 지난해 말 현재 699만 명으로 95%가 중국계다. 우리 교민은 8580명이다. 인구밀도는 ㎢당 6420명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1인당 국민소득은 2만8000달러다. 1842년 아편전쟁이 끝난 뒤 맺은 난징조약에서 청나라가 홍콩 섬을 영국에 영구적으로 넘겨주었다. 애로우호 사건 이후 1860년 맺은 베이징 조약에서 주룽 반도를 영구 할양했다. 1898년 제2차 베이징 조약으로 신계지와 235개 섬을 영국에 1999년 조차 조건으로 넘겨주었다. 당초 영국은 신계지와 섬만 중국에 넘겨주고 영구 할양받은 홍콩 섬과 주룽 반도는 계속 유지할 계획이었으나 중국의 도움 없이는 유지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포기하고 1997년 7월 1일 중국에 주권을 넘겨주었다. 현재 홍콩은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라는 이름으로 중국과 ‘한 나라, 두 체제’인 일국양제 형태를 이루고 있다. ‘항인치항’이라고 해서 외교와 국방 문제를 제외한 모든 문제는 홍콩 사람이 홍콩을 다스리게 했다. ![]() 홍콩의 금융가. 중국은행 홍콩본부 건물이 우뚝 솟아 있다. ![]() 홍콩 주둔 중국 인민해방군 사령부 건물. ![]() 홍콩대학 중앙도서관 옆에 있는 민주의 벽. 대자보에는 홍콩의 민주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담겨 있다. |
홍인표〈경향신문 베이징 특파원〉 iphong@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