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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출판시장에 일본소설 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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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다의 ‘면장선거’ 베스트셀러 10위권…‘공중그네’는 50만 부 팔려

교보문고의 일본소설 코너에서 책을 고르는 여성 독자들. <김세구 기자>

교보문고의 일본소설 코너에서 책을 고르는 여성 독자들. <김세구 기자>

오쿠다 히데오는 요즘 한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의 신간 ‘면장선거’는 초판 3만 부가 1주일 만에 매진되면서 주요 인터넷서점에서 일제히 종합베스트셀러 10위 안에 진입했다. 바로 2쇄 2만 부를 제작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 그의 전작 ‘남쪽으로 튀어’가 2주일 만에 2만 질이 소화됐던 것에 비해 독자의 반응이 무척 빨라진 것이다. 도서평론가 이권우씨는 ‘남쪽으로 튀어’를 두고 “우리 문학 지형도에서 이만한 역량을 발휘하는 본격 문학가를 찾아볼 수 있는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오쿠다는 이렇게 작품성마저 인정받자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일본작가로 올라섰다. 한국에서 그의 출세작은 ‘공중그네’다. 이 책은 벌써 50만 부가 넘게 팔렸다.

미야베 미유키 등 전작 나올 태세

일본소설이 왜 이렇게 잘 나가는 걸까? 대중문화평론가 김봉석은 일본소설 붐이 마니아에서 시작되었다고 분석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류, 요시모토 바나나, 에쿠니 가오리 등 소수의 작가에게 국한되어 있던 일본소설 출간은 최근 들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장르소설의 출간이다. 대중소설 작가로 분류되는 미야베 미유키, 히가시노 게이고, 온다 리쿠 등은 거의 전작이 나올 태세이고 다양한 스타일의 추리, 판타지, 공포 같은 장르소설들이 줄을 잇는다. 일본 장르소설의 출판러시는, 인터넷 추리동호회 등에서 활동하던 마니아들이 출판편집자로 자리 잡으면서 대중성은 물론 작품성이 있는 소설들을 선별하여 관심을 끈 덕으로 보인다”(‘마니아 문화-탐닉에서 창조까지’ <기획회의> 2007년 5월 20일자)는 것이다.
이밖에도 요시다 슈이치, 이사카 코타로, 가네시로 가즈키 등도 마니아층이 형성된 경우다. 이중 요시다 슈이치는 1만 부 정도의 독자층이 형성되었다고 본다. 그 마니아층은 갈수록 두터워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 마니아 열풍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아마도 일본만화에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할 듯하다.
일본문화가 전면 개방된 뒤 가장 많은 특수를 누린 것은 일본만화다. 만화는 애니메이션과 결합함으로써 영향력을 더욱 키웠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이라면 일본을 대표하는 문화이자 산업이 아닌가? 일본 애니메이션이 전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의 65%를 점할 정도라니 이웃나라인 우리로서는 그 기세가 놀라울 뿐이다. 최근 주요 만화출판사들의 매출에서 일본만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80%가 넘는다. 우리 만화는 그야말로 ‘구색’ 갖추기일 뿐 책으로 펴내봤자 이익이 나지 않는다는 아우성도 나온다. 이처럼 일본만화를 열심히 읽은 세대가 이제 성장해 일본소설 붐까지 일으키는 것이다.

일본 만화와 일본 소설의 인기는 영화와 드라마에까지 급속하게 번졌다. 마치 우리 문화 콘텐츠의 원천이 일본만화와 일본소설인 듯 여겨질 정도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와 드라마 ‘하얀 거탑’은 최근 폭발적 인기를 얻었던 대표적인 경우다. 가타야마 쿄이치의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가 원작인 ‘파랑주의보’, 가네시로 가즈키의 ‘플라이, 대디, 플라이’가 원작인 ‘플라이 대디’처럼 일본소설이나 만화 가운데 영화의 원작을 찾는 일이 늘어났다.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 또한 우리나라의 영화사가 영화 판권을 확보했다. 오쿠다 히데오의 전 작품을 영화화하겠다고 나섰지만 오히려 원작자가 뜸을 들이는 형편이다.

