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철 열린우리당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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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대통합 ‘전투력’ 발휘할까

최근 정대철 열린우리당 고문이 서울 한남동 외신클럽 하우스에서 몇몇 기자와 만난 자리였다. 그는 연신 “김치~”를 외쳤다. 그의 유일한 안주는 김치다. 유학시절(미국 미주리대 법학박사) 김치를 얻어먹기 위해 친구집을 전전한 이야기도 이어졌다.

2003년 대선자금 수수설과 관련해 해명하는 정대철 열린우리당 고문. <우철훈 기자>

2003년 대선자금 수수설과 관련해 해명하는 정대철 열린우리당 고문. <우철훈 기자>

2002년 대선 당시가 정대철 고문의 정치인생에서 절정기였다. 그는 노무현 민주당 대선후보의 선대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만들기’의 1등공신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정 위원장이 움직이지 않으면 기업가들이 만나주지도 않는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돌았을 정도였다.

경기고·서울대·미국 미주리대(박사)를 나온 5선의원의 정치엘리트에다가 고(故) 정일형 전 외무부 장관과 이태영 박사(여성변호사 1호)의 자제라는 정치적 배경도 든든했다. DJ(김대중 전 대통령) 아래서 겪은 비주류의 설움을 날려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그의 전도는 더욱 양양해졌다.

하지만 행운의 여신은 끝내 그를 외면했다.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분당과정에서 ‘청·신·정’에게 밀리고 말았다. 2004년 열린우리당 창당과정에서 ‘뒤차’를 탄 게 문제였다. 그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더니 끝내 ‘굿모닝시티 뇌물수뢰사건’으로 구속되고 말았다. 그의 옥바라지는 했던 염국씨는 “그 돈을 누굴 위해서 썼느냐”고 반문하면서 “(정 고문이) 참 억울해했다. 눈물을 참 많이 흘리더라”고 전했다.

그는 ‘단백질이 부족한 정치인’ ‘온실 속의 정치인’으로 통했다. 전투력 부재를 지적한 얘기다. 그런 지적은 최근까지 이어졌다. 지난해 12월 말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대선출마 채비와 정대철 열린우리당 고문이 깊은 관련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의 일이다. 열린우리당 의원 상당수가 “정 고문이 나서면 될 일도 안 된다” “의원 중에 그를 따를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에게 범여권대통합에 제공할 영양분이 있느냐는 얘기였다.

그런 그가 다시 ‘김치의 위력’을 보이고 있다. 정치재개의 기지개를 펴고 있다. 끈기가 되살아난 것이다. 그가 범여권대통합의 깃발을 높이 든 것이다. 정 고문은 김덕규 국회부의장, 문학진 의원 등 10여 명과 함께 5월 말 탈당을 결행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드디어 2004년 4월 총선 이후 “민주당과의 통합만이 살 길”이라는 ‘생존투쟁’이 나름대로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그가 열린우리당 창당 이후에도 꿋꿋하게 “민주당과 통합해야 한다”며 뿌려온 씨앗이 움트기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 고문을 비롯한 ‘5월 말 탈당인사’들은 먼저 민주당과의 통합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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