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단 다르푸르 유혈분쟁 인근국가로 번져 ‘난민 홍수’ 사태
수단 서부의 다르푸르 지방. 흑인 원주민인 ‘푸르’족의 고향이라는 뜻을 지닌 다르푸르에서는 연일 죽음과 고통의 소식들이 들려온다. 2003년부터 현재까지 유혈분쟁과 인종청소, 기아 등으로 최소 20만 명이 사망하고 250만 명 이상이 난민이 되었다는 다르푸르 사태. 그러나 좀처럼 해결의 기미 없이 폭력은 지금 이 순간에도 반복되고 있다. 프랑스만한 크기의 땅덩어리에서 한 세대가, 아니 어쩌면 한 인종이 사라져가고 있다. 몇 명이 죽었냐 따위의 수치도 사실상 무의미하다. ‘죽음의 땅’ 다르푸르는 살아 있는 이들에게도 ‘지옥’이기 때문이다.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난민 가족이 나무 밑에서 햇볕을 피하고 앉아있다.
갈수록 수렁에 빠지는 다르푸르 3개월 전, 차드에 사는 파티마 아누프는 ‘난민’이 됐다. 소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한 일단의 무리가 그가 사는 작은 마을에 들이닥쳤다. 이웃 수단 말씨를 쓰는 이들은 수단 정부 물품으로 보이는 총기를 들고 자신들에게 협조하지 않을 경우 약탈과 방화는 물론 살인까지도 일삼았다. 다르푸르에서 흑인이면 모두 반군의 일원이라며 무차별 학살에 나섰던 아랍계 민병조직 잔자위드의 세력이 국경을 넘어 밀려들어온 것이었다. 잔자위드는 수단 정부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마을은 순식간에 초토화됐다. 다르푸르 사태의 참혹성을 익히 알고 있었던 주민들은 극도의 공포와 불안에 휩싸였다.
주민들은 “다르푸르발 전염병이 마침내 도착했다”며 너도나도 ‘피난’ 행렬에 올랐다. 아누프의 가족도 이렇게 고향을 등졌다. 여러 지방을 전전하며 굶주림과 질병으로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던 중, 최후 수단으로 고즈 아메르 난민촌에 도착했다. 유엔과 국제 구호단체들의 관리하에 부실하게나마 식량과 물 등의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는 소식에 희망을 품었던 것. 하지만 아누프 가족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다르푸르 난민들을 위해 운영되는 이곳 난민촌에 있는 이들은 2만여 명. 인원이 넘치는데다 다르푸르 난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난민촌 안에도 들어올 수 없다. 현재 이들은 난민촌 바깥에 짚으로 작은 오두막집을 세워놓고 살고 있다. 난민촌에 있는 우물을 사용하는 것마저 눈치가 보인다. 아이들이 배를 곯는 사이 엄마인 아누프는 식량과 구호품 등이 도착하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다.
다르푸르 사태가 인접 국가로 확대되면서 아누프 가족과 같은 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고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가 지난달 말 보도했다. 차드에서만 12만 명 정도가 거처를 잃고 난민 아닌 난민이 됐다. 역시 수단과 국경을 접한 중앙아프리카공화국(CAR)의 사정도 마찬가지여서 20만 명 이상의 국내 난민이 발생한 것으로 유엔은 보고 있다. ‘금세기 최악의 인권 지옥’이라는 다르푸르 사태가 이웃 나라 민중들의 삶까지 지옥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오랜 내전, 구조적인 빈곤과 경제난, 부패한 정권과 취약한 민주주의 기반 등으로 이미 몸살을 앓고 있는 이들 국가의 상황은 다르푸르 사태로 더욱 악화되고 있다. 차드로 흘러들어온 다르푸르 난민들만도 23만 명. 그러나 이들을 수용, 관리하기에 국가들의 역량은 턱없이 부족하다. 심지어는 학살 광풍을 피해 나온 이들이 종종 다르푸르에 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더 타임스’는 살 길이 막막한 차드인들이 절박한 마음에 국경을 넘어 다르푸르로 들어가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국에서 떠도느니 타국에서 난민이 되기를 택한다는 것이다.
난민촌이라고 사정이 낫지는 않다. 수단과 차드에 있는 난민촌들은 전쟁터가 된 지 오래다. 유엔에 따르면 올해 발생한 난민 숫자만 8만 명이 넘는다. 상당수 난민촌들이 이미 포화상태이고 가장 기본적인 식수조차 공급하지 못할 정도로 파괴된 것으로 알려졌다. 잔자위드 세력들이 난민촌 주변에 접근해 학살과 강간을 저지르는 일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영국에 망명을 신청한 다르푸르 난민 출신 남성 3명에 대해 영국 법원은 지난 4일 영국 정부의 본국 송환 방침을 기각했다. “난민촌에 돌아갈 경우 이들이 처할 삶의 조건이 잔인할 정도로 가혹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망명 신청을 받아들인 이유였다.
특히 최근 국제 구호단체들의 활동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우선 수단 정부가 단체와 활동가들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면서 활발한 활동이 어려워졌다. 치안에 대한 불안이 높아지면서 구호 활동가들도 무장세력의 공격의 표적이 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자진철수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유엔 등은 다르푸르에서 벌이는 구호 활동 자체가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고 경고하고 있다.
돌파구는 없나 전문가들은 1994년 르완다 사태와 유사성을 찾기도 한다. 후투족과 투치족 사이의 내전으로까지 비화된 르완다 사태는 적어도 400만 명에 가까이운 사상자와 난민을 냈다. 서구 열강의 식민주의 지배시기로까지 거슬러올라가는 인종갈등부터 인종청소의 형태를 띤 무자비한 민간인 학살과 강간, 정부의 학살세력 지원, 반군세력 내의 분화 등 소름 끼칠 정도로 닮은 점들이 있다.
다행인 점은 르완다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르푸르 사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크다는 점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을 중심으로 수단 정부를 압박하며 제재를 가하자는 요구도 나오고 있다. 국제형사재판소(ICC)도 지난 2월 잔자위드의 지휘관과 수단 내무장관 등을 전범으로 기소하며 다르푸르에 대한 여론을 환기시켰다. 유엔도 다르푸르 사태를 최우선 해결과제로 선정할 정도로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지난해 8월 2만여 명의 평화유지군(PKO)을 다르푸르에 파병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다르푸르 난민들의 유입과 더불어 내부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차드에도 별도의 평화유지군을 배치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그러나 의미 있는 진전을 내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ICC의 이중처벌 금지조항을 노린 수단 정부가 전범들에 대해 자체 재판을 실시하겠다며 배짱 전술을 고수하고 있다. 유엔 평화유지군도 내정 간섭이라며 거부하는 태세다. 최근 수단의 오마드 알 바시르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만나 현재 수단에 있는 7000여 명의 아프리카연합(AU) 평화유지군과 공동으로 합의했다고는 하나 정말 실행될지는 두고봐야 한다.
학살을 중단시키려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차원의 제재와 같은 좀더 강력한 행동이 요구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수단과 석유와 무기 거래 등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 등이 강한 제재에 반대하고 있어 일치된 목소리를 내기는 어렵다. 독립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은 “수단 정부가 공군기로 폭탄을 운반, 자국민을 폭격하고 정부군 소속 병사들이나 지원을 받는 민병대가 학살에 나서고 있는 것은 명백하다”면서 “비행금지구역 설정 조치라도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부│김유진 기자 actvoice@kyunghyang.com>