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어머니’ 정치권에 두 손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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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신디 시핸, 반전운동 정략적 공세에 환멸 느껴 ‘중단’ 선언

신디 시핸이 지난 4월 6일 텍사스주에 있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목장인 크로포드 앞에서 반전시위대를 이끌고 행진하고 있다.

신디 시핸이 지난 4월 6일 텍사스주에 있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목장인 크로포드 앞에서 반전시위대를 이끌고 행진하고 있다.

미국 반전운동의 상징인 ‘평화의 어머니(Peace Mom)’ 신디 시핸이 미국의 현충일(Memorial Day)인 5월 28일 반전운동 중단을 선언했다. 2004년 4월 이라크에 파병된 아들 케이시의 죽음을 계기로 2005년 8월부터 반전운동을 시작한 지 약 21개월 만이다.

시핸이 반전운동을 접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반전운동 중단 선언 즈음에 발표한 두 편의 글을 종합하면 정치인, 특히 민주당에 대한 환멸과 평화운동단체에 대한 실망 등이 주요 요인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시핸은 5월 26일 민주당 의회 앞으로 보낸 서한에서 철군시한이 빠진 전쟁비용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한몫 한 민주당의 무능과 위선을 꼬집으면서 “축하한다. 당신들은 불법적이고 비도덕적인 대학살을 자행할 몇 달을 더 벌어다 줬다”고 밝혔다. 5월 28일 사퇴 선언을 담은 글에서도 시핸은 “내가 공화당에 취한 것처럼 민주당에 똑같은 기준을 적용하면서 거리감을 주자 내가 하는 운동의 대의에 대한 지지는 줄어들기 시작했으며 ‘좌파’들 역시 우파가 해왔던 것처럼 나를 중상모략하기 시작했다”고 썼다. 그는 또 “그동안 일해온 평화운동단체는 종종 평화보다는 개인적 이해관계를 앞세우고 있다”면서 “평화를 내걸고 일하는 단체들이 서로 반목하고 대립한다면 평화를 위해 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또 하나 궁금증은 ‘왜 현충일에 반전운동을 접겠다고 발표했을까’ 하는 점이다. 선언의 효과를 최대화하는 데는 현충일보다 좋은 날이 없을 법도 하다. 그러나 이 날은 시핸에게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현충일은 바로 반전운동에 몸담게 한 계기가 된 아들 케이시의 생일이기 때문이다.

시핸이 반전운동 중단을 선언했지만 그의 반전운동은 끝나지 않는다. 그의 중단 선언은 5월 28일 글에서도 알 수 있듯 체제 내에서의 활동 중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위에서 소개한 두 편의 글을 요약한 것이다.

5월 28일 진보 블로그사이트 ‘데일리 코스’(dailykos.com)에 올린 글 “내 아들 케이시가 죽은 뒤 미국 반전운동의 ‘얼굴마담‘이 되면서 나는 수많은 오욕과 증오를 견뎌왔다. 특히 민주당과의 어떤 관계도 부인한 이후에도 나는 민주당의 언더그라운드 ‘리버럴 블로그’들에서 쓰레기인 양 취급받기 시작했다. ‘관심 끌기 위해 온갖 짓을 다하는 매춘부’니 ‘나쁜 일에 즐거워 하는 여자’니 하는 말은 내가 들은 비난 중 점잖은 편에 속한다.

나는 미국의 현충일 아침을 맞아 가슴 찢어지는 결론을 내렸다. 지난 1년간 곰곰이 생각하여 내린 결론이다.
첫 번째 결론은 내가 나의 투쟁을 조지 부시와 공화당에 국한하는 동안 좌파들의 연인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그동안 공화당쪽으로부터 민주당의 ‘도구’라는 중상모략과 비방을 받아왔다. 그러나 내가 공화당에 취한 똑같은 기준을 민주당에도 적용하면서 거리감을 두자 내가 하고 있는 운동의 대의에 대한 지지는 줄어들기 시작했으며, ‘좌파’들 역시 그동안 우파가 해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나를 중상모략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부패한 ‘양당’제도의 대안을 찾지 않는다면 우리의 공화국은 사망선고를 받을 것이다.

신디 시핸이 지난 4월 15일 네브라스카주 오마하에서 열린 ‘2007 오마하 평화정의엑스포’ 에 참석해 연설을 하고 있다.