과거에는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류, 요시모토 바나나 등 몇 사람의 스타작가에게 집중되었던 인기가 지금은 점차 많은 작가에게 분산되고 있다. 서점에 가보면 이 땅이 일본인지 한국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다. 그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이유는 이 소설들이 젊은 세대의 정서에 잘 부합하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만화 읽다 일본소설 마니아로

어린시절 일본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젊은이들이 일본소설붐을 일으키고 있다. 사진은 일본애니메이션 ‘메트로폴리스’ ‘모노노케 히메’ ‘이웃집 토토로’(위부터).

어린시절 일본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젊은이들이 일본소설붐을 일으키고 있다. 사진은 일본애니메이션 ‘메트로폴리스’ ‘모노노케 히메’ ‘이웃집 토토로’(위부터).

한국 출판시장에서 요시모토 바나나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에쿠리 가오리가 기반을 닦아가던 몇 년 전에 일본소설과 함께 인기를 끈 것은 인터넷소설과 카툰만화였다. 그러나 인터넷소설은 곧 기세가 꺾였고 카툰만화는 ‘파페포포’ 시리즈 등 몇 종을 제외하고 별로 힘을 쓰지 못했다. 세 유형의 공통점을 찾자면 일상과 비일상을 넘나드는 몽환적인 분위기나 상상력을 매우 섬세한 문체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작품에서는 공통적으로 진지함이란 찾아볼 수가 없다. 마치 지나간 일기장을 들추어보는 듯하다고 할까.

지금 한국의 젊은 세대는 절대 빈곤과는 거리가 멀다. 물질적 풍요를 누렸다. 부족한 것이 있으면 ‘과외’를 받아서라도 채우면 된다는 것을 체감한 세대였다. 하지만 가슴 속으로는 끝없는 상실의 고통을 느끼는 세대이기도 하다. 가족과도 떨어져 원룸에서 살고 휴대전화나 메신저 등 ‘1인용’으로 세상과 ‘소통’한다. 정치·경제·사회문제에는 아예 관심을 두지 않으면서 남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다. 그러면서도 늘 ‘관계의 쓸쓸함’에 젖어 있다.

앞의 세 유형은 이런 정서의 소유자들이 즐기는 장르였다. 일본출판계는 이런 독자를 의식해 끊임없이 새로운 상품을 쏟아낸다. 대중소설에도 늘 상이라는 타이틀을 붙여 ‘권위’를 키운다. 최근에는 휴대전화소설, 즉 ‘겐다이 소설’ 문학상을 만들어냈다. 서점인들이 추천한 ‘서점대상’이란 것도 만들었는데 1~3회 대상 수상작은 모두 200만 부를 넘었거나 근접해 있다. 젊은 세대를 위해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내며 함께 호흡하고자 하는 것이다. 시장과 언론과 출판사가 연대해 끊임없이 화제작을 만들어낸다. 물론 그런 작품들은 늘 영상과 함께 호흡하기에 생동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땅에서는 커피를 마시며 가볍게 보는 소설은 늘 매도의 대상이 된다. 그런 매도가 결국 대중소설이라는 밭을 고갈시켰다. 평론가로부터 호평을 받는 소설은 진지하기만 할 뿐이다. 그러니 젊은이들의 관심을 끌 만한 작품은 늘 ‘부재’ 상태다. 최근 ‘달려라 아비’의 김애란, ‘카스테라’의 박민규처럼 ‘21세기적 상상력’으로 새로운 마니아층을 형성해가는 작가도 없지 않지만 그야말로 소수에 불과하다. 그런 ‘궁핍’이 결국 일본소설의 활개를 자연스럽게 조성한 것이 아닐까.

한기호<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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