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을 중시, ‘의리’로 보답
![[1000자 인물비평]홍사덕 박근혜 후보 경선대책위원장](https://img.khan.co.kr/newsmaker/730/1000.jpg)
인간사에서 인연은 우연이든, 인위적이든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그 의미를 얼마나, 어떻게 생산적으로 만드느냐에 따라 인연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홍사덕 전 의원은 그런 의미에서 ‘복받은’ 사람이다.
홍 전 의원은 경북 영주에서 태어났다. 얼마나 가난했는지 배고픔을 물로 달래야 했을 정도였다. 그의 운명은 서울사대부고에 입학하면서 달라졌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동기동창이 되는 행운을 얻은 것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지금껏 돈독하게 이어지고 있음은 물론 지금도 이건희 회장의 근황을 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친구로 알려져 있다. 서울대 외교학과와 해병대 의장대를 거쳐 삼성그룹에 취직했던 홍 전 의원이 기자(중앙일보)로 새출발하는 데도 이건희 회장의 조언이 있었다고 한다. 이 회장이 “너같이 전도가 양양하고 똑똑한 친구가 왜 삼성에 있느냐”며 기자직을 권유했다고 한다.
물론 그가 한 명의 ‘성공’한 친구 때문에 ‘성공’(5선 국회의원·국회부의장·정무1장관)한 것은 아니다. 그가 결혼식을 올릴 때 얼마나 많은 친구가 하객으로 참석했는지 친구들과의 사진을 두세 차례 나눠서 찍어야 했다. 그만큼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면모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는 일명 ‘이민우 구상’(1986년 당시 이민우 신민당 총재가 전두환 대통령을 만난 뒤 전두환 정권이 7개항의 민주화 조치를 선행하면 내각제를 받을 수 있다는 구상) 때 그의 처신.
신민당의 실질적 대주주인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민우씨를 ‘권력찬탈자와 내통한 사람’으로 내몰았다. 이민우씨는 충남 온양으로 도피해야 하는 지경에 빠졌다. 그때 이민우씨를 지지했던 일명 ‘왕당파 의원’들은 하나같이 이민우씨에게 등을 돌렸다. 당시 신민당 대변인이던 홍 전 의원만이 유일하게 ‘이민우 구상’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비록 정치적 의견은 달랐지만 소신 있고 의리를 지키는 젊은 의원을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나쁘게 보지 않았다. 그는 김영삼 정권 때 정무1장관으로 등용됐다. 또 1992년 대선 때 3선의원인데도 민주당 선대위 대변인을 맡는 등 대의를 위해 ‘권위’를 내세우지 않았다.
대변인 시절의 그의 논평은 다섯 줄을 넘는 법이 없었다. 그만큼 촌철살인의 어휘력을 구사할 줄 아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또 워낙 정확하게 브리핑을 했다. 기자들이 발표내용을 그대로 받아적으면 기사가 될 정도였다. 이 때문에 기자들은 그를 ‘홍퓨터’(홍사덕+컴퓨터)라고 불렀다.
탄핵주역의 1인이었던 그가 박근혜 경선캠프 수장(경선대책위원장)으로 임명되어 정치권에 다시 돌아왔다. 그는 박 전 대표를 돕는 이유에 대해 “박근혜 전 대표는 믿을 수 있는 지도자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탄핵의 주역’이란 누명을 쓰고 박 전 대표에게 공천조차 받지 못했던 홍 전 의원이 경선대책위원장을 맡은 것에 의리를 지켜야 할 또 다른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ay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