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소설 제작환경 비교… 편집자가 출판사 옮기면 작가도 따라가

일본의 문고분 출판은 문학시장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한다. 일본 최대 서점 중 하나인 이케부쿠로 소재 준코도 서점의 문고분 전용 서가.
지난해 교보문고의 연간 베스트셀러 소설 10위권에는 한국 작가의 소설이 3권밖에 올라가 있지 않다. 반면 일본은 최대 출판 도매상인 닛판(日販)의 연간 단행본 픽션 분야 베스트셀러 10종에 외국소설이 단 한 권도 없다. 소설 발행종수에서는 8.5 대 1.5, 매출 구성비는 8 대 2 정도로 일본소설이 외국소설을 압도한다.
이처럼 자국 소설의 경쟁력이 판이한 두 나라의 풍경에는 어떤 배경이 있는 것일까. 먼저 양국의 소설 출판 현황을 보면 2005년 기준으로 발행종수는 2.5배(한국 3905종, 일본 9614종), 시장규모는 4배, 발행부수는 6배 정도 차이가 난다. 일본 인구가 우리의 3배 정도임을 감안하더라도 상당한 차이다. 발행량 기준으로 한국인은 연간 2명이 1권꼴, 일본인은 1명이 1권꼴로 소설책을 사보는 셈이다.
일본소설의 강점은 작가와 편집자의 파트너십에서 출발한다. 한국 출판계에서 문예물의 경우 편집자의 역할은 대개 교정을 꼼꼼히 보는 선에 그친다. 창작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려는 배려라기보다는, 첫 번째 독자인 편집자와 작가의 소통 부재를 뜻한다. 반면 일본의 문예 출판사들은 소설 담당 편집자가 아이디어나 기획을 제안하기도 하고 집필 과정에서 매우 충실한 조언자 역할을 한다. 작가와 편집자의 관계가 분업화되거나 유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독자에게 읽히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동업자적 결속이 강하다. 따라서 편집자가 출판사를 옮기면 작가도 그를 따라 출판사를 바꾸는 일이 많다. 문학출판에서 편집자의 역할이 큰 것은 서양 출판계에서도 보편적이다.
또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일본의 문고본 출판은 문학시장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한다. 단적으로 소설 발행종수의 절반 이상이 문고판이다. 일본에서 제일 큰 서점으로 비유되는 세븐일레븐을 필두로 문고와 잡지, 길쭉한 문고판인 신서(新書)에 이르기까지 편의점은 강력한 출판유통 채널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일반 도서의 평균 정가가 1200엔 수준인 데 비해 문학도서 평균가는 700엔대(6000원 수준)인 것은 문고가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저렴한 가격과 파격적인 엔터테인먼트를 추구하는 소설이 4만 개 편의점과 열정적인 점원들이 일하는 1만8000개(한국은 약 3000개) 서점에서 판매된다.
나아가 마케팅 노력은 가상할 정도다. 눈에 띄는 것이 문학상 비즈니스인데, 최근에 출판사들이 새로 제정한 문학상만 보아도 그 다양성에 혀를 내두를 만하다. 외국어 번역출판을 전제로 내건 ‘오에 겐자부로상’, 거액의 상금과 편집자 심사위원 체제의 도입을 통해 문학상 형식을 파괴한 ‘소설대상’, 야후재팬이 주제를 제시하고 소설을 공모하는 ‘야후문학상’, 서점원들이 자체적으로 제정하여 베스트셀러 코스로 자리잡은 ‘서점대상’, 연애 이야기만 공모하는 ‘일본 러브스토리대상’, 영상화를 전제로 공모하는 ‘감동논픽션대상’, 작가의 조기 발굴을 위해 만 12세 이하 어린이만 응모 가능한 ‘12세문학상’ 등이 그것이다.
이외에도 영화와 드라마 등 영상물과의 효과적인 연동전략이 두드러지는데, 대개 출판기업 스스로 상당한 투자·제휴를 통해 다매체 환경에 대응해나가고 있다. 그리고 소설을 열심히 사들이는 공공도서관은 우리보다 5배 이상 많고, 만화대여점은 많아도 소설은 대여하지 않는 저작권 보호 및 출판시장 재생산구조, 휴대전화 소설 히트작들의 잇단 출판화 성공 등도 일본소설의 생태환경에서 눈여겨볼 대목이다.
지난 몇 년간 한국 젊은이들의 감수성을 자극하며 급속히 영역을 확장한 일본소설은 다양한 메뉴와 잘 짠 오락성이 강점이다. 하지만 작품 외적인 측면에서 일본소설의 영향력을 지탱하는 것은 강력한 출판시장과 마케팅 시스템이다. 따라서 다양한 방식의 작가 양성과 전방위적인 소설 마케팅 체제 구축이야말로 일본 출판계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다. 이제 한국문학의 위기 돌파 논의는 문단 못지않게 한국 출판계의 철저한 자기 반성과 멀리 내다보는 출판철학에서 시작해야 한다.
백원근〈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