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중국, ‘국가의 미래 좌우’ 인구억제 정책에 온 힘 쏟아
미국, 프랑스, 일본 등 선진국은 물론 우리나라 역시 노령화·저출산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아시아 국가에서는 인구 감소보다 오히려 인구 증가를 걱정하고 있다. ‘다자다복(多子多福)’의 전통이 아직까지도 살아 있는 아시아 농촌의 실태는 심각한 편이다. 특히 중국이나 파키스탄은 인구억제정책의 살아 있는 전쟁터가 되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는 정부 직속의 관련 조직이 국민을 향해 피임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피임기구를 나누어주거나 불임시술을 권하고 있다. 국가가 권장하는 ‘가족계획’의 성패가 국가의 미래를 좌우한다는 신념 아래 인구 억제에 적극적인 이들 국가의 실태를 아사히신문이 최근 자세히 보도했다.
파키스탄 “낙태는 절대 안 됩니다. 잘 낳아 기르세요.”
파키스탄 북서부의 토피주. 보리와 사탕수수밭이 펼쳐진 인구 6만 명의 작은 농촌 마을이다. 이 지역의 유일한 여성전용 진료소에서 보건의 타슬림(여·40)이 임신 2개월의 한 여성(30)에게 당부한 말이다.
이 여성은 전기설비 기술자인 남편(40)과 사이에 10살, 7살, 5살의 세 아이를 두고 있다. 수년 전부터 타슬림의 조언으로 자궁 내 피임기구를 사용해왔지만 이물감과 위화감이 마음에 들지 않아 3개월 전 떼어버렸다.
타슬림은 대신 경구피임약을 주었지만 이 여성은 복용하지 않았다. 이 여성은 “이렇게 빨리 임신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남편의 월수입은 4000루피(약 7만 원)에 불과해 결국 낙태를 결심했다. 그러나 파키스탄의 법률로는 임신부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낙태수술이 금지돼 있다. 곤혹스런 표정을 짓던 이 여성에게 타슬림은 “그렇게도 주의를 줬는데”라며 영양보조식품을 건넸다. 그는 “피임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아직도 널리 알려지지 않고 있다”며 한숨을 지었다.
정확한 집계마저 불가능해 추정되는 인구만 약 1억5600만 명에 이르는 파키스탄. 인구 증가율은 연 1.86%로 40년 후에는 인구가 현재의 2배로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정부가 실시하는 인구억제정책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여성 건강 도우미(lady health worker)’라고 불리는 여성 보건의다. 파키스탄 전역에서 10만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여성의 상담 역할은 물론 희망자에게는 피임기구를 제공한다. 남자는 곧 노동력으로 인식되고, “아이는 신이 주시는 것”이라는 이슬람의 가르침 때문에 파키스탄에서는 1970년대까지 자녀가 10명 이상 있는 가정도 많았다.
보수적인 농촌지역에서 성(性)과 관련된 이야기는 터부시된다. 여성은 친족 이외의 남성에게 얼굴을 보여서도 안 된다. 외출하는 여성도 좀처럼 볼 수 없다. 이런 분위기에서 타슬림은 14년 전부터 집집마다 방문, 육아에 찌든 여성들에게 피임기구의 사용을 설득했다. 전기검침원을 가장해 접근하기도 하고 문전박대를 당한 적도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한 달 평균 200명 이상의 여성이 상담을 요청하고 있다.
토피 인근 말단의 진료소에서도 지난 해부터 자궁 내 피임기구를 시술하기 시작했다. 상담자는 한 달 평균 20명 내외로 늘어났다. 여성 보건의인 파르하트(35)는 “남편이 하라는 대로만 움직였던 여성의 의식이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NGO단체인 ‘그린스타’의 리아즈 카짐은 “남성에게는 콘돔의 사용을 권유하는 것만으도 반발을 산다”며 “여성을 설득하는 편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파키스탄 인구복지부에 따르면 피임을 하고 있는 기혼 여성은 전국적으로 36%에 이른다. 20년 전에 비하면 4배 늘어난 숫자다. 여성이 평생 출산하는 자녀 수를 의미하는 합계출산율도 평균 4명으로 2명이 줄었다. 정부는 2020년까지 합계출산율을 2.1명으로 낮춘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국가의 관리에는 한계도 있다. 독자적인 관습법과 자치가 인정되는 아프가니스탄 국경 지역에서는 “신의 뜻에 거스르는 것”이라며 피임을 하지 않는 주민이 많다.
중국 ‘소자화 정책’이 실시된 이래 30년이 흘렀다. 그 동안 중국 여성이 평생 낳는 자녀 수는 평균 5.8명에서 1.8명으로 줄었다.
출산 억제를 위한 ‘주력부대’는 국가인구계획출산위원회가 전국에 약 4만개소 이상 설치한 서비스센터다. 직원 52만 명과 자원봉사자가 피임의 지도부터 낙태·불임수술까지 무료로 실시하고 있다. 현재 중국 여성의 피임률은 90%에 이른다.
그러나 너무 지나친 경우도 있다. 산둥성 린수시에서는 2005년 2월, 목표달성률이 낮아 당황한 계획출산 담당자가 몇몇 여성을 강제로 낙태시킨 사건이 일어났다. 홍콩의 인권민주운동정보센터 등 인권단체에 따르면 둘째 아이를 임신한 여성의 태아를 출산 예정일을 불과 이틀 앞두고 억지로 사산시켜버렸다. 이런 사건이 20건 이상 일어났다고 한다.
산둥성의 인권활동가 진광성(35)는 2005년 여름, 외국 언론에 강제 낙태의 실태를 고발하려 했으나 도리어 공안당국에 체포됐다. 변호인단에 따르면 그는 변호사와 미국대사관 직원을 만나기 위해 베이징을 방문했으나 교통질서교란죄 등의 명목으로 공안에 체포당했다. 아내도 집에서 연금돼 있다. 중국 정부는 이 같은 사실을 숨기고 있으며, 관련된 해외 보도에 대한 인터넷 접근도 차단하고 있다.
낙태문제는 중국과 미국의 관계에도 미묘한 흐름을 만들고 있다. 낙태를 반대하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2001년 취임 당시 “중절을 실시, 지원을 하고 있는 단체에는 미 정부의 자금을 지원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미국은 유엔인구기금이 중국의 소자화정책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는 이유로 기금 지불을 중단한 상태다.
그러나 지난 1월 중국국가인구발전전략연구소는 “계획 출산에 대해 국제사회의 객관적인 평가를 받아 넓은 이해와 지지를 얻고 있다”고 강조했다.
13억 명을 포함한 중국의 인구정책은 농촌 곳곳에서 피임을 설득하는 지도활동과 국제사회에의 여론 공작이라는 양면을 갖고 있다.
<국제부|박지희 기자 violet@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