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리맨 성공신화 상징 존 브라운, 동성애인 폭로 부인하다 비참한 몰락
‘빛나는 경력을 가졌던 기업인의 비극적이고도 수치스러운 종말.’
![[월드리포트]영국 대기업 CEO ‘몰래한 사랑’](https://img.khan.co.kr/newsmaker/724/wor-1.jpg)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존 브라운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전 최고경영자(CEO)의 급작스런 몰락을 이렇게 표현했다.
올해 59세인 존 브라운은 순식간에 거액의 돈과 수십 년간 쌓아온 명예를 한꺼번에 잃었다. 그는 지난 1일 BP의 CEO 자리를 전격 사임해야 했다. 당초 그는 오는 7월 말 물러날 예정이었다. BP는 “브라운은 영국 법원이 그의 사생활에 대한 신문의 보도 금지를 해제하는 판결을 내린 후 사직서를 냈다”며 “그의 사임은 비극”이라고 밝혔다.
그는 예정보다 일찍 퇴직하는 바람에 350만 파운드(약 64억 원)의 보너스와 1200만 파운드(약 22억 원) 상당의 주식을 허공으로 날려 버렸다. 영국 및 유럽 최대 석유회사이자 세계적인 ‘석유 메이저’인 BP는 새 ‘사령탑’에 탐사·개발부문 책임자인 토니 헤이워드를 임명했다.
영광의 연속 브라운은 히틀러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영국 육군 장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8세이던 1966년 BP사에 견습사원으로 입사했다. 브라운은 명문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했다.
차근하근 승진을 거듭한 브라운은 1991년 집행이사가 됐다. 1995년에는 입사 30여 년 만에 마침내 CEO가 되었다. 그는 견습사원에서 출발해 거대 조직의 최고수장이 돼 샐러리맨 성공신화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의 친구들은 그가 부끄럼을 잘 타는 성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CEO로서 브라운이 보여준 경영 형태는 평소의 성격과는 전혀 달랐다. 그는 석유기업 CEO 중 누구 못지않게 공격적인 경영을 펼쳤다. 브라운은 1996년 이후 아모코 코프와 애틀랜틱 리치필드를 잇따라 합병, 세계 석유업계의 인수합병 열풍을 주도했다.
회사는 성공적으로 몸집을 키워갔다. 브라운은 회사의 시가총액을 10년 사이에 200억 파운드에서 1100억 파운드로 5배 이상 불려 ‘선 킹(Sun King)’으로 불렸다. 그는 유럽에서 최고 연봉을 받는 사람 중 한 사람이 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002년 그를 세계 석유가격을 좌지우지하는 5인 중 한 명으로 꼽았다.
영광은 이어졌다. 브라운은 1998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게서 산업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기사 작위를 받고, 2001년에는 귀족을 뜻하는 ‘경(卿)’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그의 몰락에 관한 기사를 다룰 때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존 브라운’이라고 표현하지만, 영국의 BBC방송은 ‘브라운 경(Lord Browne)’이라 호칭한다.
브라운은 초청인사로 런던 다우닝가 10번지의 블레어 총리 관저에 자주 드나들 정도로 영국의 ‘명사’로 통했다. 그는 돈 있거나 높은 자리에 있는 인사들과 자주 어울리며 포도주를 나누면서 멋진 저녁 식사를 했다. 옛 가구와 예술품을 수집하는 고상한 취미도 즐겼다.
갑자기 찾아온 몰락 브라운은 2005년 미국 텍사스에 있는 BP 정유공장에서 화재가 나 직원 15명이 숨지고, 지난해 알래스카 유전에서 누출사고가 일어나 곤경을 겪었다. 그러나 이런 사건들은 글로벌 대기업 총수라면 누구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어서, 그의 명성에 흠을 주지는 않았다.
진짜 문제는 바로 ‘질 나쁜 애인’을 둔 것이었다. 유명 인사들에 대한 끈질긴 사생활 보도로 유명한 영국의 타블로이드 신문인 메일 온 선데이, 데일리 메일 등에 올 1월 초 27세의 한 캐나다인이 접근했다.
제프 체발리어라는 이 남자는 브라운과 자신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언론에 팔겠다고 밝혔다. 체발리어는 2002년에 만나 동성애를 해온 브라운과 지난해 12월 헤어지면서 앙심을 품었다. 그는 브라운에게 돈을 요구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체발리어가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신문들이 보도에 들어가려 하자, 브라운은 법원에 기사를 싣지 말아 달라는 소송을 냈다. 브라운은 런던의 배터시 공원에서 조깅을 하던 중 우연히 체발리어를 만났을 뿐이라고 법정에서 거듭 밝혔다.
그러나 결국 체발리어의 주장대로 둘은 남자 동성애 파트너 소개업체를 통해 만나 4년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체발리어는 유명한 애인을 둔 덕택에 피터 만델슨 유럽연합(EU) 통상위원이 주최하는 만찬 등에도 참석하기도 했다.
사건의 심리를 맡은 데이비드 에디 판사는 “브라운이 여러 가지 명예를 누려온 점에 비춰 법정에서 선서를 해 놓고도 체발리어를 만난 경위 등에 관해 거짓말한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패소판결을 내렸다.
브라운은 폭로를 막기 위해 “체발리어는 음주가 심하고 마약도 한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 재판과정에서 두 사람은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서 주말에 ‘사랑’을 나누기 위해 주택을 구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집 구입 비용은 물론 브라운이 댔다. 브라운은 또 남자 연인의 휴대전화를 위해 회사 돈을 썼다는 사실이 드러나 망신을 당했다.
BBC 방송은 “브라운이 잘못된 판단으로 법정에서 거짓말을 해 매우 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며 그의 사임은 “BP나 BP 주주들의 동성애 공포증 때문에 촉발한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BBC는 “영국과 영국 재계에 반(反)동성애적 편견이 있지만 브라운은 법정 위증 사실이 드러나면서 수치를 느꼈기 때문에 사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브라운은 판결 직후 성명서에서 “부끄러움과 충격 때문에 거짓말을 했다”고 위증 사실을 인정했다. 다만 그는 “BP에서 일한 41년간 나는 회사일과 사생활을 분리해 왔다”고 밝혀, 사생활이 회사 경영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신문들이 나의 사생활에 대한 주장들을 보도하기로 결정한 데 대해 깊은 실망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브라운은 지난 1월 영국 기업인들에 의해 ‘영국의 가장 인상적인 기업인’으로 뽑혔다. 그가 지난 8년간 모두 7차례나 받은 영예다. 그러나 불과 몇 달 뒤 그는 법정위증죄로 처벌받은 정치인들처럼 위증 혐의로 형사법정에 서게 될지 모르는 곤란한 처지에 놓였다.
<국제부┃김용석 기자 kimy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