신디 시핸이 지난 4월 15일 네브라스카주 오마하에서 열린 ‘2007 오마하 평화정의엑스포’ 에 참석해 연설을 하고 있다.

다른 한 가지 결론은 내가 ‘관심에 굶주린 매춘부’라서 이 일을 하는 거라면 헌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평화와 정의를 원하지 않고 있는 나라에 평화와 정의를 가져오기 위해 29년간의 결혼생활과 가족과의 생활 등 모든 것을 희생했다.
내가 이 아침에 도달한 가장 황폐한 결론은 내 아들 케이시가 사실 아무런 명분도 없이 죽었다는 사실이다. 내 아들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인명을 앞에 놓고 정치놀음을 하고 있는 가운데 죽었다. 내가 수많은 세월 동안 이러한 정치·사회체제를 지지해왔고, 케이시가 그 대가를 치렀다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 괴롭다.

나는 또 그동안 평화운동단체와 같이 일하려고 노력해왔다. 그런데 이 단체는 평화와 인명보다 개인적 이해를 우선에 두고 있다. 평화를 내걸고 일하는 단체들이 실상은 서로 반목하고 대립한다면 평화를 위해 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것은 반전운동의 ‘얼굴마담’ 으로서의 사직서이다. 그러나 나는 미 제국에 피해를 당한 사람들을 돕는 일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나는 이 체제 안팎에서 일했던 것을 그만두는 것이다.

미국이여, 안녕. 너는 내가 사랑하는 조국이 아니다. 내가 아무리 희생을 하더라도 네가 원하지 않는 한 그런 나라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이제부터는 모두 네게 달려 있다.”

5월 26일 민주당 의회에 보낸 글 “나는 아들 케이시가 죽은 뒤 조지 부시에게 어떠한 고귀한 명분 때문에 케이시와 수천 명이 죽어야 하는지 물어보는 한편 의회에 대해 부시가 테러와의 전쟁을 포기할 것을 끊임없이 요구해왔다. 이제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했음에도 나는 낙관적인 순진함을 잃었으며 냉소적이고 비관적으로 바뀌었다. 당신들이 용감하고 지치고 다친 우리의 병사들과 더 많은 이라크 국민들을 죽음으로 몰도록 ‘피의 왕’ 부시에게 돈을 지원하는 정상적이고 정당한 이유가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당신들은 더 많은 전비를 정치적인 비용으로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도덕적 혐오인데다 이라크 점령이 계속될수록 당신들의 손에 더 많은 피를 묻힐 것이다.

오늘이 죽음의 노크가 당신들의 문을 두드리는 날이라면 달빛 아래에서 서성이며 밤새 잠 못 들 것이다. 집중할 수도, 먹을 수도 없을 것이다. 최악의 공포를 느낄 때면 당신은 끊임없는 고통과 회한, 갈망의 삶이 시작된다. 매일매일이 힘들겠지만 현충일과 같은 특별한 날도 맞을 것이다. 현충일은 나에게는 이중의 고통이다. 전장에서 숨진 군인들의 명복을 빌어야 할 뿐 아니라 내 아들 케이시가 태어난 날이기 때문이다. 현충일은 그동안 우리에게 축하의 날이었지만 이제는 절망의 날이 됐다.

민주당 의회여, 매일 3.72명씩 473명의 병사가 당신들의 정치적 탐욕 때문에 죽어가고 있다. 9월 말이면 우리는 전사자가 4000명에서 80명이 모자라는 새로운 피의 이정표를 세울 것이다.

축하한다, 의회여. 당신들은 불법적이고 비도덕적인 대학살을 자행할 몇 달을 더 벌어다 줬다. 당신들은 조지 부시의 전쟁을 명예롭게 끝낼 수 있었다. ‘부시주식회사’와 죽음의 역사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책임은 당신들에게 있다. 우리는 국가라는 선박이 가라앉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안전한 항구로 인도하길 원해 당신들을 선출했다.

우리는 주권국가에 대한 미 정부의 폭력적인 간섭을 용서치 않을 것이며, 계속되는 살인적인 이라크 점령을 비난한다. 우리는 당신들에게 기회를 줬지만 당신은 우리를 배반했다.”

<국제부|조찬제 기자 helpcho65@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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