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화약고 레바논을 가다(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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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난민촌 ‘새로운 불씨’
외국 무자헤딘 세력 들어와 근거지로…한국군 파병 주둔지에도 난민촌 있어

한 난민촌 부근에서 폭발과 함께 연기가 솟구치고 있다.

한 난민촌 부근에서 폭발과 함께 연기가 솟구치고 있다.

분쟁지역 취재 전문 프리랜서인 김영미 PD가 레바논 현지에서 보내온 ‘레바논 리포트’를 3회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현재 레바논은 정부군과 반군의 교전이 격화되면서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국방부는 유엔평화유지군(UNIFIL)의 요청에 따라 레바논 평화유지군 파병을 결정, 7월 초에 선발대를, 7월 중순에 본대를 현지에 보낼 예정이다.

앞으로 김영미 PD는 한국군이 주둔하게 될 레바논 아바시아 지역에서 한국군의 동향과 레바논 교전상황를 취재할 것이다. 김영미 PD의 작품으로 SBS 특집다큐 ‘동티모르의 푸른 천사’(2000), KBS 일요스페셜 ‘부르카를 벗는 여인들’(2002), MBC 특집 다큐 ‘이라크 파병, 그 머나먼 길’(2004) ‘자이툰 그 100일간의 기록’(2004) 등이 있다. <편집자 주>

5월 29일 현지 시간 아침 9시 40분, 베이루트 국제공항에 4명의 한국군이 평화유지군 차림으로 도착했다. 그들은 유엔 직원의 인솔을 받으면서 버스를 타고, 유엔평화유지군(UNIFIL) 본부가 있는 남쪽 도시 나쿠라로 떠났다. 그들을 마중 나온 유엔 직원은 “이들은 앞으로 7월 중순 본대가 도착할 때까지 준비 작업을 하고 주둔지 건설 업무를 감독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UNIFIL 서부 전선을 담당하고 있는 이탈리아의 마리지오 피오라반니 사령관은 필자에게 “유엔사무총장의 나라에서 온 한국군이 이곳의 평화에 많은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환영의 메시지를 전했다. 레바논의 ‘데일리스타’ 편집장 한나 안바르는 “한국군이 레바논에 파병되는 것은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새로운 친구를 맞이하는 기분이다. 하지만 이렇게 어수선한 레바논에서 그들이 적응하는 데 쉽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한나 안바르가 ‘어수선하다’고 표현한 것은 최근 레바논의 치안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군 선발대가 도착하기 전날 밤 베이루트 국제공항은 어수선하기만 했다. 공항을 지키던 레바논 군의 발포로 두 명의 시민이 사망하고 한 명이 부상한 것이다. 군의 검문에 불응하고 달아나는 택시에 정부군이 총격을 가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왜 달아나려고 했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최근 좋지 않은 치안 탓에 정부군이 많이 예민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지난 해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전쟁 이후 레바논은 유엔의 중재로 한동안 잠잠했다. 하지만 최근 레바논의 치안 상황은 악화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레바논의 영원한 숙적 이스라엘이 아닌 새로운 적이 레바논에 나타난 것이다.

예민해진 정부군 공항서 총기 난사

나흐르 알 바리드 난민촌에서 베다위 난민촌으로 피난온 사람들이 임시로 생활하고 있는 카우캅 학교의 난민들.

나흐르 알 바리드 난민촌에서 베다위 난민촌으로 피난온 사람들이 임시로 생활하고 있는 카우캅 학교의 난민들.

그들의 이름은 ‘파타 알 이슬람’이다. 이들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은행 강도사건 때문이다. 지난 5월 19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북쪽으로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에 트리폴리라는 아름다운 항구마을인 ‘아미운’에 은행 강도가 들었다. 은행 강도가 12만5000달러를 챙기는 동안 경찰과 대치상태에 이르렀다. 강도가 지원군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단순 강도가 아닌 테러를 계획하고 레바논에 잠입한 파타 알 이슬람이라는 테러조직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들은 경찰을 제치고 한 아파트로 잠입했다. 사태가 이쯤 되니 레바논 정부군이 출동했다. 시내 한복판에서 벌인 총격전 끝에 레바논 정부군은 10명이나 사망했다. 이어서 레바논 군대는 파타 알 이슬람의 본거지로 추정되는 나흐르 알 바리드 난민촌으로 진격했다. 이 사건으로 민간인과 레바논 군인, 테러용의자 등 하루에 70여 명이 사망하고 300여 명이 부상했다. 삽시간에 난민촌은 불바다가 되었고 거리는 총격으로 얼룩졌다.

