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적 중계권료·해외 로열티·외국기업 후원금 등 ‘스포츠 비즈니스의 신화’로
영국 축구 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이름을 한번쯤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맨유 자체 조사에 따르면 서울에 거주하는 축구팬의 약 75%가 영국 축구팀 중 맨유를 가장 좋아한다고 답했다. 언제부터 영국 프리미어리그 팀이 한국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게 된 것일까.
비단 한국만이 아니다. 영국 축구 열풍은 지금 전 지구적 현상이다.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가 벌어들인 수입은 무려 25억 달러. 10년 전보다 3배 성장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영국 축구는 노동계급이 지역단위로 즐기던 소규모 오락거리였다. 팬들은 난폭했고 경기장은 낡고 불편했다.
이 같은 ‘과거’를 알고 있는 서구인들에게 영국 축구가 세계적 비즈니스로 신분 상승한 것은 경이로운 성공 드라마로 인식된다. 시사주간 ‘타임’은 최신호에서 세계를 휩쓸고 있는 영국 축구의 인기 요인을 집중 분석했다.
동네 축구, TV와 손잡다 프리미어리그의 인기는 길게 늘어서 있는 줄이 말해준다. 우선 팀에 투자하겠다는 외국의 억만장자들이 줄을 서 있다. 러시아 석유 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2003년 첼시를 인수했고 2005년 미국의 말콤 글레이저가 맨유를 샀다. 2006년엔 포츠모스, 애스톤 빌라,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의 주인이 줄줄이 외국 투자자로 바뀌었다. 지난 2월엔 미국인 조지 질레트와 톰 힉스가 4억3000만 달러에 리버풀을 인수했다. 투자가 증가하면서 ‘배당’도 늘었다. 올해 유럽 챔피언스리그 4강전에 진출한 팀 중 3곳이 영국 클럽이다.
영국이 유럽리그에서 늘 좋은 대접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워낙 극성스러운 축구팬들 탓이다. 1985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리버풀과 이탈리아 유벤투스의 결승전에서 리버풀 팬들이 소요를 일으켜 유벤투스 팬 38명이 죽는 사고가 있었다. 영국은 5년간 유럽 무대를 밟지 못했다. 국내 운동장 사정도 좋지 못했다. 1989년 좌석이 설치되지 않아 선 채로 경기를 보던 리버풀 팬 96명이 서로 밀고 밀리다 압사했다.

위_ 프리미어리그 미들즈브러 홈페이지의 이동국 입단 관련 기사. <경향신문> 아래_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이 2006∼2007 프리미어리그 우승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영국 축구가 거듭나기 시작한 것은 이 사고 이후인 1990년대부터다. 정부는 수백만 파운드를 지원하며 경기장 현대화 작업에 착수했다. 사업 감각이 탁월한 축구 관계자들도 재도약할 길을 모색했다. 그 결과 1992년 4부리그에서 최상위 클럽들을 분리해 창설한 프리미어리그가 탄생한다. 신생 리그는 신생 채널이었던 위성TV ‘스카이’와 중계계약을 맺고 중계권료를 벌어들이기 시작했다.
TV 중계는 경기의 성격까지 바꿨다. 스카이가 통계와 그래픽을 곁들이면서 게임이 한층 흥미로워졌다. 현란한 영상은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았다. 런던 대학의 버크벡 스포츠 경영센터 사이먼 채드윅 소장은 “1990년대는 19세기 축구리그가 생긴 이래 가장 중요한 기념비적 세기일 것”이라고 평했다.
당초 소박하게 시작했던 중계권 사업은 현재 프리미어리그 주요 수입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2005~2006년 시즌에서 벌어들인 중계권료는 25억 달러. 이전 시즌 6억8000만 달러였던 것과 비교하면 성장세가 가파르다. 해외 채널들은 2007~2008년 시즌을 중계하기 위해 이미 12억3000만 달러를 프리미어리그에 지급했다.
세계로 눈을 돌려라 프리미어리그 앞에 긴 줄을 만드는 또 다른 이들은 해외의 팬과 후원 기업들이다. 팬들은 응원하는 팀의 기념품을 즐겨 구입한다. 여기서 걷어들이는 로열티 수입이 짭짤하다. 특히 아시아는 ‘노다지’다. 7500만 맨유 팬 중 절반이 넘는 4100만 명이 아시아 팬으로 추산된다. 13억 인구 중국에선 축구팬 중 14%가 맨유 티셔츠를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복제품이 워낙 많아 아시아 팬의 규모가 곧장 수익으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게 예외 상황이긴 하지만 말이다.
프리미어리그가 수많은 해외 팬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적극적으로 해외시장을 공략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섬나라 영국의 수요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첼시는 현지화 마케팅 전략의 좋은 본보기다. 지난 1월 중국 최대 인터넷 포털사이트인 시나닷컴과 함께 중국어 웹사이트를 열었다. 아시아축구협회가 중국에서 풀뿌리 구단을 육성하고자 추진하고 있는 ‘비전 아시아’ 프로젝트도 후원하고 있다.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는 것도 해당 국가의 현지 마케팅에 도움이 된다. 예컨대 맨유는 2005년 박지성을 영입한 이후 한국에서 더욱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우리나라의 한 금융회사가 선보인 맨유 카드도 가입자가 65만 명을 돌파했다.
특히 시즌이 열리기 전 팬 서비스 차원에서 실시하는 아시아 투어는 후원사에 황금 같은 기회다. 맨유가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말레이시아 투어에 나섰을 때 선수들 경기복에 회사 로고가 찍혔던 미국 보험회사 AIG는 덩달아 홍보 효과를 봤다. AIG가 4년간 티셔츠에 로고를 새기는 대가로 맨유에 지불하는 돈은 1년에 2800만 달러. AIG가 후원을 결정한 것은 맨유의 브랜드 파워가 이 액수를 상쇄하고도 남을 마케팅 효과를 안겨주기 때문이다.
실제 한 주주가 AIG에 ‘영국에 왜 그렇게 많이 투자하느냐’고 따져 물었을 때 마틴 설리번 AIG 최고경영자(CEO)는 “우리는 영국을 사는 게 아니다. 우리는 아시아를 사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잘 나가는 프리미어리그에도 그늘은 있다. 20개 클럽간 수익의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004~2005년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인 상위 5개 구단은 맨유와 첼시, 리버풀, 아스날, 뉴캐슬 유나이티드다. 이들이 전체 리그 수입과 선수 연봉의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부자 구단의 평균 수입이 가난한 구단보다 4.7배 높다.
이 같은 양극화는 미국의 인기 프로스포츠와 대조적인 점이다. 미국 프로미식축구(NFL)과 프로농구(NBA)는 부자 구단과 가난한 구단의 소득 차이가 2배 정도다. NFL의 경우 중계권 수입을 32개 팀에 골고루 나누는 ‘소득재분배 정책’이 작동하고 있어서다.
반면 프리미어리그는 국내 중계권료를 각 구단이 방송된 빈도와 리그 순위에 따라 배분하고 있어 부익부 빈익빈을 부추기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수익성 악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처럼 선수들의 연봉에 상한을 규정하는 ‘샐러리캡’을 도입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국제부|최희진 기자 dai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