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교도 흑인 이민자와 북아프리카계, 스웨덴·프랑스 장관에 오른 ‘입지전’ 화제
유럽 사회에서 아프리카계나 이슬람계 여성은 소수자 중 소수자다. 백인 남성이 주류를 이루는 스웨덴과 프랑스에서 당당히 장관 자리에 올라 주목받고 있는 2명의 흑인 여성이 있다. 편견을 뚫고 정상에 선 두 여성 장관의 인생 역정과 사회의 소수자에 대한 시선을 소개한다.
스웨덴 니암코 사부니 통합 평등부 장관 지난해 9월 집권한 스웨덴 프레드릭 라인펠트 총리는 콩고 출신의 이슬람 여성 니암코 사부니(38)를 통합 평등부 장관에 임명했다. 백인, 기독교도, 남성이 주류를 이루는 스웨덴 사회에서 흑인 이민자이자 이슬람교도 여성이 장관의 자리까지 오른 것은 매우 드문 일로, 여성을 억압하는 이슬람 전통의 개혁을 주창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주목을 받고 있다. 사부니는 정치적 이유로 7명의 자녀와 함께 콩고를 떠나 망명길에 오른 아버지를 따라 12세부터 스웨덴에서 살았다. 독실한 이슬람교 신자인 어머니 아래서 자란 그녀는 스웨덴 웁살라 대학에서 공부했다. 여행사 직원과 결혼해 쌍둥이를 두고 있으며 32세라는 매우 어린 나이에 국회의원에 당선돼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할례와 같은 이슬람 전통에 대한 개혁을 주창하며 정치적 기반을 마련했다. 의회에 들어가자마자 15세 이하의 이슬람 어린이들에게 이슬람 전통의 하나인 히잡이나 부르카 금지를 요구했으며 소녀들의 할례를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언론과 인터뷰에서 “많은 사람이 이슬람 전통이라고 생각하는 ‘중매 결혼’이나 ‘할례’는 이슬람 전통으로 보기 어렵다”며 “소녀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이슬람 여성들이 종교의 이름으로 억압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발언으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았으며 지금도 24시간 경호를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지난해 장관자리에 올랐을 때는 전국 50여 개 이슬람단체는 그녀를 ‘이슬람 공포증’을 조장하는 인물로 지목하고 임명 장관 취하 서명을 받아 총리에게 청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그녀의 이 같은 행동은 지난해 소말리아 출신으로 네덜란드 의원의 자리에 오른 이아안 히르시 알리(37)와 매우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이안은 소말리아에서 독실한 이슬람교도인 부모 아래서 자랐다. 그녀는 아버지가 선택한 남편과 ‘중매결혼’을 했으나 난민에게 비교적 너그러운 네덜란드로 망명, 이슬람 여성의 인권 회복을 위해 활동했다. 이 같은 활동을 기반으로 네덜란드 국회의원에 당선됐지만 이슬람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살해 협박을 받았고, 망명 서류 작성 때 이름과 사유를 거짓으로 기록한 사실이 드러나 의원직을 사퇴했다.
사부니는 이아안과 그녀를 동일시하는 세간의 인식에 대해 다소 부담스럽다는 반응이다. 그녀는 “우리 둘은 젊고 흑인이며 정치인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이아안이 이슬람 전통의 전면 개혁을 추진한 반면 나는 이슬람의 특정 전통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이아안이 강경한 이슬람 개혁주의자라면 사부니는 신중한 이슬람 개혁주의자로 분류해야 한다는 평가도 있다.
사부니는 최근 영국에서 불고 있는 ‘반(反)이슬람 정서’가 여타 유럽 국가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전에 이슬람 내부에서 개혁에 대한 논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녀는 지난해 유럽을 강타한 ‘부르카 금지법’ 등이 유럽을 이슬람과 비이슬람으로 분할하려는 움직임의 시작이라고 보고 있다. 사부니는 “스웨덴을 비롯한 유럽 각 국에서 소수 민족을 ‘관용’의 시선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지만 이슬람 세계 역시 외부 힘에 의한 개혁이 불가피하다면 내부적인 개혁에 대한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랑스 라시다 다티 법무장관 5월 18일 프랑스 니콜라 사르코지 정부의 첫 법무장관으로 임명된 라시다 다티(42)는 북아프리카계 출신으로는 처음 내각 서열 7위에 오르며 관심을 모으고 있다. 화장품 판매원에서 시작해 법무장관에 오르기까지 가난과 편견을 뚫은 드라마와 같은 인생 역정 역시 인구에 회자됐다.
다티는 프랑스 동부 소도시 살롱 시르 사온에서 모로코 노동자 출신 아버지와 알제리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12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영세민용 공공 임대주택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그녀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14세부터 직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화장품 외판원을 시작으로 16세 때는 야간 간호조무사로 일했다.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뜨는 바람에 어린 동생들을 보살피며 살림까지 책임졌다. 그녀는 BBC와 인터뷰에서 “삶의 기둥이었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큰 벌을 받는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학업을 중단하지 않았던 그녀는 1986년 주 프랑스 알제리대사관 만찬자리에서 우연히 만난 알밸 샹랑동 당시 법무장관에게 일자리를 부탁했다. 그녀의 당당함을 높이 산 정관은 정유회사 엘프(Elf)에 추천서를 써줬고 그 덕분에 다티는 엘프에서 3년간 회계원으로 일할 수 있었다. 다티는 회사생활을 하면서 부르고뉴 대 경제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땄다. 석사를 마친 뒤 마트라통신에 입사해 회계사로 일했고, 영국 유럽재건개발은행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경력을 쌓아나갔다.
일과 학업에 대한 그녀의 열정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1997년 2년 과정의 국립사법학교에 입학해 공부했으며 졸업 후 고등법원 재판소 판사와 법원 검사 등을 거쳤다.
사르코지 대통령과 인연도 스스로 만들었다. 사르코지 대통령이 내무장관이었던 시절 “함께 일하고 싶다”고 세 차례나 편지를 보낸 끝에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올해 사르코지 대선 진영에서 공동대변인으로 활약했으며 사르코지가 프랑스 교외 폭동을 일으킨 이민자들에 대해 막말을 했을 때 사르코지를 변호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녀의 프랑스 법무장관 임명에 대해 정치 분석가 도미니크 모이시는 “북아프리카계 여성이라는 최악의 조건 속에서도 개인의 노력으로 장관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인사인 동시에, 프랑스의 ‘톨레랑스(관용)’를 확인한 인사였다”고 평했다.
다티는 법무장관 임명 소식을 듣고 “내겐 큰 영예”라며 “대통령이 보여준 기대에 부응해 프랑스 국민들을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국제부|김정선 기자 kjs043@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