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받는 신진작가 5인, 한국문학의 미래를 말하다
“한국문학의 위기? 그딴 거 관심 없어요”
![[커버스토리]‘‘펭귄뉴스’의 김중혁](https://img.khan.co.kr/newsmaker/728/cover-wirter.jpg)
한국문학은 정녕 위기인가. 한국소설을 펼쳐 들기 위해선 왠지 옷깃을 여미고 엄숙해야 한다는 선입견은 어디서 비롯했을까. 한국소설에 관한 통념을 깨는 소설들도 있다. 일각에서는 이들을 2000년대 문학으로 묶어 규정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들 소설의 작가들은 그저 자신의 문학을 추구할 뿐, ‘한국문학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신진작가’와 같은 수식을 거부한다고 말한다. 이들만이 한국문학의 미래를 대표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뉴스메이커’는 한국문학이 앞으로 어떤 길로 나아갈지 5명 작가의 세계를 통해 그 단면을 들여다보았다. <편집자 주>
“재미있는 소설을 쓰려고 노력해요”

문학과지성사
“사실 제가 독립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또 한국문학의 새로운 희망이 되기 위해 소설을 쓰는 것도 아니에요.
하고 싶은 걸 했고, 뜻하지 않게 많은 사람이 봐줬지요”
어디서 보았을까. 그의 이름 앞에 붙은 ‘전직 소설가’라는 타이틀을. ‘펭귄뉴스’(문학과지성사)라는 소설집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지 1년이 지났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다음 날, 소설가 김중혁씨(36)는 언론사에 입사, 여행·음식 담당기자가 됐다.
“기왕이면 전직의 ‘전’이 앞 전(前)자가 아니고, 전부 전(全)자면 좋겠어요. 비록 신문사에 몸을 담고 있지만, 스스로 본업은 소설가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개인적으로 신문사 기자라는 직함을 욕심냈던 것도 아니고….”
그러면서도 그는 그날 마감한 기획기사가 신경이 쓰이는 듯 이제 막 잉크냄새를 풍기며 찍혀 나온 지면을 곁눈질로 보고 또 봤다. 요리·여행 전문기자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지만 ‘노는 건 좋아하지만 워낙 게으른 성격이라 어딜 다니는 건 무리’고 요리를 좋아한다고 그는 덧붙인다. 그의 첫 소설집 ‘펭귄뉴스’는 꽤 많이 팔렸다. 기자가 들고 간 판본은 8쇄. 김씨는 “약 1만 부 정도 팔렸다”고 말한다. 책 말미, ‘작가의 말’에서 그는 자신을 ‘레고블럭’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가 나열한 레고 조각들. “(이하 절대무순) 더 킹크스, 톰 웨이츠, 엘비스 코스텔로, 보스턴 레드삭스, 글렌 굴드, 알렉스 칠튼, 줄리안 반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무라카미 류…(하략).”
그러고 보니, ‘펭귄뉴스’를 읽다 보면 “…라고 말하는 건 거짓말이고” 식의 무라카미 류의 어투가 눈에 띈다. 지적에 대해 김씨는 류보다는 하루키로부터 영감을 받기는 했지만, 문체라기보다 삶의 방식이나 사물, 인간을 대하는 태도에서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스스로 풀이한다. “어떤 작가가 완벽한 존재로 영향을 끼쳤다기보다, 내 안의 어떤 것과 비슷한 것이 있기 때문에 확인하고 비교하는 것 같아요. 책 뒤에서 언급한 수많은 사람 역시, 저하고 코드가 비슷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쓴 것 같은데….”
또 하나의 특징. 그가 나열한 이름 가운데는 국내작가, 소위 민족문학의 선배들 이름은 없다. ‘일본소설을 읽지 않았다’는 하루키처럼 그 역시 ‘한국문학’으로부터 자양분을 받진 않았다는 걸까. 물어보니 딴청이다. “일부러 뺐어요. 넣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그분들의 이름을 다 넣는다면 적어도 세 장은 할애해야 하는데, 또 그럴 순 없고.”
이어 그는 ‘부끄러운 이야기’라며 책의 내용과 관련된 취재는 ‘거의 안 했다’고 고백한다. 그의 소설작법은 이렇다. 공간이나 시간, 혹은 상황을 설정해놓으면, 이야기가 시작된 내부에서 리얼리티를 찾아야 한다. “물론 사람의 머리가 한계가 있으니까 자기가 봤던 것들이 영향을 미치겠죠. 그렇지만 그런 정보들은 단편적일 수밖에 없어요. 단편적인 정보를 통해 큰 공간을 그리는 게 소설 쓰는 재미거든요.”
![[커버스토리]‘‘펭귄뉴스’의 김중혁](https://img.khan.co.kr/newsmaker/728/cover-junghyuk.jpg)
부끄러운 이야기라고 했지만, 실은 ‘요즘 잘 나가는 작가들의 소설들은 강박적으로 사실주의를 회피하고 있다’는 평단 일각의 비판에 대한 김씨의 ‘소설론’이다. 정말 게으른 게 맞나. ‘남한산성’으로 요즘 한국소설의 체면을 세우고 있는 소설가 김훈의 경우, 창작에 들어가기 전, 철저한 사전취재로 유명하지 않는가. “정말 모르는 세계를 쓰고 싶다면 하게 되겠죠. 사실 책에서 많은 힌트를 얻어요. ‘에스키모, 여기가 끝이야’의 경우 디자인 관련 책을 우연히 보다가 에스키모의 지도 이야기를 인상 깊게 읽었어요. 잡다한 잡서를 읽다가 소설의 주제를 떠올리죠. 머릿속에서 지나가는 것을 낚아채는 거죠. 재미있는 사람은 재미있게 읽을 것이고, 없는 사람은 어쩔 수 없는 거고….”
평단의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직설적으로 물어봤다. 그는 “그런 논지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분들은 또 그분들대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라는 반응이다. “사실 제가 독립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또 한국문학의 새로운 희망이 되기 위해 소설을 쓰는 것도 아니에요. 하고 싶은 걸 했고, 뜻하지 않게 많은 사람이 봐줬고, 노력을 하고 또 쓰는 그 과정이 전부예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재미있는 소설을 쓰는 것뿐입니다.” 그는 현재 ‘좀비’를 소재로 한 장편을 쓰고 있다, 라고 여기저기서 말했지만 “딱 세 문장을 써놓았을 뿐”이라며 겸연쩍어 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