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대결로 좁혀진 결선투표, 우파식 개혁과 국민적 인기 힘입어 두각
![[월드리포트]프랑스 대선 ‘나폴레옹 vs 잔다르크’](https://img.khan.co.kr/newsmaker/723/wor1-1.jpg)
지난 22일 프랑스 대통령선거의 1차 투표 결과 집권 대중운동연합(UMP) 니콜라 사르코지 후보(51)와 세골렌 루아얄 사회당 후보(53)가 결선에 진출했다.
두 후보는 모두 1950년대 이후 태어난 전후 세대다. 대통령이 누가 되든 프랑스 정치는 물론 사회 전반에 걸쳐 본격적인 세대교체와 변화를 부를 것으로 보인다. 특히 루아얄이 최종 승자가 되면 프랑스에서는 ‘최초 여성 대통령’이 탄생한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하는 이유다.
나폴레옹의 부활 사르코지는 자크 시라크 대통령 정부에서 내무장관으로서 강력한 치안 정책과 카리스마 넘치는 언행으로 지지세를 넓혀온 스타 정치인이다.
원칙을 밀어붙이는 뚝심과 숨기지 않는 야망, 직설적 언행에 유독 작은 키 때문에 종종 나폴레옹에 비유하기도 한다.
헝가리 이민 2세로 파리에서 태어난 그는 대부분 동료 정치인처럼 엘리트 양성기관인 국립행정학교(ENA) 출신이 아닌 파리정치대학 출신이다. 변호사로 활동하며 우파 정당의 일원으로 정치에 뛰어든 개척자다. 사르코지는 1983년 28세의 나이로 파리 교외 뇌이쉬르센의 시장에 당선하며 정계에 입문했다.
한때 시라크의 막내딸과 사귀며 ‘시라크의 정치적 아들’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던 사르코지는 1995년 대선에서 에두아르 발라뒤르 총리를 지지, 시라크의 미움을 샀고 한동안 중앙 정치 무대에서 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사르코지는 2002년 선거에서 UMP(대통령 지지 연합)를 압승으로 이끌어 내무장관에 기용되면서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후 강력한 범죄 척결, 치안 유지 정책과 과감한 개혁을 추진해 ‘불도저’라는 별명을 얻으며 폭발적 인기를 얻었다. UMP의 대선 후보로 확정된 올해 초부터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고수했다.
노동시장 유연화와 감세정책, 미국식 자유시장경제 체제 도입 등의 경제정책 공약에서 보듯 철저한 우파식 개혁 성향을 드러낸다. 같은 맥락에서 불법 이민자 유입을 막고 능력 있는 이민자만 선별 수용하겠다는 강력한 이민통제 정책을 공약하고 있다.
민감한 쟁점에 대한 과감한 대처, 급진적인 해결방안 제시, 직설적인 발언은 인기 비결이지만, 동시에 거부감을 불러오기도 한다. 그는 2005년 파리 근교 이민자 폭동사건 당시 폭동에 참여한 시민들을 ‘폭도’라고 불러 거센 반발을 샀다. 지나친 친미(親美)주의자란 비판도 듣는다.
잔다르크의 화신 루아얄은 순수 프랑스인에 정통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당찬 여성의 전형이다.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총재와 30년 이상 동거하며 네 자녀를 두면서도 양성평등이라는 대의를 위해 결혼하지 않은 ‘반 전통적’ 여성이기도 하다.
루아얄은 1953년 세네갈에서 프랑스 육군 대령의 딸로 태어났다. 엄하고 보수적인 아버지는 딸들에게 큰 기대를 걸지 않았고 루아얄은 아버지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평생 노력했다.
그는 관료 입성 코스인 ENA를 졸업했다.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했고 환경부와 가족, 교육부를 거쳤다. 학교 폭력 척결과 남성 출산 휴가 도입 등이 대표적 업적이다.
루아얄은 2004년 푸아트샤랑트 지방의회 의장으로 선출되면서 주요 정치인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6년 사회당의 인기 스타로 급부상하면서 당의 중진들을 제치고 대선 후보 자리를 거머쥐었다.
루아얄은 여성이라는 점을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했다. 특히 육아, 교육, 청소년 문제 등 유권자들이 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덕분에 40대 이하의 젊은 좌파들과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 루아얄 지지자를 가리키는 ‘세골리스트’, 루아얄의 정책노선을 일컫는 ‘세골리즘’ 등 신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세련된 이미지에 비해 내실이 없다고 비판한다. 그는 “프랑스가 중국의 사법제도를 본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등 올 초부터 외교·국방 문제와 관련, 여러 차례의 말 실수로 곤욕을 치렀다.
정책 역시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 선거 초반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제3의 길’을 존경한다고 말하던 루아얄이 들고 나온 공약은 최저임금 20% 인상, 일자리 5만 개 창출 등 전통적인 좌파정책을 들고 나왔다.
캐스팅보트는 중도파에 이번 투표는 지역에 따라 지지 후보가 극명하게 분리되는 특징을 보였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북·동·남부는 사르코지 지지세가 확연한 ‘사르코랜드’, 서부와 남서부는 루아얄을 지지하는 ‘세골랜드’로 완전히 분리된 ‘두 개의 프랑스’를 보여줬다”고 평했다.
현재까지는 사르코랜드가 프랑스 대부분 지역을 장악하고 있다. 사르코지는 전통적으로 좌파 우세지역인 북노르망디 등을 장악했고 남동 해안지역과 북서부 지역에서도 몰표를 얻었다.
반면 특히 대도시에서 강세를 보인 루아얄은 사르코지 우세 지역에 속한 대도시인 몽펠리에, 릴, 캉에서도 승리하는 저력을 보였다.
대선경쟁 구도가 좌·우로 압축되면서 결국 관심은 중도 프랑수아 바이루 프랑스민주동맹(UDF) 후보를 지지했던 유권자들에게 모이고 있다. 이들의 표를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결선 투표의 승패를 가를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좌파 진영의 전체 득표율은 우파보다 열세다. 루아얄의 득표율 25.84%에 극좌 후보 6명의 지지율을 합해도 36.46%에 지나지 않는다. 사르코지의 득표율 31.11%와 비교하면 루아얄의 결선 전망이 밝지 않은 셈이다.
그러나 소프레(Sofres) 여론조사에 따르면 바이루 지지자 중 46%가 “결선에선 세골렌 루아얄 사회당 후보에게 투표하겠다”고 답했다. 사르코지라고 답한 사람은 25%였고 나머지는 기권 의사를 밝혔다.
바이루가 “어느 후보도 지지하지 않겠다”며 중립을 선언, 결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국제부┃박지희 기자 violet@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