레바논 군인이 이스라엘이 아닌 자기네 형제 같은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싹쓸이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파타 알 이슬람에 장소만 제공했을 뿐이다. 레바논 정부의 공식발표에 따르면 파타 알 이슬람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아니라 시리아,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등 외국에서 흘러온 무자헤딘(mujahidin, 아랍어로 ‘성스러운 이슬람 전사’라는 의미. 보통 이슬람 국가의 반정부 단체나 무장 게릴라 조직이 자신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중간에 낀 팔레스타인들 억울함 호소

불과 3~4개월 전 파타 알 이슬람은 나흐르 알 바리드 난민촌 안에 사무실을 차렸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그들이 무자헤딘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난민촌 주민인 아부 와파씨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도와주려고 온 사람들인 줄 알고 따뜻하게 대접했다. 그런데 수가 점점 불어났다. 얼마 전에 그들이 파타 알 이슬람이라는 깃발을 내걸었을 때 조금 이상하다 싶었는데, 우리 동네에서 난리가 난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16명이나 되는 식구를 이끌고 또 다른 난민촌인 베다위 캠프로 피난을 갔다. 아부 아파 외에도 3만여 명이나 되는 피난민이 가뜩이나 좁은 난민촌에 와서 포화상태가 됐다. 이들의 비참함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 물이나 식량 등 모든 것이 모자라고, 살림살이는 피난올 때 가져온 가방 하나에 들어 있는 것이 전부다.

처음 파타 알 이슬람과 정부군이 교전을 벌인 아파트 사고 현장. 이때 정부군 10명이 사망하고, 파타 알 이슬람 측에서 30여 명 사망했다.

처음 파타 알 이슬람과 정부군이 교전을 벌인 아파트 사고 현장. 이때 정부군 10명이 사망하고, 파타 알 이슬람 측에서 30여 명 사망했다.

팔레스타인의 억울함은 갈수록 증폭하고 있다. 그들은 이번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아무도 이들의 억울함을 대변해주지 않는다. 다른 나라 뉴스에서는 마치 팔레스타인 난민과 레바논 정부가 싸우는 것처럼 보도하고 있다.

아직도 이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나흐르 알 바리드 난민촌은 지금 200여 명에 이르는 파타 알 이슬람 무자헤딘이 진을 치고 있다. 800여 명의 팔레스타인 주민은 이곳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있다. 마을은 거대한 흉물로 변했고, 마을 입구에는 미국에서 공수받은 각종 무기로 무장한 레바논군이 에워싸고 있다.

레바논 전체에 팔레스타인 난민촌은 12개나 있다. 1967년 3차 중동전쟁 이후 레바논 정부는 피난 온 팔레스타인 주민에게 일정구역을 정해주고 그곳에서 기거하게 했다. 레바논 주민의 10%가량이 이들 난민이다.

우리가 레바논 상황을 잘 살펴봐야 하는 이유는 한국군이 주둔할 아바시아(abbasiyah)라는 지역에 ‘샤브리하’와 ‘라쉬디에’라는 팔레스타인 난민촌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난민촌에 있는 팔레스타인들이 레바논 정부에 대한 반감이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받았던 차별과 함께 이번 내전으로 무고한 난민까지 죽어나가기 때문이다. 베다위 난민촌에 사는 하산(22)은 “이제 우리도 더 이상 참고 살기 힘들다. 자체 무장을 해서라도 아이들과 가족을 지키고 싶다. 이제는 레바논 정부를 믿지 않는다”며 분개했다. 직업도 변변히 없는 난민들이 외부에서 온 무자헤딘 세력과 동조할 가능성이 많다.

트리폴리 사건 이후 10여 일 사이에 수도 베이루트에는 3차례의 폭탄 테러가 발생했고, 경찰초소가 수류탄 공격을 받기도 했다. 레바논은 한국의 경기도보다 작은 나라다. 북쪽에서 남쪽까지 차를 타고 3~4시간이면 다 돌아다닐 정도다. 그래서 작은 사건도 레바논 전체에 금방 확산된다. 이를 증명하듯 남쪽의 도시 시돈에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촌 ‘아인 알 힐웨’라는 곳에서 정부군을 공격하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 ‘준드 알샴’이라는 파타 알 이슬람의 뒤를 잇는 무장단체가 요즘 레바논에 새로운 골칫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이제는 유엔군이 주둔할 남부까지 트리폴리 사건의 여파가 퍼지고 있다.

유엔평화유지군의 임무는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충돌을 막고 정전 감시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엉뚱한 곳에서 불씨가 터지는 바람에 레바논의 평화가 다시 흔들리고 있다. 레바논 내전 상황에 유엔군이 급하게 개입을 할 수도 없다.

어느 때보다 치안이 불안해진 레바논에서 유엔군으로 활약할 한국군이 어떤 상황에 처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현지 주민들의 정서와 레바논을 이해하는 데 주력한다면 한국군 파병이 원하는 레바논의 평화에 조금은 일조할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해본다.

<레바논|글·사진 김영미 PD gabjini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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